졸업식 날 먹었던 음식

by 허당 써니

올해 들어 가장 추운 겨울이 찾아왔다.

작년에 비해 덜 춥다고는 하지만, 며칠 전부터 뉴스에서는 오늘이 가장 추울 거라며 경고를 보냈다. 추위가 걱정되었지만, 아침 런을 포기하기엔 뭔가 아쉬웠다. 옷을 단단히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섰다. 바람은 어제보다 매서웠고 공기는 살을 에는 듯했지만, 뛰기 시작하며 느껴지는 상쾌함은 여전히 나를 움직이게 했다. 차갑던 몸에서 천천히 땀방울이 맺히며 하루를 건강하게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도 가벼워졌다.


점심 약속이 있어 목동으로 향했다. 오목교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졸업식의 한 장면이었다. 중고등학교 정문 앞에는 꽃다발을 든 사람들로 북적였고, 노점상들이 팔고 있는 형형색색의 꽃들은 추운 날씨 속에서도 활기를 더했다.


그 장면은 나를 과거로 데려갔다. 하나뿐인 아들의 졸업식이 떠올랐다. 아들의 초등학교 졸업식은 바쁜 일정 탓에 참석하지 못했다. 친정엄마와 남편만이 그 자리에 함께했다. 미안한 마음에 중학교 졸업식에는 꼭 참석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날도 바쁜 일정은 나를 족쇄처럼 묶었다. 결국 졸업식 후에야 가족들과 식당에서 만날 수 있었다. “너는 대체 하나밖에 없는 아들 졸업식을 초등학교 때도 못 오고, 중학교 졸업식도 이 지경이고, 돈을 얼마나 벌겠다고 부모로서 할 도리를 안 하니?” 친정엄마의 꾸중이 이어졌다.

식탁 위에는 맛있게 준비된 초밥이 올려져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무거웠다.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숙이고 초밥을 먹기만 했다. 초밥을 좋아하는 아들은 빠르게 돌고 있는 초밥 접시를 열 개나 해치우더니, 미안한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엄마, 오늘 졸업식인데 학원 안 가도 되죠? 친구들이랑 PC방 가기로 했어요. 늦게까지 놀다 갈게요.” “그리고 할머니 오늘 내려가지 마시고 저랑 꼭 같이 자고 가셔야 해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는 손살같이 식당 밖으로 사라졌다.

친정엄마는 아들과 약속한 걸 지키고 싶었지만 “아빠 저녁 차려야 한다”며 강변역까지 태워달라고 하셨다. 남편은 집으로 갔고, 엄마를 모셔드리고 내가 가야할 길이 어딘지 찾고 있었다. 차 뒷자리에 주인 잃은 꽃다발이 덩그러니 남겨졌다.


고등학교 졸업식만큼은 무조건 맨 앞자리에 앉아 축하해 주겠다고 결심했지만, 그 마지막 졸업식마저도 코로나로 인해 참석할 수 없었다. 친정엄마는 그 전해에 돌아가셨고, 학기시절 마지막 아들의 고등학교 졸업식은 허무하게 치뤄졌다.


내 어릴 적 졸업식은 어땠을까?

솔직히 졸업식은 기억에 남는 장면은 거의 없다. 중고등학교 친구들과 찍은 사진 속에서 그날을 떠올릴 뿐, 부모님과 먹었던 음식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모든 졸업식을 통틀어 졸업식에서 기억에 남는 음식은 단연 초밥뿐이다.

앞으로 남은 졸업식은 아들의 대학 졸업식뿐이다. 미국에서 치러질 그날에 내가 참석할 수 있을까?

거리에서 보았던 꽃다발들은 몇 년 전 차 뒷자리에 홀로 남겨진 꽃다발을 떠올리게 했다. 꽃다발 속 분홍 장비꽃은 돌아가신 친정엄마의 환한 얼굴이 연상되어 살작 눈물이 적셔온다.


졸업식은 거의 짜장면을 먹는다고 하는데 오늘 만나는 손님과 점심 식사는 중국집에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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