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밥보다 국수를 더 좋아한다. 특히 국물 국수보다는 비빔국수가 내 입맛에 딱 맞는다.
술을 마신 다음 날, 사람들은 대개 뜨거운 국물로 해장을 하지만, 나는 매콤달콤한 비빔국수로 해장을 한다. 그래서 종종 “써니, 당신은 진정한 애주가입니다”라는 농담을 듣곤 한다.
회사 바로 앞에는 성수에서 유명한 신라호텔 셰프가 운영하는 중국집이 있다. 특별히 약속이 없는 날이면 나는 종종 이곳에 들러 ‘마파 두부국수’를 시켜 먹는다. 이제는 내가 들어가기만 해도 셰프님이 내 메뉴를 미리 준비해 줄 정도다. 그만큼 이 국수에 푹 빠져 있다.
내가 국수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술 접대 자리에서 시작되었다. 어느 날, 여의도에서 3차까지 이어진 술자리 후였다. 손님들을 택시에 태워 보내고, 회사 동료와 함께 아쉬운 마음에 근처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그곳은 주황색 비닐 천막으로 둘러싸인, 정겨운 길거리 포장마차였다. 우리는 소주 한 병과 장터국수를 주문했다. 평소 국수를 즐기지 않던 나였지만, 그날 장터국수와 소주의 조합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따뜻한 국물의 깊은 맛, 술기운과 어우러진 거리의 분위기,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모든 것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내 기억 속에 강렬히 남았다. 그날 이후, 내 해장의 공식은 언제나 국수와 소주가 되었다.
국수가 좋은 이유는 단순하다. 밥은 반찬이 필요하지만, 국수는 그 자체로 완벽하다. 국수만으로도 훌륭한 술안주가 된다. 특히 비빔국수는 맵고 달달해서 안주로 제격이다. 비빔냉면이나 짜장면도 가위로 잘게 썰어 수저로 떠먹으면 가성비 최고인 술안주가 된다.
우리 집에서는 아들과 남편이 가끔 라면을 끓여 먹는다. 하지만 나는 비빔라면만 고집한다. 우리는 각자의 취향에 맞게 음식을 따로 만들어 먹는다. 한 냄비에 끓여 먹으면 편하겠지만,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기로 했다. 내가 만드는 비빔국수는 늘 오래 삶아 국수가 퍼지는 편이다. 어느 날, 아들이 내 비빔국수를 한 젓가락 맛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이게 정말 맛있어서 드시는 거예요? 이건 돼지 밥 죽 같아요” 나는 당황했다. 우리 아들은 나를 닮아 생각나는 대로 직설적으로 말하는 아이다. “엄마는 괜찮아. 음식을 맛으로 먹냐? 배고프니까 먹지.” 비록 내 손맛은 똥손 일지라도, 내가 만든 음식은 내게 늘 맛있다.
나는 미식가는 아니다. 내 입맛에 맞고 분위기가 좋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가끔 직원들과 함께 한적한 식당을 찾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맛집이 아니라, 파리만 날리는 작은 식당을 일부러 찾아간다. 그 식당 주인도 나처럼, 자신의 음식을 스스로 맛있게 먹고 만족하며 가게를 열었을 것이다. 그런 가게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다는 마음에 찾아가는 것이다. 같이 간 송차장이 한마디 한다. “전무님, 이렇게 맛없는 집은 팔아 주면 안 됩니다. 이런 집은 기본 마인드가 잘못된 집입니다. 음식점이 이런 맛인 걸 모르고 오픈했다는 건 손님을 모욕하는 처사죠. 저희에게 영업할 때 전략을 잘 짜고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접근하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손님을 대하는 기본이 안 된 집을 찾아다니는 건 저희에게 가르침을 주지 못하는 겁니다.” 일리 있는 말이지만 나는 내가 영업하는 사람이기에 영업을 못하는 사람들이나 파리 날리는 식당을 보면 그냥 짠하기에 나라도 찾아줘야 내마음이 편하기에 찾는 것이다.
맛없는 음식도 대충 먹는 편이지만, 나도 미슐랭이 선정한 정말 맛있는 식당에서는 그 맛에 감탄하기도 한다. 잘하는 집은 역시 다 이유가 있다. 하지만 나는 편식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재료로 만든 음식이라면 무엇이든 잘 먹는 입맛을 가진 내가 좋다.
요즘 내가 단골로 다니는 집이 있다. 뚝도시장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돈가스집인데, 간판은 오래된 세탁소 간판을 그대로 쓰고 있다. 이곳의 비빔냉면은 면발이 쫀쫀하고 달콤하면서도 새콤한 맛이 일품이다. 돈가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 이곳에서는 돈가스 위에 비빔냉면을 얹어 깨끗이 비운다. 돼지가 물 만난 듯 춤추며 신나 하는 바로 그 맛이다. 테이블이 네 개밖에 없는 작은 식당인데도 손님이 많지 않다. ‘이 맛이 나만 좋아하는 맛이라 손님이 없는 건가? 아니야 여기는 정말 맛있는 집이야 얼마 지나지 않으면 분명 손님이 많아질거야.’ 혼자 그렇게 생각하고 손님 많아지기 전까지 나의 비밀 식당으로 혼자도 가끔 가는 식당이다.
국수 한 그릇에는 단순한 재료 이상의 것이 담겨 있다. 나만의 추억, 분위기, 그리고 소박한 행복이 국수 한 그릇에서 피어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