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엔 부침개가 제격이지.”
토요일 아침, 창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에 눈을 떴다. 새벽같이 어두운 하늘과 쌀쌀한 공기. 초가을치곤 제법 서늘했다. 그날도 가족은 주말 아침마다 하던 대로 늦잠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 집의 평소 주말 점심 루틴은 각자 먹고 싶은 걸 먹는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라면이나 비빔국수보다 부침개가 먹고 싶었다. 평소 부침개를 잘 만드는 남편에게 맡기려 했지만, 남편의 기척은 없었다. 결국 나는 스스로 부침개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김치와 계란 두 개. 밀가루를 뒤적여보니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부침가루가 있었다. 어릴 적 엄마가 만들어주던 김치 부침개가 떠올라, 나는 김치를 얇게 썰어 밀가루 반죽에 섞었다. 물을 조금씩 부으며 반죽을 맞췄지만, 이것저것 더하다 보니 반죽이 한가득 늘어나 있었다.
“그래, 두껍게 부쳐서 피자 부침개처럼 만들어 보자.”
첫 번째 부침개는 욕심껏 두껍게 깔았고, 냄새는 좋았다. 하지만 뒤집기가 문제였다. 너무 두꺼워 통째로 뒤집는 데 실패했고, 결국 4등분으로 잘라 간신히 뒤집었다. 이미 바닥은 검게 타 있었다. ‘일단 타 부분은 오려 내면 되겠지.’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부침개를 붙였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부침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마지막 부침개에 김치 국물을 더 넣어 색깔만큼은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부침개 냄새에 가족들이 깨어나 부엌으로 나왔다. 남편과 아들은 부침개를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 이거 부침개 맞아요? 그냥 빵처럼 보이는데요.”
“김치 부침개잖아. 보면 모르겠니?”
그렇게 말은 했지만, 나 자신도 맛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각자의 접시에 부침개를 나눠 담고, 나는 막걸리를 사러 편의점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다 같이 같은 시간에 한자리 모였다. 첫 번째 부침개는 내 접시에 담고, 나머지 두장은 반반 나눠서 남편과 아들 접시에 올려놨다. 두 사람은 젖 가락질을 하려하지 않고 계속 쳐다만 보고 있다. “얼렁들 먹어. 이거 안 먹으면 다음부터는 국물도 없어” 두 사람의 눈빛에 화가 난 나는 큰소리를 질러 강제로 먹게 했다. 일단 내가 먼저 한 입 먹는 순간, 나는 나의 강제성에 미안함을 느꼈다. 이 부침개는 부침개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밀가루 반죽에 김치가 섞인 푸석한 빵에 가까웠다. 남편은 천천히 일어나 물을 끓였고, 아들도 동참해 라면을 끓였다.
“다시는 내가 이런 걸 만들지 않겠다.”
속상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혼자 남은 부침개를 막걸리에 곁들여 먹었다. 남길 수 없어 막걸리 맛이로라도 먹을 샘에 편의점으로 내려가 막걸리 한 병을 더 사왔다. 배가 잔뜩 부른 채 오후는 화장실에서 폭우를 쏟아붓듯 배 속의 모든 밀가루를 뿜어내고야 말았다, 이내 배탈이 나 버렸다.
그날 이후, 나는 집에서 부침개를 만들지 않게 되었다. 부침개가 생각날 때는 전집에 가서 깔끔하게 부쳐진 전을 주문한다. 그 편이 마음도, 배도 편하니까.
결국, 비 오는 날의 부침개는 맛보다도 그날의 분위기와 추억을 채우는 생각만 나는 음식으로 여기기로했다.그날의 소리와 냄새, 가족과의 대화와 웃음은 소소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내 손으로 만든 부침개는 실패작이었지만, 그날의 풍경과 감정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이다.
언젠가 다시 부침개를 만들 기회가 올런지 모르겠지만, 그때엔 좀 더 간단하고 얇게 만들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