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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당 써니 Feb 08. 2024

취미라는 충전기

일요일 새벽에는 산에 오른다. 오늘은 자주 가는 아차산과 용마산 두 봉우리를 올랐다. 8km 정도 산을 타도 지치지 않을 만큼 체력도 좋아졌다. 

‘취미’ 있는 삶이 이렇게 행복할 줄 몰랐다. 어느 날인가 산으로 가기 위해 채비하는 나에게 아들이 함께 가고 싶다고 했다. 그날 이후 우리 세 식구는 주말 청계산 등반 후 막걸리 반주 삼아 저녁을 해결하곤 한다.

대학 졸업 후 지금까지 특별한 취미나 특기 없이 일만 하며 살았다. 영업하는 일머리로 사람을 만나다 보니 ‘마시기’가 유일무이한 취미가 되어버렸다. 친분 쌓기를 명분 삼아 늘 술과 함께하던 일상, 집에 들어가면 고꾸라지고 다음 날 출근하는 도돌이표 하루가 28년 되었다.

‘나는 왜 하고 싶은 것이 없을까? 찾아보려고도 하지 않았을까? 이게 정말 내가 꿈꾸던 성공인가?’ 

분주함에 쫓겨 조급증과 짜증이 차오를 때, 이러다가는 신경줄이 끊어지고 말 것 같은 위기의식을 느낄 때도 나는 술을 먼저 찾았다. 그래서 심심할 정도로 여유 있는 건강한 시간을 갈망하면서도 그걸 제대로 누리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감정과 이성의 균형이 필요했다. 

두 가지를 함께 누릴 해답을 찾아 헤매다 2020년 카이스트 AMP 모임을 알게 되었다. 공기업, 사기업의 임원급들을 모아 인문학이나 IT 방향 강의도 하고 네트워크 관계를 형성하는 모임이다. 1년에 두 기수씩 모집한다. 나는 20년 상반기에 20기로 입학했다. 별이 2개인 장군, 대통령비서실 본부장, 대기업부사장, 은행의 행장, 검사, 판사, 일반회사 CEO분 등 짱짱한 분들로 구성된 모임이다. 나만 일개 중소기업 상무다.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 달에 한 번 골프나 저녁 식사를 하며 모임이 이어지고 있다. 

그 당시 인문학 첫 수업이  박지원의 ‘열하일기’였다. 직장 생활하면서 책 한 권 읽지 않았던 나에게 학구열에 불을 당긴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서점으로 달려가 2권 세트로 책을 샀다. 책을 만지는 순간 좋았던 기분도 잠시, 책이 머리에 집중되지 않았다. 독서의 뇌가 닫힌 것이다. 머리가 융통성을 잃고 굳어져 책의 글자들이 도통 읽히지 않았다. 정말 힘들게 두세 달은 족히 붙들고 있던 기억이 난다. 

카이스트 모임 중 등산회에 가입한 건 등산회 회장이 ‘영업의 달인’ 책을 쓰신 하석태 회장이었기 때문이다. 이 분을 만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21년 8월14일 팔봉산, 예봉산 등산회’ 공지를 보고 새벽부터 지하철을 타고 팔봉역으로 향했다. 

“저는 20기 00 누구입니다. 저는 하석태 회장님을 만나 뵙고 싶어 등산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산은 집 앞 낮은 산을 가는 게 전부였습니다. 오늘 산행에 폐 끼치지 않고 열심히 따라가겠습니다.” 

다들 놀란 눈치였지만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한여름 뙤약볕에서 6시간 풀코스를 한 번도 쉬지 않고 선두에서 걸었다. 다들 에이스 후배가 들어왔다며 부추겨 주셨다. 하산 후 뒷풀이 술자리에서는 술 상무 내공도 아낌없이 선보였다. 나는 에이스 산악모임 톡 방에 초대받았다. 

카이스트 모임을 통해 독서와 등산은 나의 취미가 되었고 내 인생에 터닝포인트를 만들어 주었다.     

바쁜 사람의 휴식을 흔히 충전한다고 한다. 휴식은 어디까지나 일을 위해 있다는 소리이다. 영업은 사람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마무리된다. 긴장감을 늦출 수 없고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수천 번의 피드백을 말로 표정으로 서류로 쏟아내야 하니, 반드시 멈추는 시간이 필요하다. 요즘의 나를 바라볼 때 산에 오르고 달리기하고 책을 들추는 동안의 달콤한 충족감을 즐기기 위해 일을 하는 것 같다. 

나의 취미활동을 직원들과 공유하려고 SNS에 가끔 띄운다. 직원들과 가끔 산행도 하고 읽었던 책들은 가져다주기도 한다. 나의 변화된 모습은 회사조직 분위기에도 변화를 주었다. 연초에 직원들의 1년의 인생 목표와 목적, 가치관을 나열하게 해서 연말에 달성도에 따라 보상해 주는 제도를 만들었다. 회사 생활이 재미있어졌으며 한 가족이 된 것 같은 기분이라는 좋은 평가도 받았다. 

건강한 취미는 작은 즐거움이다. 그러나 그 작은 즐거움이 일상의 힘든 무게를 덮는다. 나를 스치는 영업맨의 시간 속에서 치유의 효능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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