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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당 써니 Feb 01. 2024

거절이라는 월계관

“제 하루 목표는 거절을 최대한 많이 당하는 겁니다.” 

 KT에 합병된 KTF 통신사에서 핸드폰 전화 판매를 했던 여성 텔레마케터는 매일 거절의 목표량을 설정하고 하루를 시작했다. 그녀는 100건 단위로 거절당할 때마다 아이스크림이나 커피로 자신을 칭찬했다. 1천 단위가 넘어가면 비싼 옷이나 가전제품으로 그 이상이 되면 해외여행을 자신에게 선물했다. 이렇게 수천 번의 거절을 긍정의 습관으로 만든 그녀는 실적 1위를 놓치는 법이 없었다. 

 영업인은 거절로 인한 불안과 두려움을 피할 수 없다. 한 건의 실적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만남과 전화를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나는 29년 차 IT 관련 업계 영업 본부장이다. 나 역시 거절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떨치기 어려웠다. 사람을 보면 눈을 마주치기 힘들고 밀폐된 공간에서는 숨이 조였다. 넓은 장소에 있어도 어지러움을 느낄 때가 많았다. 그래서 고객 미팅이 있는 날이면 직원 한 명과 함께 다녔다. 회의하다가 증세가 나타나면 급한 전화를 받는 척하고 자리를 빠져나와 찬 바람을 맞아야 했다. 구석 자리 끝에 앉아 머리를 벽에 대고 앉아야 그나마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였다.

 상태가 이러니 일을 그만해야 하나 고민이 깊었다. 사람과의 소통을 좋아하기에 즐겁게 일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어 공황장애까지 왔음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다행히 내 상태를 주변인들이 이해해 주었기에 땅속 끝 동굴 속 깊이 있던 긍정과 열정의 자아를 깨어낼 수 있었다. 

공포 영화를 보면 누구라도 무섭고 불안하다. 하지만 무서움을 초읽기 하면 의외로 무섭지 않다고 한다. 

 10, 9, 8, 7, 6, 5, 4, 3, 2, 1. 

 귀신이 나온다는 예측이 가능해지면 무서움보다는 배우의 눈빛과 표정에 집중하게 된다. 예측 상황을 잘게 쪼개어 보려고 노력하면 불안하고 무서운 마음보다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에너지가 느껴져 마음의 근력이 생긴다는 논리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사람을 대하거나 주어진 일에 두려움과 불안을 느낄 때면 잘게 쪼개 관찰하는 습관을 지니게 됐다. 불안을 피하려고 시작된 작은 습관은 두려움의 이유를 깊이 이해하고 상대 사람의 입장을 공감하는 의외의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불안과 두려움을 관장하는 뇌의 전두엽이 운동에 약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달리기도 시작했다. 자신의 감정을 기록하는 습관이 도움이 된다고 하여 매일 감사 일기를 남긴다. 이렇게 나는 불안의 노예가 아닌 친구를 청하여 어울려 사는 법을 찾았다.

 불안과 두려움은 내가 살아 있기에 느끼는 감정 중 하나일 뿐이다. 상대가 거절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상품이다. 나를 거절하는 게 아니라 내가 제안한 상품을 거절하는 것이다. 절대 속상할 필요가 없다. 영업인은 늘 최악의 상황을 예측하고 대비해야 한다. 거절의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받아들이는 마음의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거절이 일상이자 삶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이 없으면 죽은 사람이라고 했다. ‘거절’이란 영업 마라톤에서 승리하는 월계관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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