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속 누군가가 살고 있을까? 높이 솟은 모자를 쓰고 긴 수염을 늘어뜨린 용왕님은 이 시간 무엇을 하고 있을까? 바다는 잔잔하다. 강한 파도를 일으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그는 지금 바닷속에서 용왕님과 바둑을 두며 조용한 아침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여유로운 분위기 덕분인지 바다는 더욱 고요하고 평온하다.
벤치 앞에서 비둘기 두 마리가 총총걸음으로 다가와 모래 속 작은 곤충을 쪼아 먹는다. 이들은 진화가 덜 되어 목을 좌우로 흔들지 못한다. 오직 앞뒤로만 움직이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내 목이 뻣뻣함을 느낀다. 가볍게 목을 돌려 스트레칭을 해본다. 혹시 그들도 좌우로 고개를 돌릴 수 없어 불편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은 내 시각에서만 본 생각일 뿐이다. 그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충분히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부산 광안리 해변을 따라 달렸다. 런닝이 대중화되면서 해변을 따라 달리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마주치는 이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며 우리는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몸을 움직이며 하루를 시작하는 기쁨, 그리고 그 순간의 에너지가 오늘 하루를 더욱 활기차게 만들어 줄 것 같았다.
고객들의 말과 행동 속에서 감정을 읽어내는 것은 내 일상이었다. 상대의 관점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공감하는 능력만큼은 누구보다도 뛰어나다고 자부해왔다. 나는 언제나 고객을 대할 때 낮은 자세로 다가갔고, 그들은 그런 나에게 진심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공감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회사 직원들에게는 늘 지시하고 내 생각만을 주입시키려 했으며, 그들이 잘한 행동을 인정하거나 칭찬하는 일조차 거의 없었다. "전무님, A 고객사 김 차장을 설득해서 수주를 따냈습니다. 잘했다고 한마디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직원의 말에 나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영업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 무슨 칭찬을 하나요? 이제 B 고객사 수주를 어떻게 할지 신경 써야죠."
남편과 아들이 힘들어할 때도, "직장인이나 학생이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인데,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징징대는 거야?"라며 그들의 푸념을 무심히 흘려보냈다. 위로나 칭찬을 하면 우쭐해지고 기대치가 높아질 것만 같았다. 나는 더 단단하고 강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그들에게 차가운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직원이나 가족이 이런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했다. 사실, 나는 그들을 칭찬하고 싶었고, 위로하고 싶었지만, 표현하는 것이 어색했던 것이다.
나는 무뚝뚝한 사람이 아니다. 다만, 부모님께 배우지 못하고 경험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길들여졌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깨달았다. 공감은 단순한 감정의 공유가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쓰다듬어 주는 일이다.
를 읽으며 마음이 울컥했다. "서로가 쓰다듬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이다. 봄비가 풀잎을 적시는 것처럼, 박무가 공중을 살짝 빗겨주는 것처럼, 거미가 구석에 거미줄을 내는 것처럼. 걱정해 주는 당신의 목소리도 그렇다. 모두 알뜰히 쓰다듬는 일이다. 쓰다듬는다는 것은 '내 마음이 좀 그렇다'는 뜻이다. 말로 다할 수 없어 그냥 쓰다듬을 뿐이다."
나는 누군가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표현이 어색해 망설였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말로 표현하는 것이 어색하다면, 손을 한 번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따뜻한 손길 하나가 상대에게 위로가 된다는 것을.
마더 테레사는 말했다.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할 수는 없지만, 작은 일을 위대한 사랑으로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하는 작은 칭찬 한마디, 짧은 위로의 말 한 줄이 누군가의 하루를 따뜻하게 바꿀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공감과 사랑의 실천이 아닐까?
고객에게 하듯, 직원들에게도, 가족에게도 솔직한 마음을 표현할 것이다. 공감과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며,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이들을 따뜻하게 쓰다듬을 것이다. 누군가가 내게 기대어 쉬어갈 수 있도록, 그들의 마음에 위로가 되는 사람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