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컬러로, 여백의 중심에 선 소년이 보람달을 바라본다.<박노수>
맑은 공기, 선선한 바람. 얼마 만에 느껴보는 모닝런인가.
불과 4일 만인데, 한 달은 된 듯 낯설기만 하다. 요즘 잦은 술자리, 골프 행사, 늦은 저녁 식사… 몸은 무거워졌고, 무릎에는 전에는 느껴 보지 못한 묵직한 통증이 인사라도 하듯 찾아왔다.
하지만, 이 아침의 공기는 여전히 나를 다시 달리게 만든다.
매일 꾸준히 자기관리를 하는 러너들이 이제는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이른 새벽, 미국 현지 선생님과의 줌 영어 수업이 있었다.
혼자 1년 넘게 공부하고, 링글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일대일 수업을 시작한 지는 세 달쯤 되었다. 늘지 않는 영어 실력, 들리지 않는 말, 수업 준비에 쏟는 시간보다 실제 사용하는 표현이 적다는 현실이 꽤나 지치게 만든다.
결국 나는 또 “Please, write it down”을 반복하게 된다.
지인들은 말한다.
“그 나이에 왜 그렇게 사서 고생을 해요?”
그러게, 왜 지금에서야?
그동안 필요성을 몰랐던 것도 아닌데, 회피하던 걸 이제야 시작한 내가 이해가 안 되나 보다.
오늘은 용기 내어, 루이지 선생님께 이런 이야기를 해보았다. 그는 여러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있는 학생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너무 잘하고 계세요. 정말 멋진 도전이에요.”
사실 전체 문장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과 표정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언어는 말보다도 눈빛과 제스처로도 통하는 법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잘하는 언어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지금의 나는, 그저 버벅거리는 초보자일 뿐.
그래서 고민이다. 지금 이 시간, 더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영어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 과연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일일까?
아니면 지금이 아니면 절대 도전할 수 없는 ‘언어’라는 산을 넘는 가장 좋은 시기일까?
아침마다 뛰면서, 복잡한 문제들이 하나씩 정리된다.
그런데도 영어 공부에 대한 결론은 쉽게 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들인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계속하다간 스트레스가 더 쌓일까 걱정도 된다.
그래서일까. 요즘의 나는, 딱 이 말 한 줄로 요약된다.
“참 자네는 사서 고생하네요.”
오랜만에 사장님과 점심을 했다. 2~3달에 한 번 정도 만나는 자리.
회사에는 두 개의 사업부가 있다. 1팀 본부장은 사장님과 자주 식사하며 가까운 관계를 유지한다.
그런데 나는, 그와는 좀 다르다.
현업에서 손을 뗀 사장님에게 내가 일적으로 조언을 받을 일은 별로 없다.
그리고 원래 내 성격 자체가, 굳이 표현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정말 필요할 때만 사장을 찾는다.
오늘은 고객 골프 행사 10팀 진행을 위한 부탁이 있어, 사장님과 식사를 했다.
아침부터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그렸다.
어떻게 말문을 열고, 어떻게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어느 타이밍에 핵심을 말할까.
결과는 좋았다.
“그래, 최 전무가 한다면 해야지. 금액이 중요한 게 아니라, 최전무의 전략이 우리 회사 미래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사장님의 말에 감사 인사를 전하며 식사를 마무리했다.
카톡이나 사소한 대화 하나에도, 어떤 단어를 쓰고 어떤 표현을 해야 내 진심이 전해질까 고민하는 나다.
논리적인 화술은 부족하지만, 상대가 기분 좋아지게 하려는 전략은 남들보다 감각이 좋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대화의 결말은 대부분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물론, 가끔은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이해관계가 아닌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또는 술자리에서, 감정이 앞설 때, 무심코 뱉은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겐 상처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은 몇 초만이라도 더 생각하고 말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렇게 하려면,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여유 없이 매일 일에만 쫓기다 보면, 생각의 폭도 좁아지기 마련이다.
오늘 아침 회의에서 직원들에게 말했다.
“해야 할 일을 잘 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취미 하나쯤은 꼭 가지고 일하자. 그래야 일도 더 재미있어질 거야.”
나의 아침 달리기 습관은, 내 삶을 바꿔놓았다.
그리고 그것은 내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 사람의 에너지는 파도처럼 번진다. 당신이 행복하면, 그 행복은 곧 주변 사람들의 미소가 된다.”
이제는 안다.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고,
공부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며,
성공은 비교가 아니라 내가 어제보다 나아졌다는 믿음이라는 것을.
그리고 오늘도 나는,
사서 고생을 선택한 나를 다독이며,
다시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