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다.
이번 연휴는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
푸른 하늘 아래,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강줄기 사이를 달리며,
나는 오감으로 지금 이 순간을 느낀다.
가슴이 벅차다.
살아있음에, 지금 여기 있음에 감사하다.
그리고 문득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가?
이 질문은 어쩌면 인류가 처음 말을 하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가슴속에 품어온 물음일 것이다.
요즘 나는 조지프 캠벨의 『신화의 힘』과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읽으며 이 질문과 마주하고 있다.
세계 여러 문명에서 ‘창조신’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는 답들을 따라가다 보면,
나는 지금의 내 삶과 맞닿아 있음을 느낀다.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사람들은 이야기했다.
"처음엔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깊고 어두운 물, 그리고 그 안의 어머니 신 ‘남무’만이 있었다."
그녀로부터 신들이 태어나고, 세상이 시작되었다.
이집트에서는 태양신 아툼이 공허 속에서 스스로를 만들어내고,
폴리네시아에서는 타아로아가 알껍질 속에서 나와 세상을 창조한다.
이처럼 고대의 신화는 혼돈에서 질서로, 어둠에서 빛으로, 고요에서 삶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다.
놀랍게도, 그들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의 일상과 너무도 닮아 있다.
나는 지금 다니고 있는 이 회사에 21년째 몸담고 있다.
아이를 품고 입사해 IT영업인으로 치열하게 살아왔고,
크고 작은 위기를 넘어 지금은 직원들과 함께 회사를 3배 이상 성장시켜왔다.
그래서 이제는 좀 편안하게, 여유롭게 다닐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찰나에,
생각지도 못한 가장 큰 위기가 닥쳤다.
영업 실적도, 직원 문제도 아니다.
사장의 개인적인 문제가 회사를 흔들고 있다.
나는 늘 그렇듯 문제를 마주하면 먼저 최악을 상상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틀 동안 거의 체력이 고갈될 정도로, 나는 뛰고, 걷고, 다시 뛰며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만약 회사가 잘못된다면? 직원들은? 나는?"
온갖 두려움과 걱정이 머릿속을 휘젓고 지나갔다.
그러다 이틀 후, 나는 결심했다.
이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가능성을 찾자.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안을 만들자.
나는 내 방안을 들고 사장과 마주했다.
처음엔 사장이 분노했고,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나는 말했다.
“사장님, 이 회사가 있었기에 제가 성장했고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이 회사는 제 이름으로도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내 안에서 용기가 나왔다.
지혜도 나왔다.
그 말들 안에는 내가 지나온 수많은 밤, 고객 앞에서 눈물 삼킨 날,
그리고 이 회사를 진심으로 사랑해 온 시간이 담겨 있었다.
결국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우리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나는 6월 말까지, 사장은 9월 말까지 고민하자고 했다.
그 사이에 무엇이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내 의지와 결단력으로 나와 내 팀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달리고 있다.
캠벨은 말했다.
“신화는 인간의 깊은 내면에서 태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신화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당신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나는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이 치열함, 이 용기는 어디서 왔는가?
신들이 말 한마디로 세상을 만들었다면,
나는 말 없이 수없이 부서지고, 다시 일어서며 하루를 만든다.
매일이 태초다.
매일이 창조의 순간이다.
아둥바둥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
두려움, 무서움, 초조함, 허무함, 욕망 속에서
혼돈처럼 뒤엉킨 하루를 살아가지만,
그 안에서 작은 질서를 세우고, 다시 마음을 일으킨다.
"신들은 세상을 만들고 물러났지만,
인간은 매일, 자신의 세계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고요한 강가를 달리며 나를 다시 창조한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시 살아낼 의지로.
그리고 믿는다.
내가 만든 오늘이라는 세계는, 어제보다 조금 더 단단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