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40분. 오늘도 어김없이 도덕경 48장을 꺼내 읽고, 한 자 한 자 필사를 시작한다.
“爲學日益, 爲道日損” — 학문을 위한 공부는 날마다 더해가지만, 도를 위한 공부는 날마다 덜어낸다.
노자는 말한다. 도를 닦는 공부는 버림의 여정이라고.
세속의 편견, 아집, 탐욕, 헛된 명예와 감정의 찌꺼기까지 — 내가 지닌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는 것.
며칠 전, 오랜만에 소중한 나의 친구 선희, 노엘 수녀님을 만났다.
세속과 거리를 두고 수도원에 살아가는 그녀는 마치 고요한 수녀원 한 켠의 촛불처럼 잔잔했다.
가끔 주고받는 편지 속에서도 그녀의 문장은 늘 맑고 단정했다.
그날, 함께한 자리에서 그녀는 자신의 삶을 표현했다.
“나는 기도를 통해 세상의 소음을 비워내. 그리고 그림을 통해 다시 나를 채우려 해”
중학교 시절 동양화 선생님에게 들은 말씀이, 그녀의 삶을 이끄는 씨앗이 되었다고 한다.
“그림은 붓을 드는 순간부터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야. 좋은 화가는 잘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진실한 사람이야.” 그 말이 씨앗이 되어 지금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영적 여정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나 역시 그 시절 그림을 좋아해 그 미술 선생님을 따랐다. 얼굴이 문득 떠올랐지만, 그녀처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지 못한 나 자신이 조금 부끄러웠다.
노엘 수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삶은 곧 도를 닦는 과정이야. 사람은 태어나고 죽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 그 사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잡동사니를 쌓으며 사는지 몰라.”
나도 매일 새벽 필사를 통해 마음을 다스리려 애쓴다.
기도하듯 글을 쓰고, 묵상하듯 하루를 살고자 하지만, 현실은 늘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
소유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이루고 싶다.
이 단어들이 끊임없이 마음을 흔든다. 참 끈질기다, 욕망은.
그녀는 조용히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선인이는 어릴 때부터 늘 열심히였어. 지금도 꾸준히 살아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아.”
그 말이 참 따뜻하게 들렸다. 나는 내가 이토록 꾸준한 사람인지도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안의 조급함과 습관적인 성향을 바꾸는 일이 여전히 쉽지 않다.무언가를 빨리 처리하고 싶어 하는 마음, 깊이보다는 속도를 택하는 나의 습성.이걸 고치려는 것도 혹시 또 다른 집착은 아닐까?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억지로 하지 않는 것이야.”
도덕경 속 이 말처럼, 나도 이제는 억지로 하지 않고 흐름을 따르려 한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공부, 일상 속에서 조용히 쌓여가는 생각들과 깨달음.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감사하고 있다.
그날, 남편과 아들도 노엘 수녀를 함께 만났다.
그녀의 고요한 눈빛과 담담한 말들이 그들에게도 작은 울림이 되었기를 바란다.
어쩌면 이 바람조차 또 하나의 집착일지 모르지만,
그날의 만남이 서로에게 조용한 힐링이 되었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이 시간 필사를 쓰며 나는 다시 깨닫는다.
공부란 배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진짜 성장은 끊임없이 덜어내고 비워내다가 결국 아무것도 붙잡지 않게 되었을 때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쇠창살로 가려져 우리는 안을 수 없었지만, 나의 친구와 나는 그 사이로 손을 내밀어 손을 꼭 잡았다.
선희의 미소는 늘 그렇듯 해맑다. 그녀를 뒤로하고 급히 돌아섰다.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그녀는 숨 쉬고 있는 것만으로 이 순간이 행복하다고 하는데 나는 왜 눈물이 나는 건지?
나 또한 이 사소한 의식하지 않았던 숨 쉬고 있는 이 순간이 자체에 행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