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성인'에 대하여
“성인은 고정된 마음을 갖지 않으며, 백성들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는다.”
– 『도덕경』 49장
“우리 써니씨, 또 사기 당했네. 써니씨는 사람 말을 너무 잘 믿어. 영업하는 사람이 그걸 못 보고 덥석 저지른다는 게… 이리하면 돈 벌어서 다 남 주는 거야.”
한 번은 지인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이 틀리지 않았기에, 나는 그저 웃었다.
누군가 나에게 무언가를 원하거나 부탁하거나, 혹은 지쳐 보이면, 나는 그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갖고 있든 먼저 들어주려 한다. 때로는 동정심에서, 때로는 진심에서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나를 안타까워한다. “이용당하는 것도 모르고 또 도와줘?”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베푼다는 건 그만큼 여유가 있고, 또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라는 걸.
도덕경에서 말하는 ‘성인’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자기 마음”을 고정하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믿을 만한 사람도 믿고, 믿기 어려운 사람도 역시 믿는다.
그래서 결국 신뢰를 얻게 된다.
이 구절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마음이 이상하게 뭉클했다.
‘나도 모르게 이렇게 살고 있었구나.’
사람들은 누군가에 대해 “저 사람은 사악해. 가까이 하지 마”라고 말할 때가 많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말을 들어도, 그 사람과 직접 식사하고 대화해본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내 앞에서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나와 유쾌하게 소통하고, 마음을 터놓으며, 오히려 나에게 따뜻한 에너지를 주는 사람.
"사람은 대접받는 만큼 변화한다"는 말을 믿는다.
누군가에게 진심을 담아 다가가면, 그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순수함이 문을 열고 나오는 걸 자주 본다.
나는 누구와 대화하든 나를 숨기지 않는다.
“요즘은 나이 들어가면서 점잖게 말하는 게 예의야”라고들 하지만,
나는 내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
어릴 적 이야기, 아팠던 날들, 기뻤던 순간들,
그렇게 나를 솔직히 드러낼 때, 상대도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나눈다.
마치 빈 그릇 같다.
내 그릇 안에 어떤 음식이든 들어올 수 있도록, 편견 없이 열어두고 싶다.
그것이 잡동사니든, 눈부신 보물이든 상관없다.
나는 그저 그릇으로서, 담고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그 사람의 쓸모와 가능성을 발견해 주는 역할을 하면 된다.
오늘도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나에게 말을 걸었고, 나는 들어주었고, 웃음으로 답했다.
그들이 나와의 만남에서 어떤 결과를 얻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따뜻하게 응답한 오늘 하루가, 그들에게 '좋은 날'로 기억되었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나도 그런 삶을 계속 살아갈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믿고, 들어주고, 웃어주는 삶.
“성인은 아이를 대하듯 백성을 대한다.”
그 말처럼, 나는 오늘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맑게 씻고,
내 안의 고정된 마음을 지워가며, 사람들의 마음을 내 마음처럼 품어본다.
그게 바로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삶은 결코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어쩌면 가장 지혜로운 삶 일지도 모른다.
당신은 오늘, 누구의 그릇이 되어주셨나요?
그리고, 당신 안에 담긴 그 사람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성인은 자신의 고정된 마음을 갖지 않으니,
백성들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는다.
착한 이는 나도 착하다 하고 착하지 않는 이도 역시 착하다 하니,
착함을 얻게 된다.
믿음직한 사람도 믿고 믿지 못할 사람도 나는 역시 믿으니,
믿음을 얻게 된다.
성인은 세상에 있으면서 같이 호흡하고
세상 사람들과 그 마음을 함께한다.
성인에 대하여 백성은 귀와 눈을 모으고
성인은 백성들을 아이같이 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