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놓아주는 연습

도는 낳고, 덕은 기른다

by 허당 써니

“엄마, 내가 마마보이인 거 아세요? 왜 자꾸 엄마 방식대로만 하라고 해요?”

고등학생이 된 아들이 어느 날 처음으로 나에게 논리적으로 반박했다. 당황한 나는 습관처럼 이렇게 말해버렸다.

“네가 뭘 안다고 그래? 엄마는 다 경험해 봤고, 더 넓게 보니까 내 말이 맞는 거야.”

그 순간, 아들의 눈빛에서 무언가가 꺾이는 듯했다. 나는 알면서도 그 말을 멈추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나도 모르게 내 아이를 '내 것'처럼 여기고 있었던 걸까.


내 방식대로만 키운 아이

아들을 키우면서 나는 모든 결정을 ‘내 방식’대로 했다.
입는 옷, 먹는 음식, 다니는 학원까지도 내 기준과 편의에 맞췄다.
식사는 내가 좋아하는 술안주 위주로된 식당을 다녔고, 옷은 단순한 다림질 하지 않고 빨기 편한 흰색이나 검정색 추리닝이 대부분이었다.
학원도 아이의 흥미나 가능성과는 상관없이 단지 집 근처, 걸어 다닐 수 있고, 가격이 저렴한 곳이면 그만이었다.

그런 선택들이 '아이를 위한 것'이라는 착각 아래 계속됐다.

아이는 자주 말했다.
“엄마 때문에 내가 공부를 더 못 하는 거예요.”

나는 외면했다.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현실 속에서, 나의 동선과 편의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재단했다.


“엄마, 저 미국 갈래요.”

고2 어느 날, 아들이 말했다.
“혼자 미국 유학 갈게요.”

그 순간 나는 아들을 말리느라 6개월을 설득했다.
“미국 가서 버티지도 못할 거야. 너 중간에 돌아오면 백수 될지도 몰라.”
겁을 줬다. 포기하길 바랐다.

그런데 아들은 반값 장학금으로 다닐 수 있는 미국 오하이오의 한 대학교를 찾아왔다.
“엄마, 이 정도면 괜찮죠?”
결국 나는 승복했고, 아들은 미국으로 떠났다.
친척 하나 없는 땅에서 아들은 예상 밖으로 너무나 잘 적응했다. 영어도 못했던 아이가 이제는 장학금을 받으며 2년째 잘 다니고 있다.


회사에서는 내 모습이 바뀌었는데, 아들은 놓지 못했다

나는 회사에서는 바뀌었다.
직원들에게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구속보다는 자율을 택했다.
오전에 잠깐 출근해 필요한 미팅만 하고 자리를 비워준다.
그러자 오히려 직원들은 더 책임감을 가지고 스스로 움직인다. 성과도 더 좋아졌다.

그런데 왜 아들만은 놓지 못할까?

회사를 내려놓은 만큼, 나는 아들을 더 쥐고 흔들려고 했던 것 같다.
내가 낳고 기른 아이이지만, 이제 성인이 된 그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내가 낳았지만, 내 소유는 아니야”

《도덕경》 51장에서 말한다.
“도는 만물을 낳고, 덕은 그것을 기르며, 품고, 완성시킨다. 그러나 낳되 소유하지 않고, 기르되 지배하지 않는다.”

내가 해야 할 일도 같다.
아이를 품되, 소유하지 말 것.
도와 덕이 그러하듯, 자식 또한 그저 기른 인연으로 감사하며, 더 이상 내 뜻대로 되지 않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엄마, 잘 지내요.”

요즘 아들은 자주 연락하지 않는다.
문득 생각이 든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처럼, 어쩌면 내 아들이 잘 지내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자식은 품에 안을 수 있을 때까지 안고, 손을 잡아야 할 때까지만 잡는다. 그 이후엔 보내야 한다.”
어느 책에서 본 말이 떠오른다.


아버지, 오늘 식사는 하셨어요?

글을 쓰다 보니 문득 내 아버지가 생각났다.
어머니를 여읜 지 벌써 몇 해.
혼자 계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마음 한쪽이 저려온다.

내일 아침엔 꼭 전화를 드려야겠다.
“아버지, 오늘 밥은 드셨어요? 어디 아프신 데는 없으시죠?”

도는 낳고, 덕은 기른다.
나 또한 그 순환 안에 살아가고 있다.
내가 낳았고, 기른 아들을 이제는 놓아주려 한다.
그가 자유롭게 날도록.
그리고, 그를 낳게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며 나의 덕을 되돌아본다.


마무리하며

아이를 기른다는 건 ‘소유’가 아니라 ‘동행’이다.
그가 자유로운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면, 나는 더 이상 그의 발목을 붙잡지 말아야 한다.
나의 ‘도’가 그를 낳았다면, 이제는 ‘덕’으로 길러야 할 시간이다.

“낳되 소유하지 않고, 기르되 내 맘대로 하지 않으며.”

이 문장이 내 마음에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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