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덕(含德), 덕을 품는 삶
요즘 나의 하루는 새벽 3시 31분에 시작된다. 누구도 아직 깨어 있지 않은 시간, 도시의 소음도 멈춘 그 고요한 어둠 속에서 나는 나를 마주한다.
한때는 이 시간이 귀가 시간이었다.
술자리를 마치고, 고객을 보내고, 택시 안에서 잠든 채 집으로 돌아오던 그 시절.
당시 나는 영업에 있어 누구보다 강했고, 사람들을 웃게 하고, 분위기를 주도하며, 계약을 이끌어내는 능력을 자랑스러워했다. 늦게까지 일하는 것이 성실함의 상징이었고, 피곤하지 않은 체력은 내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그 삶의 이면은 고통이 많이 따랐었다.
불안은 늘 관계에서 시작되었고, 스트레스는 잔으로 달래졌으며, 하루하루는 성공을 향한 무언의 전투였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던 나는 이제, "그게 정말 나였나?" 하는 물음을 새벽 공기 속에서 나직이 던진다.
노자는 『도덕경』 55장에서 덕을 품은 사람은 마치 갓난아기와 같다고 말한다.
아기는 세상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는다. 욕심도 없고, 계획도 없다.
그러나 누구보다 강하고 조화롭다.
맹수도 해치지 않고, 독충도 피해간다.
목이 쉬도록 울어도 해치지 않는 건, 기가 흐르며 막히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의 나는 어쩌면 그 ‘기’를 되찾기 위해 새벽에 깨어나는지도 모른다.
억지로 이뤄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진짜 내 마음의 평온과 조화가 무엇인지 스스로 묻기 위해.
브런치에 글을 쓰고, 인스타그램에 나의 삶을 조각처럼 공유하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덕을 쌓고 싶은 걸까? 아니면 멋진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걸까?"
고백하자면, 글을 고치고 다듬는 내 손끝에는 누군가의 칭찬과 관심을 바라는 마음이 묻어 있다.
"좋아요"가 많을수록 오늘 하루를 더 잘 산 것처럼 느껴지고,
공감 댓글이 달릴수록 ‘내가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라는 안도감이 차오른다.
그럴 때면 스스로를 '속물'처럼 여겨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조금은 다르게 생각해 본다.
어릴 적 시골 마당에서 키우던 매화나무를 기억한다.
겨울을 뚫고 피어난 매화는 누군가 봐주지 않아도 향기로웠다.
그 존재만으로도 주변의 공기를 맑게 했다.
‘함덕’이란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나를 드러내려는 의도가 있다 하더라도, 그 안에 진정성이 있다면,
그것은 결국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행위가 된다.
내가 SNS에 삶을 올리는 이유가 결국 누군가에게 "너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도구가 될 수 있다면,
그 또한 덕이 머무는 방식이 아닐까.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건, ‘하고 싶은 일’이 아닌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신호다.
어떤 일이든 억지로가 아니라, 마음을 담아 하고 싶어져야 한다.
그렇게 삶을 다시 바라보면, 새벽 3시 31분의 기상도,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순간도,
모두 나를 위한 선택이 된다.
"진짜 하고 싶은 삶을 살고 있는가?"
이 물음은 나를 얽매지 않고 오히려 해방시켜 준다.
답이 없는 질문을 품고 하루를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성장이다.
함덕이란, 억지로 도를 따르려 하지 않아도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덕이다.
나를 내려놓고, 나를 키우는 삶.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평화롭기 위한 길.
그리고 어쩌면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도 결국 같다.
나의 꾸준함, 나의 흔들림, 나의 질문이
어느 누군가에게 "나도 그래"라는 공감의 씨앗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나의 덕이 누군가의 삶에 머무는 순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