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니다드(Trinidad)에서의 11:11

by 덴고 싱클레어

트리니다드의 3층 민박집에서는 쿠바 옛도시의 풍경이 세밀했다.


멀리 낙조를 관찰하기 좋다는 송신탑이 서 있는 산도, 그리고 저 멀리 라 보까(la boca) 해변의 자취가 아슬아슬 지평선에 닿아 있었다.


카리브해를 끼고 있는 중미의 기후 답게 검게 그을린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고, 오토바이는 포장되지 않은 땅의 흙탕물을 튀겨댔다. 그들의 오래된 조상들이 스페인 군정하에 살기 위해 배워나갔을 스패니쉬 억양은 어딘지 억센 데가 있었다.


3층 민박집의 2층은 개방감이 좋았다. 오랜 세월에 벽 한쪽이 날아가 있었기에 투숙객들은 방 안에 있다가도 다섯 걸음 만 밖으로 나오면 쿠바의 옛 도시의 현재를 당장 목도할 수 있었다.


맞은편 2층 집 테라스에는 어린 소녀가 늘 이쪽을 훔쳐다 보고 있었다. 호기심 많을 나이였다. 갈색 피부의 큰 눈을 가진 소녀는 눈을 돌리지 않은 채 이쪽의 여행객들과 시선을 교환했다. 며칠을 머물러 보니 그 소녀는 학교에 가지 않는지 늘 그 자리였다. 나보다 먼저 와 있던 다른 여행자로부터 “이쪽의 한국인 남성과 어울리다 아빠로부터 출금상태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 벽이 다 허물어진 오래된 야외 옥상의 카우치에 앉아 분주히 오가는 꾸바노들을 바라보며 태연의 11:11 이란 노래 그 한곡을 참으로도 많이 재생했다. 광장의 제한된 곳에서 와이파이 카드를 구매하여, 그것도 단 30분만 이용할 수 있는 나라이다 보니,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노래를 듣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서울에서부터 담아간 이 노래를 많이 틀게 된 것도 그런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나 쿠바에서의 2주동안 이 노래에 애착이 간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나는 그 몇주 전 한국을 떠나며,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악마의 목구멍’에 몸을 던진 줄 알라”고 친구들에게 농담을 건네고 떠났다. -악마의 목구멍은 이과수 폭포의 주요 포인트를 말한다- 만약 이 여행이 실패하면 나는 정말 상징적으로 그 목구멍을 갈구하려 하였다.


내게 있어 여행은 두 종류이다, 하나는 휴양이고, 다른 하나는 여정이다. 여정은 다시 ‘배움’과 ‘피난’의 방향으로 나뉘는 것 같은데, 필경 쿠바행은 ‘피난길’이었다.


한국에서는 오래된 싸움이 끝나가고 있었다. 어깨까지 길렀던, 그래서 곧잘 묶고 다녔고, 그래서 결혼한 누나들이 머리끈을 사주기도 했던, 그 방랑의 시절이 어느덧 마감하고 있었다.


트리니다드의 2층집은 변곡점의 중앙 같은 곳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참을 반복해 들었던 태연의 11:11은 그 중앙에서 좌로도 우로도 가지 못하며 머뭇거리던 내 마음이었다. 조금만 더 앞으로 나아가면 00:00이고 나는 새로운 날을 부여받게 된다. 그것이 무엇보다 무겁고, 무서웠던 시기였다. 생의 처분이 나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계획하에 있다 믿었고, 은혜로운 처분만을 기다리며 숨죽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게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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