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은 좋은 미각을 가졌었다.
언제든 메뉴판에서 가장 아래쪽에 있거나 이름이 특이한, 혹은 재료가 특이한 메뉴를 골랐다. 나는 언제나 안전한 메뉴, 그러니까 그 식당의 베스트 초이스나, 가장 상단의 메뉴, 혹은 가장 익숙한 재료가 있는 음식을 고르는 사람이라, 연인의 그러한 선택 앞에서 언제나 약간 긴장해야 했다.
그래서 때로는 정말 형언하기 어려운 맛을 느끼며 연인을 타박해야하는 경우도 있었고-즉, 실패한 경우다-, 두 사람다 눈이 동그래져 연신 감탄을 연발하며 ‘재미있게’, 어떤 ‘놀이기구’를 타듯 음식을 즐겼던 기억도 있다-성공한 경우다-.
연인은 참, 개도 잘 알아보았다. 함께 걸으면 온 갖 종류의 개의 이름이 튀어나왔는데, 나는 “어떻게 그걸 기억하느냐”고 물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연인은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담’ 했을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면 디테일이 보이는 것이리라.
연인의 집에 놀러갈 때에도 소금은 그저 내가 우리집에서 우리 엄마가 사용하는 천일염 이런 소금이 아니었고, 무슨 어디 그리스식 무슨 그런 제목부터 아득해지는 소금이 있었다. 물론 그 소금은 통을 아래로 기울이고 뒷부분의 몸체를 “기익기익” 돌려 뿌려대는 고상한 물건이었다.
나는 미각이 섬세하다거나, 음식에 특별한 기호가 있지는 않아, 뭐랄까 나만의 리스트를 가진 것은 없는 것 같지만, 태어나기를 원초적으로 호기심이 많고, 도전 정신(?)이 있어 눈 앞의 선택지를 가리지는 또 않는 타입이라 언제나 새로운 음식과 새로운 장소를 경험하는 데 있어서는 연인과 궁합이 좋았던 것 같다.
그런 연인이 나를 위해, 언젠가의 나의 생일에 예약한 식당 이야기를 간단히 해보려한다.
역시나 그런 델리컷한 분야로는 무식한 나이기에 그 음식들이 무엇이었는지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 식당은 프랑스 정통 레스토랑, 그러니까 요샛말로 파인 다이닝이었고, 그런 식당의 이름에는 응당 그래야할 것처럼 서울 미슐랭가이드에서 뭐 높은 별점을 부여한 곳이다.
그 날의 저녁 식사는 나의 모든 섭취의 기억을 뒤바꿀만한 특별한 코스였다. 모든 접시들이 이것은 무슨 화성의 귀족들이 먹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처음 보는 풍미와 재료들 일색이었다. 아주 큰 행성을 닮은 원반 접시에 아주 작은, 마치 이제 갓 태어난 병아리를 바꿔 올려 놓아도 좋을 정도의 아주 조막막한 크기의 음식들이었다.
사실 음식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것이 이것은 무슨 아이템은 아닌가? 혹시 이걸 먹으면 나의 예지력이 상승한다거나, 마나가 채워진다거나 그런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시각적으로도 매우 특별했는데, 유려한 채소 위에 게거품 같은 것이 보글 거리고 있다거나, 젤리 젤리한 것이 말끔하게 발라져있다거나, 내장인지, 소스인지 모를 노란 것이 비스킷 같은 것 위에 한웅큼 올려져있는 식이었다.
아무튼 구글링을 하여 알아낸 그것들의 이름은 ‘아뮤즈 부쉬’ -아마 그래도 이것은 한번쯤 들어본 것 같긴 하다-, , ‘꼬냑으로 절인 푸아그라와 꼬냑 젤리’, -그런데 이것은 대체 무엇인가 나는 꼬냑도 푸아그라도 먹어본 바가 없는데, 무려 푸아그라를 꼬냑으로 절여내었고, 그것도 모자라 꼬냑을 젤리로 뽑아 내어오기까지. 나머지는 ‘랍스터 까넬로리’ , ‘덕자 병어’ 같은 것들이었을 것이다.
사실 그날 내가 뭘 먹었는지 아직도 모른다. 아마 페이스북에 들어가면 사진이 있을 것이지만, 그것은 마치 금성이나 화성의 풍경을 들이밀고 여기가 어느 지방인가 묻는 것과 비슷할 것 같다. 거기에 곁들어진 와인은 샤토 피에르-비주 앙주 레 후아니에 라는 어느 고귀한 후작의 이름을 닮은 화이트 와인이었다.
아무튼 접시까지 싹싹 핥아 먹었다.
물론, 그렇게 접시들이 나오기까지 서버? 웨이터?가 들려주던 설명도 전연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분명히 한국말이었던 것 같은데 마치 과학 논문 초록을 듣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결론은, 사실 나는 지금도 내가 그것을 실제로 먹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연인과 소꿉 장난 같은 것을 벌이다 스르르 잠이 들어 그만 그간의 여러 경험들이 생성해 낸 꿈에서 찾은 환상의 식당은 아니었는지. 넷플릭스에서 하는 요리 프로를 보다가-이것도 연인이 보던 프로다-그만, 그 장면을 연인과 찾은 실제의 경험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쩐지 음식이 담긴 행성 모양의 그 접시에서는 묘한 진동음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음식을 나르던 서버의 머리에 얹어있었던 모자는 그들의 삼각뿔 머리를 감추기 위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자는 필경 자기의 고향 언어를 읊었는지 모른다. 그 의미는 ‘지금 갓 내어온 플레이트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나는 지구에 불시착하였고, 내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스페이스X사로 데려가줄수 없냐’는 말이었는지도...
무튼, 그것이 꿈이건 현실이었건 참으로 소중했던 하루였다. 연인과는 식사를 마치고 어둑해진 예술의전당 거리를 자박자박 걸었던 것 같다. 4월의 저녁의 공기는 아무 걱정할 일이 없다는 듯 평온하고, 부드러웠다. 그런 시간이, 그런 맛을 느끼던 한 시절이 우리에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