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빨간 머리가 유난했던 학보사 선배 C는 그런 말을 했다.
“극장을 더 좋아한다”
그 밤, C는 어떤 다른 수식어 없이 그 말만을 하였고, 내가 ‘극장’과 ‘더’ 사이에서 고민 하던 중 이야기가‘극장’쪽으로 흘렀기에 과연 C가 ‘극장’에 버금가게 애정했을‘그 무엇’에 관하여는 알아보지 못함이 못내 아쉬운 기억이나 “극장을 더 좋아한다”던 그 말의 울림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나라면“극장을 더 좋아한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감히 그런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그렇게 하려면, 아주 귀한‘다른 것들’에 대해 눈을 질끈 감아야 할텐데, 선택과 용기가 필요한 일일텐데.
가령, “나는 소연이를 더 좋아한다”, 이러면 이를 알게 된 소혜가 너무 서러워할 것 아닌가.
어려운 결론이므로, 나는 그날 C가 밝히지 않은 다른 귀한 것들을 ‘극장’에 관련하여 말해보고 싶다.
“나는 (멀티플렉스보다) 단관 극장을 더 좋아한다”
그래, 역시 단관이 좋다. 하나의 스케쥴에 단 한 작품만 상영할 수 있는 곳. 그래서 그 시각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같은 영화를 보러 발품을 팔고야 만 곳. 어딘가의 마음 한 구석에 비슷한 기쁨과 폐허를 가진 사람들이 같은 화면을 바라보는 곳. 약간의 동지의식마저 느껴지는.
1964년 태동한 서울극장이 이달 말(21.8.31.)폐관을 한다고 한다. 폐관하면서 <고맙습니다 상영회>를 하며 그간 서울극장에서 수놓였을 무수한 걸작 영화들 중 일부를 엄선 해 상영 중이라고 한다. 나는 사실 이 극장을 잘 모른다. 시네마테크 취지를 가진‘서울아트시네마’와 독립영화 전용관인 ‘인디스페이스’를 겸하고 있는 극장이라고만 알고 있다. 내가 여성영화제 중 1편을 어느 과거에 여기에서 본 것도 같은데, 기억이 확실치 않다.
그래도, 오래된 것이 사라지는 일은 자못 마음이 쓰이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 마지막을 함께하러‘고맙습니다 상영회’에 참여하였다. 거진 초행길이라 종로의 도심 골목길은 참 조심스러웠다. 내가 고른 작품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서스피션(의심)’. 80년 전의 흑백영화 작품을 보고 있노라니 로맨틱 서스펜스물임에도 노곤노곤 잠도 밀려왔지만, 여주인공의 미모가 워낙 아름다워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영화가 끝나고, 어느 관객 분이 아쉬웠는지 자신이 앉은 자리와 막 끝난 영화가 비춰지던 스크린을 열심히 사진에 담고 있었다. 아마 그분의 젊음의 때가 묻어있는 공간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런 기억까진 없지만 그래도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서울극장, 마지막 상영길에 앉은 내 자리와 스크린을 사진에 담았다.
이렇게 또 하나의 독립예술극장이 문을 닫는다. 먼저 역사로 사라진 안국동의‘시네코드 선재’와 대학로의 ‘하이퍼텍 나다’가 선배님, 고생 많으셨다며, 어서 오시라며 두 손을 감싸 잡을 것 같다.
영화는 계속될 것이다. 그러는 한 기억도 계속될 것이다. 내가 어떤 영화를 생각할 때‘선재’와 ‘나다’를 불러내듯, 서울극장도 어느 관객들에겐, 거기서 본 영화와 결합 해 영원의 장소로 남을 것이다. ‘고맙습니다 서울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