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오며 많은 사람들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증오해 왔다. 지금도 그러하며, 아마 흙에 묻힐 때까지 그럴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박민규는 저명한 어느 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맥락도 없이 “싫은 사람은 그냥 계속해서 싫어하면 된다”라고 명쾌하게 정리하였던 것 같다.
내 안을 의심하지 않는 것. 우리가 좋아하거나 기분 좋아지는 것에 대해 딱히 그 이유를 되짚어 보지 않는 것처럼 싫어하고, 더러운 것에 대하여도 사실은 뒤를 돌아볼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공동체의 평화를 지향하게끔 세팅된 어느 유전적 명령이 스스로를 자꾸 검열하게 하는 것이리라.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엠케이라는 친구를 보건대, 이 친구야 말로 인간의 희노애락애오욕 근본감정에 대해 대단히 솔직하고, 그 타당함에 대해 거의 뒤를 돌아보지 않고, 즉시 즉시 잊고, 다시 자꾸 자꾸 다른 행동들을 거듭해 나간 참 인물이다.
엠케이는 정말 순수하게 여자를 좋아했다. 같은 학과 동기였던 이 녀석은 할 수가 있는 한 모든 여자들에게 대쉬를 했고, 그런 이유로 그가 대학 재학 시절 대쉬를 감행한 여학생 수는 최소 700명이 넘는다(이는 내가 한 600명 쯤 그럼 되냐고 물었을 때 “더 돼지!”라고 하던 엠케이의 음성이 순도 높은 떨림이었으므로, 그리고 그 당시 그 놈의 매일의 행각을 보건대 거의 확실하다).
엠케이에게 전화하여 “뭐하냐?” 하고 물으면 사실 답을 들을 것도 없이 녀석이 하던 말은 “뭐하긴! 서치 중이지~” 라는 경상도 억양의 말이었다.
그랬다. 이 녀석은 늘, 늘, 매 순간 써치 중이었다.
다른 친구들이 공강시간에 피시방을 가거나 당구장이나 동아리방을 갈 때, 녀석은 여학생들이 많이 드나드는 “미대” 나“생활과학대” 앞에서 붙박이 수위처럼 서 있었다. 무엇을 위한 것이냐면 모든 여학생들을 써치 중이었다.
녀석은 담담한 어조로 “우리학교 여자들 내가 다 안다”라고 하였다. 진짜 다 아는 것 같았다. 수업이 끝나고 밥 먹으러 가다가 내가 “와, 쟤 이쁘지 않냐”라고 하면 몇학번 단과대 어디, 남자친구 유무가 술술 나왔다.
잠시 이 녀석이 왜 엠케이냐면, H라는 친구가 녀석의 행태를 보고 “야 엠케이!”라고 시작한데 있다. 엠케이는 무개념의 영어약자다. 그놈의 만국민 SNS였던 싸이월드 일촌명도 엠케이었다.
그럼 왜 과연 무개념인 것이냐. 무엇보다 시간 관념이 없었다. 물론 시간 관념이 없는 사람은 많지만, 녀석이 시간 관념이 없는 것은, 약속 장소에 오다가 맘에 드는 여자를 발견하면 그 여자에게 눈이 꽂혀 그 여자를 따라 가버리는데 있었다. 거의 스스로 유인 납치되는 수준이었다.
그의 모든 눈과 신경은 오로지 써치, 써치에 있었다.
문제는 이 녀석은 입학하여 28살이 될 때까지 그렇게 많은 대쉬를 하면서도 단 한 명의 마음도 훔치지 못한데 있다(참고로 나는 이 친구가 31살까지, 무려 12학기째 학교에 있는 걸 보았는데, 그래 분명히 졸업은 하였을 것이다) 문제는 녀석의 눈이 너무 높았다. 170 정도의 모델급이거나 아나운서 스타일을 고집하였다. 그래서 심지어는 당시 연예인들의 산실인 D대 방송연예과 앞에서도 죽치고 있었다.
그런 취향의 여학생들은 진실로, 이후 티비에 나오는 여배우가 되거나 지상파 뉴스 앵커가 되는 식으로 나를 놀라게 했다. 녀석의 안목은 훌륭하긴 했던 거다.
보통 이 정도로 대쉬가 실패하면 자신을 뒤 돌아 보거나 멘탈이 바스라져 포기를 할 법한데, 녀석은 정말 지칠 줄 몰랐다. 엠케이는 다행이게도(?) 신실한 불교 신자였으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으로부터도 마음의 평화를 얻고 있었다. 자취방에서도 108배를 했다.
우리의 마음을 처연하게 했던 것은 스물 일곱부터인가, 그렇게 풍성하고, 심지어 가슴에도 김보성처럼 털이 송송났던 그의 발모가 거의 사라지고 없어지고 있단 사실이었다. 유전에 따라 아버지의 뒤를 이어 심각한 대머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엠케이는 모자를 쓴 채 대쉬를 하기 시작했고, 그것으로도 부족해지자 가발을 쓰고 대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후에는 네이버 무슨 카페에서 무료로 진행한다는 탈모 치료제 피실험자가 되어 회원들에게 자신의 모발 상태를 주기적으로 공개하는 와중에도 대쉬를 계속했다.
가슴이 아득했다. 녀석은 결국 서른 무렵이 되어 자기가 그렇게 원하던 키 170 정도의 모델급이라는 여자를 만나기는 했지만, 영 좋지 못한 사람이었다. 들어보니, 여자는 돈을 쓰지 않았고, 얼마 후에는 불치병에 걸려 수술을 받게 됐단 이유로 엠케이를 떠났다고 했다. 믿어야할지 말아야할지.
그런데 어느날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다 말다, 화면의 뮤직비디오 속 연인들의 모습에 눈이 꽂혀 동경과 슬픔이 범벅이 된 그의 촉촉한 두 눈을 보았을 때, 나는 더 이상 녀석을 탓하지 않기로 했다.
녀석에게 정말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를 만나는 일은 거의 종교였고, 레종 데 트르였던 것이다.
자기 일에 프라이드를 갖고서, 헌신하는 정신 앞에 은근히 녀석을 무시했던 내가 자못 부끄러웠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이제 녀석이 어디로 갔는지 누구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그를 버렸다. 학교를 졸업은 했는지, 정말 그렇게 바라던 예쁘고 키크고 마음 착한 여자를 만나 잘 살고 있는지, 탈모 치료는 잘 성공하여 머리털은 많이 자랐는지, 가슴털도 여전한지.
많은 계산이 필요한 시대에, 순도 높은 구애를 펼쳤던 녀석의 행위는 가치가 있던 게 아닐까, 오늘따라 엠케이가 많이 그리웁다. 나와 녀석은 베프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