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은 천국인가

by 덴고 싱클레어

돌아보매 김밥천국은 가히 천국이, 맞다.


김밥, 라면, 떡볶이, 돌솥비빔밥, 뚝배기 불고기까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한 끼 메뉴들이 그곳에 있다. 아마도 창업주는 온갖 종류의 음식을 한 곳에서 저렴하게 내어준다는 의미에서 천국이란 단어를 가져왔을 것 같다.


주머니를 아무리 뒤져도 먼지만 나오던 나의 20대 때에는 무엇보다 싼 가격이 천국스러웠다. 아르바이트비가 아직 들어오지 않는 날에도 1천 원이 있으면 멋쩍지만 김밥 한 줄을 뜨끈한 장국과 함께 달랠 수 있었다. 그렇게 아침을 달래고, 조조 영화를 보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여전히 돈이 없지만 그래도 20대 때의 거지 신세는 면한 나의 30대에서 보건대, 또 이 김밥집은 가히 천국이다. 온전히 나의 경우만 이겠지만, 나는 30대가 되어 안 그래도 없던 친구가 더 없어졌다. 모두 다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그 많던 싱아는 서로 부족하고 찌질했지만 소중했던 내 친구들었나.


나이가 드니, 번뇌에 더 사로잡힌다. 이러자고 30대가 된 게 아니다. 살기에 바쁘다. 가만 보니 어느 순간 맨홀로 빠져든 것 같다. 20대에는 못 나갔지만, 꿈은 있었다. 비루한 현실이지만 꿈이 방패가 되어주었다. 30대가 되니 비루함은 현실의 디폴트 값이란 걸 받아들이게 되었고, 꿈은 아무래도 잠자는 와중에서만 실현되었다. 이제는 현실의 디폴트 값을 고치고자 산다.


그런 이유로, 서로가 숨어 버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조용필의 ‘꿈’처럼, 화려한 도시를 찾아 서울로 올라왔지만, 어느 초라한 문턱에서 각자 뜨거운 눈물을 마시고 있는지 모른다.


대학생 시절 조조영화를 보기전 아침을 달래던 풍경을 괜스레 떠올리며, 지금의 이 올드보이는 다시, 만만한 김밥천국에서 장국을 한 숟갈 든다. 목에 넘어가는 짭조름한 맛이 문득 짠하다. 혼자다. 혼자지만 내 앞에 마주 앉아 김밥 밥알을 튀기며 조잘조잘 떠들어대던 눈이 맑았던 너희들을 떠올린다.


마지막으로 재껴둔 김밥 꼬다리 한 알을 집는다. 장국도 비어 간다. 언제고 너희들을 다시 만나러 가겠지. 너희도 나를 만나러 오겠지. 거기가 김밥천국은 아니면 좋으련만, 아니 어디가 무슨 상관이랴.


이제 이곳은 일에, 사람에 지친 내가, 물에 흠뻑 젖은 봉제인형 꼴을 하고도 누구에게도 마음을 들킬 염려 없이 쉬러 오는 안식의 장소가 되었다. 거기, 너희들도 어느 김밥천국에서 장국을 한 숟갈 들고 있을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오늘 힘든 일은 없었니.


경쟁의 까만 터널에서 잠시 빠지는 쉼표의 아지트, 정장을 입은 직장인들의 동글게 만 등을 쉬이 볼 수 있는 곳, 이제는 김밥집 이모에게도 시선이 간다. 세월은 이모와 농담을 할 만큼의 넉살을 내게 주었다. “이모 시급이 올랐으면 좋겠어요.”, “다음엔, 꼭, 친구들과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