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욕망에 충실해 살아가는 것, 아니 복종해서라도 욕망에 회피하지 않고 마주해 내는 것, 이것이 인생의 존재이유가 아니면 달리 그 이상, 그 상위에 어떤 것을 올릴 수 있겠는가.
나는 '내' 욕망이라 했다. ‘타자’의 것이 아니라.
내안의 것에 충실 내지 복종함은 욕망을 실현한다는 지향이며 이는 '자기'가 되는 것과 거의 동치다. 자기는 자기다워야 자기지, 나 아닌 세계의 욕망을 미완성의 자기에게 올려둔 채 인상쓰고 살 순 없다.
그래, 그러나 내 욕망에 충실하고, 나아가 자기가 된다는 거 도저히 쉬운 일이 아니다. 가치있는 일에 쉬운 일은 없다는 직관에 동의한다면, 나는 헤르만 헤세의 아래 문장을 인용해 보겠다.
내 속에 솟아 나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소설 데미안의 이 말, 무엇을 시사하는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욕망해도 괜찮아, 너의 머리는 어차피 돌처럼 굳는 중일터 아무리 욕망하려 발버둥 쳐봐야 몇 발자욱 나가지 못해. 넌 결국 또 계산적(reasonable)이 되어 제자리로 돌아올 걸?" 그러니 좀 더 과감해도 좋아. 날 믿어.
인생의 시기에, 누구에게나, 어떻게 하면 자기의 고유한 욕망에 충실하게 살 수 있는지를 참회해 보는 일은 처절히 필요할 지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