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쓰는 공포 3부작은 모두 사실이다. 나는 이를 국기에 대고 맹세라도 할 수 있다. 선서.“양심에 따라 숨기거나 보태지 아니하고 사실 그대로 말하며, 만일 거짓말을 하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바로.
사춘기시절부터 품어 온 나의 오래된 공포. 무섭다. 지금도 겨에서 땀이 날 것 같다. 겨의 땀은 닦기도 곤란하다. 그저 말라 없어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한 번은 겨가 너무 미끌거려 양팔이 제멋대로 돌아 네 발로 걸어 다녀야 했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위급의 신호를 겨의 홍수량으로 측정하곤 한다. 겻(견)물생심. 들어는 봤나. 좌우의 겨에 웅덩이가 생기고 겨털이 겨영을 시작할 때 나는 사람들 틈에서 오늘도 글렀구나 싶다. 집으로 갈 때임을 알아차린다. 말하자면, 위급신호를 감지하는 나의 편도체는 겨에 달렸다. 집에 오면 마른 겨가 파르르 신음소리를 낸다. 웅덩이는 혀의 백태로 올랐다.
대인공포가 너무 심했다. 어느 정도냐면, 오줌을 못 쌀 정도였다. 그래서 양 겨가 그렇게 대신 울어댔던 것일까. 하여튼 오줌을 못쌌다. 어디에서? 화장실이지. 공중화장실. 아니. 대관절 나의 성기는 옆에 누가 있으면 절대로 굳어버리는 것이었다. 너 이녀석. 주인 말을 들어야지. 안드로메다로 간 거야. 가르강튀아로 빨려 들어간거야. 깨어나라구. 빨리, 용무를 마치라구! 소변기 앞에서 1분이 넘게 아무런 진척 없이 서 있는 내 심정은 꾸준히 참혹한 것이었다. 양 옆으로 낯모를 남성들이 진군해오고 빠져나가고, 진군해오고, 빠져나가고, 왼손에 감싸진 무수한 성기들이 오렌지 환타 빛 폭포수를 힘차게 한 줄씩 맹글고 나갈 때 나만 오도카니 소변기와 내 미니미 사이의 허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란 책이 말하는 상황이 이건가. 아니야, 주변 양 옆이 바뀌는 걸 보면 시간은 흘러, 근데 나에게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제발 힘내라고, 내 녀석아.
세상에는 참 많은 달인들이 있다고, 그래서 내가 얻은 능력이 있다면, 남자애들 중 소변 달인들과 소변 지진아들을 내가 한 눈에 알아본다는 점이었다. 물론 후자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간혹, 나조차도 동료를 만날 때가 있다. 내가 그 절절할 마음을 알기에, 때로는 먼저 마치고 나가기 미안해서 차분히 같이 마치기도 한다. 쓸데 없는 인류애. 렛츠 피 투게더.
자 이제 여기까지 오면, 나간 사람들이 많을 거라 생각해. 사실 지금부터가 진짜 이야기야. 어쩌다 이런 증상을 얻게 된 것일까를 오래 생각했어. 나는 왜 나에게서 가장 무섭고, 두렵고, 수치스러운 것일까를. 왜 같은 남자 성별들 틈에서마저 나는 오줌 한방울을 흘리기를 두려워하는 인간이 되어버린 것일까를, 이런 문제로 정신과를 대구까지 다녀오는 이런 여.병.추의 경지가 무엇에서 왔는지를 오래도록 고민했어.
나도 잘 몰라. 짐작하는 건, 나의 아주 행복했던 유년시절이 마치 알프레도 아저씨가 돌리던 영사기 필름이, 토토가 놀러가기 좋아하던 그 영사실에서 뜨거운 열기 앞에 홀라당 타버린 것처럼 하루 아침에 끝나버린 것에서부터 시작이었던 게 아닐가도 싶어. 어느 날 말이지, 초등학교 6학년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광주에서부터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내려와 계시더라고. 12살 어린아이도 알겠더라. 이제부터의 삶은 완전히 달라지겠구나. 동화는 끝났구나.
어머니가 다른 남자를 만났어. 아버지는 화가 많이 났어. 모든 주위가 흐트러졌어. 시야에서 학교가 무너지고, 음악은 선율이 되지 못했어. 슈퍼를 가면 아주머니가 “네 어머니가 바람 폈다며”라고 너스레를 피웠어. 옆에서 남자가 말렸어. 이게 다 뭐야. 이게 무슨 일이야 대체. 14살짜리 아이가 아파트 1층에서 밥을 태웠어. 먹어야 하니까. 압력밥솥이 치글치글 거리는데 바깥에서 어느 아주머니가“얘들아~ 밥~ 탄다”하고 크게 외치던 소리가 아직도 선해. 신기도 하지. 누나랑 내가 밥 태우는 줄 다 알고 있었구나. 얼마 못가 형이 집을 나가고, 누나도 집을 나갔어. 저녁 식탁이 어두워‘칼로리 바란스’를 사 먹었어. 그런 거라도 먹으면 생육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사춘기 성장에 도움이 되잖을까. 싶어서. 누나는“네가 운동을 안해서 키가 안 큰 거야”라고 해. 나는 칼로리 바란스를 많이 먹어서 그런 것 같은데. 아니지, 그냥 우리 아버지가 키가 안 컸어.
하고 싶은 말은 그거야. 내가 화장실을 무서워 한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시절 그 아이를 쓰다듬어 주던 어른이 한 명도 없었단 게 좀 많이 아쉬워. 한순간에 가장 따뜻한 쉼터인 가족의 온기를 잃은 사춘기 소년에게 “괜찮다”고.“너의 비극은 영원하지는 않을 거야”,“세상은 단맛, 쓴맛, 똥맛, 별맛 다 삼키고 가는 거고, 그게 네게 좀 일찍 찾아온 것 뿐이야”라고 말해줄 그런 다정한 어른을 만날 복이 조금 부족했던 것 같애. 근데 그건 생각나 고1 때인데, 대관절 하필 중학교 친구네 집에서 누나랑 셋방살이하던 곳에 영문도 없이 찾아와“호두야, 너는 꼭 성공할 거야”라고 말해주던 우리 형 친구가 생각나. 대기 형, 나는 성공도 못했지만, 그저 평범하기를 원했어. 사람들 사이에서 화장실에도 잘 못가고, 그래서 양 겨가 대신 울어대는 그런 고장난 마음이 아니라, 아빠랑 엄마 차 타고 변산 해수욕장 한 번 더 놀러가는 그런 유년을 갖고 싶었어. 첫사랑도 하고 싶었어. 이게 공포의 기원이 맞는 걸까. 아니래도 할 수 없지. 비브르 사 비. 오늘도 겨가 바람에 스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