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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 추천 카페] 원주 황골에서 마주한 가을

by 다닥다닥

원주의 가을은 유난히 부드럽다.

바람은 천천히 흘러가고, 나뭇잎은 그 속도를 따라간다.


그날, 나는 치악산 자락 아래 황골이라는 이름이 예쁜 마을에서 ‘수다’라는 카페를 만났다.

처음엔 우연이었다.

차를 몰고 지나가다, 검색창에 ‘황골 카페’를 눌렀을 뿐이다.

하지만 그곳은 우연으로만 설명하기엔 너무 잘 준비된 공간이었다.


계곡 옆의 카페, 공기부터 다르다


카페 수다는 황골로 길가에 자리해 있다.

주차장은 넓고, 그 아래로는 맑은 계곡물이 흐른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들려오는 물소리가 마음을 단숨에 풀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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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공기엔 낙엽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 냄새를 들이마시며 계단을 오르니, 통유리 안으로 따뜻한 빛이 흘러나온다.

그 순간, 이곳이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 향이 머무는 공간


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건 나무의 온기였다.

카페 수다는 목공방과 함께 운영되는 공간이라, 곳곳에 손으로 만든 소품이 놓여 있다.

작은 조명, 나무 트레이, 잔잔한 나무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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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둘러보다가야 자리를 잡았다.

테이블 사이 여유가 넉넉해 혼자여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무엇보다, 조용하다. 사람이 많아도 소리가 겹치지 않는다.


꿀자몽 한 잔, 그 완벽한 균형


메뉴판에는 계절을 닮은 이름들이 많았다.

홍시빙수, 귀리빙수, 망고스무디, 떠먹는 꿀자몽.


나는 고민 끝에 꿀자몽을 골랐다.

‘자몽에 꿀을 절였을까?’ 싶었는데, 첫인상부터 예뻤다.

머그잔 가득 자몽과 꿀이 넘실거리고, 자몽 조각은 정성스럽게 잘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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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입 마시자 달콤함이 먼저 오고, 뒤이어 은은한 쓴맛이 따라왔다.

피로가 녹는 듯한 조합이었다.

커피 대신 이 한 잔이면 충분했다.


물소리와 음악이 겹치는 오후


창가에 앉았다.

눈앞엔 계곡이 흐르고,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리듬처럼 들렸다.

비가 내리지 않아도 비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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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에 설치된 작은 장치에서 물을 흘려보내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그 덕에 실내는 자연의 소리로 가득했다.

스피커에서 흐르는 음악이 그 소리와 겹치며, 하나의 배경이 되었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아무 말도 하기 싫어졌다.

말 대신, 마음이 쉬는 시간.

쑥 파운드 케이크와의 조용한 동행


자몽의 상큼함에 어울릴 무언가가 필요해 쑥 파운드 케이크를 함께 주문했다.

촉촉한 식감에 은은한 쑥향이 감돌았다.

달콤함과 쌉쌀함이 만나는 그 미묘한 지점에서, 나는 또 한 번 미소를 지었다.


저녁 전이라 가볍게 들렀는데, 어느새 배가 찼다.

이런 곳에선 시간을 오래 머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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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남기는 인상


이 카페는 단순히 ‘예쁜 곳’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공간이 사람의 속도를 바꾼다는 걸 느낀다.

도심의 빠른 템포에서 벗어나, 조금 느리게 살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화장실에서조차 향긋한 꽃내음이 난다.

관리 상태가 좋아 청결하고 쾌적하다.

작은 디테일까지 신경 쓴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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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골의 오후가 주는 여운


카페 수다는 화려하지 않다.

그 대신, 잔잔하고 진심이 있다.

나무와 물소리, 그리고 계절의 색이 한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섞인다.


그날 이후로 황골을 떠올릴 때면

나는 여전히 그 꿀자몽의 향과 함께 물멍하던 창가 자리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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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


위치: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황골로 인근

특징: 계곡 옆 감성 카페, 넓은 주차장, 목공방 병행

대표 메뉴: 꿀자몽, 홍시빙수, 귀리빙수, 쑥 파운드 케이크


� 기억하고 싶은 문장

“비가 오지 않아도, 마음엔 비소리가 들리던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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