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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와 벨기에 여행은 처음이지?

파리에서 브뤼헤까지, ‘처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모든 설렘

by 다닥다닥

푸르렀던 5월, 어디든 발길 닿는 곳마다 여행하기 딱 좋은 계절이었다.


그 계절, 나는 지구 반대편을 향해 과감한 모험을 준비했다. 그것도 갓 만들어진 따끈한 여권 하나 들고.


첫 유럽, 첫 장거리 여행, 첫 ‘혼자’ 여행. 두려움보단 설렘이 컸다.

주변 사람들은 미쳤다는 말을 남발했지만, 당시의 나는 들리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유럽이라는 땅에 발을 디딘다는 생각에 들뜬, 20대 중반의 직장인이었을 뿐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난 ‘계획’이라는 단어에 집착했다.


프랑스와 벨기에 여행을 1년 전부터 준비했다. 누가 보면 논문 쓰는 줄 알았을 것이다.


여행 관련 책만 다섯 권 이상 샀고, 단순히 읽는 데 그치지 않았다. 손으로 써가며 요약하고, 컴퓨터로 정리해 나만의 여행 노트를 만들었다.


이 정성으로 진짜 논문을 썼다면, 석사는 이미 따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난 안다. 사람마다 잘하는 분야가 따로 있다는 걸.


계획 짜기는 참 잘하는데, 그걸로 뭘 대단하게 해낼 자신은 없다.


그래도 ‘여행만큼은’ 망칠 수 없었다. 체크하고 또 체크하며 하나하나 준비했다. 비행기 티켓부터 유심, 여행자 보험, 숙소, 기차표까지.


그러면서도 이상했다.

철저하게 계획하면서도 한켠에는 "망치면 어때"라는 여유 아닌 여유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아마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배우기 시작한 건.

4월 말, 나는 파리로 향하는 아시아나 비즈니스석에 몸을 실었다.


사실 첫 여행엔 두 부류가 있다.

돈을 아끼는 파 vs. 아끼지 않는 파. 나는 당당히 ‘아끼지 않는 파’였다.

왜냐면, 처음이라는 건 늘 좋았으면 좋겠으니까.


비즈니스석은 만족스러웠다. 12시간을 버티기엔 충분했다.

다만 라운지에서 술을 좀만 덜 마셨다면… 하는 아쉬움은 남았다.

비행기에서 세끼 이상을 먹고, 퉁퉁 부은 얼굴로 '파리 샤를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저녁에 출발했는데 파리는 아직도 오후다.

약 8시간의 시차.


이 신기한 시간의 착각 속에서 내 첫 유럽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파리 여행은 사실 덤이었다.


파리는 유럽의 중심이자 다른 나라로 이동하기에도 딱 좋은 위치였다.

그리고 나는 유난히 벨기에라는 나라에 끌렸다.


하지만 벨기에에 대해선 나쁜 소문도 많았다.

인종차별, 별로 맛있는 게 없다는 후기들.


그런 정보들이 오히려 오기로 바뀌었다. ‘그래서 더 가보고 싶다’는


파리에서의 둘째 날을 보내고 셋째 날, 나는 파리 북역으로 향했다.

한국에서 미리 기차표를 예매해 놓았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파리 북역의 치안 문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던 터라 더 긴장됐다.

다양한 인종이 섞여있는 공간, 눈빛 하나에도 민감해졌다.


긴장을 풀기 위해 스타벅스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다행히 별문제 없이 기차에 탑승할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벨기에로 넘어가는 국제선 기차, 한국인에게는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여권 검사를 하고 기차에 올랐다. 그런데 벨기에 여권 도장은 왜 안 찍어주는 걸까? 조금 아쉽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기차는 브뤼셀을 향해 조용히 달렸다.

서너 시간이었나? 창밖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잠들기 아까웠다.

구불구불 이어진 유럽의 시골길, 고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그때 문득 생각했다. ‘아, 내가 이걸 보러 여기까지 온 거구나.’

브뤼셀 중앙역에 도착한 나는, 브뤼헤로 가기 전 잠시 브뤼셀을 구경하기로 했다.

마침 노동절이어서 거리엔 인파가 넘쳐났고, 그 유명한 오줌싸개 동상도 봤다.


사실 생각보다 감흥은 없었다. 긴장해서였을까? 다행히 인종차별은 겪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포장마차 같은 곳에서, 벨기에 할아버지가 파는 달팽이 요리를 사 먹었다.

이곳 말로는 에스카르고. 단돈 2유로.


달팽이는 계획에 없던 음식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끌렸다. 청량리 골뱅이 골목의 고급 버전 같은 맛.

후추가 강하게 들어가 우리 입맛에 더 가까웠다.


예상외로 꽤 만족스러운 길거리 미식 체험이었다.

브뤼헤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다시 역으로 향했다.


사람들에게 몇 번이나 "이거 브뤼헤 가는 거 맞나요?" 묻고 나서야 안심하고 탑승했다.


브뤼셀에서 브뤼헤는 금방이다.

그리고, 도착. 브뤼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순간이었다. 영화 속 그 작은 유럽 마을이 실제로 눈앞에 펼쳐진 것 같았다.

CG 같은 풍경, 그림 같은 거리, ‘내가 여기에 진짜 있는 게 맞나?’라는 감탄만 맴돌았다.


‘동화 같다’는 표현이 제일 근접하겠지만, 그래도 부족하다.

늦은 시간이라 숙소부터 찾아 나섰다. 구글 지도를 켜고 좁은 골목 사이를 헤맸다.


유럽의 골목은 단순한 듯 복잡하다.

입구가 숨어 있거나, 건물들이 엇갈려 있는 구조.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숙소는, 내가 선택한 에어비앤비였다.

개인적으로 유럽 여행에선 무조건 에어비앤비가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그 나라의 삶을 집 안 깊숙이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니까.


브뤼헤의 숙소는 기대 이상이었다. 거의 30평은 돼 보이는 단독주택.


혼자 쓰기엔 과하게 넓었지만, 그래서인지 조금 외롭기도 했다.

하지만 그 감정까지 여행의 일부니까.

간단한 체크인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브뤼헤 구경에 나섰다.


브뤼헤는 도시라기보단 마을에 가까웠다.


큰 광장이 중심을 이루고, 그 주위를 감싸듯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광장에는 말이 있고, 노래 부르는 사람도, 와인 마시는 사람도 있었다.


그날따라 모든 것이 내 몫 같았다.

첫 식당에서는 메뉴판에서 가장 익숙한 단어를 골라 ‘카레’를 시켰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기지만, 그만큼 난 카레를 좋아하고, 또 그 당시엔 뭐가 유명한지 몰랐기 때문이다.


의외로 괜찮은 맛이었다.

그리고 벨기에 하면 감자튀김!


마요네즈에 찍어 먹는다는 독특한 조합이 경이로웠다.

느끼할 줄 알았는데, 고소하고 감칠맛이 강해 자꾸 손이 갔다.

초콜릿은 혼자 먹기엔 많은 양이라 구경만 했다.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다시 광장으로 나와 맥주 한 잔을 시켰다.

그 기억은 여전히 또렷하다.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기억 중 하나다.

그렇게 짧은 1박 2일의 브뤼헤 여행을 마치고, 다시 파리행 기차에 올랐다.


충분했다.

처음이라는 단어에 걸맞은 아름다운 기억.


다음엔 꼭 벨기에만을 위한 여행을 다시 오고 싶었다.

아직도 파리만 찍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하루만 더 투자해 보길 권하고 싶다.


바로 옆 나라 벨기에, 생각보다 훨씬 깊고 다채롭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이, 그 나라를 기억하게 만들기도 충분하니까.


� 브뤼헤 여행 Tip


✔ 파리 북역에서 기차 예매는 미리미리

✔ 벨기에서 달팽이 요리, 감자튀김은 꼭 도전해 볼 것

✔ 마요네즈 감자튀김, 의외로 중독성 있음

✔ 브뤼헤는 하루 코스로 충분하지만, 하루 이상 머무는 것도 강추

✔ 에어비앤비 숙소는 넓을수록 외로움도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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