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고 가벼운 라라랜드와 쓰지만 깊은 바빌론
초저녁에 잠들어 깬 새벽에 며칠 전 보다만 영화 <바빌론>을 이어서 엔딩을 봤다. 요샌 영화도 한 번에 다 보는 일이 드물다. 늙었다는 얘기다.
데이미언 셔젤이라는 다소 낯선 젊은 감독 작품인데, 평론가들 사이에선 화제와 함께 찬사가 쏟아진 작품이다. 알고 보니 <위플래쉬>와 <라라랜드>를 만든 감독.
알려지다시피 <바빌론>은 <라라랜드>와 이란성 쌍둥이 같은 영화다. 라라랜드가 빛이라면 바빌론은 그림자. 혹은 라라가 할리우드의 환상을 그렸다면 바빌론은 현실을, 천국이라면 지옥을 그렸다고도 할 수 있다.
감독은 둘 중 어디에 더 무게를 두었을까.
물론 어두운 바빌론 쪽이다. 상영시간만 봐도 1시간이나 더 길다.
바빌론은 라라랜드와 서사구조가 거의 동일하다. 꿈을 찾아 부나방처럼 LA로 날아든 젊은 남녀가 우연히 만나 신기루와 같은 꿈을 좇으며 사랑하고 방황하고, 때론 성공에 젖어 타락하다가 이별하고, 결국인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아 지난 삶을 관망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특히 여주 미아가 옛남친의 공연을 보며 과거와 현재, 도달하지 못한 미래를 동시에 경험하는 판타지를 보는 라라랜드 마지막 장면과 바빌론의 남주 매니가 홀로 찾은 영화관에서 무성영화 시대와 유성영화,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3D영화를 동시에 보는 장면은 놀랍도록 유사하다. 음악에 대한 관심과 찬사, 디테일도 매우 닮았다.
돈과 마약, 난교파티에 물든 할리우드 영화 산업의 어두운 면을 가감 없이 때론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동시에 할리우드 영화의 역사와 시대를 풍미한 인물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연민, 찬사가 영화 곳곳에 짙게 배어있다.
영화는 인생을 모방하지만 때론 인생도 영화를 모방한다. <대부>가 공전의 히트를 친 후에 이탈리아 마피아들이 조직을 ‘패밀리’로 부르게 됐다는 이야기에서 보듯이.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듯 젊은 시절엔 계산 없는 사랑을 하고 동시에 신기루 같은 꿈을 좇는다. 좌절하고 때론 성공도 하지만 허무와 나태에 빠지고, 많은 실수와 유혹에 허우적 대다가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모여 이야기가 되고 인생이 되고 영화가 된다.
라라랜드와 바빌론은 영화에 대한 이야기이고 동시에 인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다만 라라랜드가 달고 가벼운 맛이었다면 바빌론 쓰고 깊은 맛이란 게 다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