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을 떠올려보니 올해 내가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은 영상제작을 배운 일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세계여행을 갈 수 있는 모든 것이 제한되었다. 여행은 발로 뛰고, 어디 멀리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코로나19가 바꾸어 놓았다.
나는 생애 처음 신비한 디지털 세상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준비물은 딱히 없었다. 스마트폰 하나면 족했다. 그리고 배우겠다는 자세만 가지고 오면 된다. 디지털 버스에 탑승한 인원은 15명이었다. 패키지여행이었고, 고객들은 중 장년층이었다. 우리는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연대감으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여행 가기 전에 가방을 싸면서 설렜던 감정이 되살아났다. 나는 어느 여행보다 기대감으로 차올랐다. 가이드의 친절한 설명이 있었다. 디지털 여행은 그동안 내가 했던 여행보다 많이 달랐다. 처음 여행지는 영상 자서전제작소였다. 여행에 필요한 준비물을 챙겼다. 백일사진부터 대학교 사진까지. 곳곳에 흩어져있는 자료를 모으고 사진을 찍었다. 과거 속의 사진은 빛을 잃어 이미 바래져 희미했다. 사진을 모아보니 사진 속 이야기들이 기억 속에서 꿈틀댔다. 많은 감정이 휘몰아쳤다. 나는 영상자서전을 만들면서 기뼜고, 때로는 눈물도 났다. 화가 나기도 한 사진도 있었고, 가슴을 치며 후회스러운 사진도 있었다. 나는 사진을 통해 인생의 희, 노, 애, 락을 스마트폰에 담으면서 느꼈다. 그러고는 그 깊은 감정을 건져 올려 영상으로 재탄생시켰다. 영상제작 여행은 쉽지 않았다. 찍은 사진을 ‘프리미어 프로’라는 디지털 세상에 편집하는 일은 무엇보다 힘이 들었다. 나는 그곳에서 늘 길을 잃곤 했다. 단체에서 자주 빠져나와 깜깜한 터널 속에서 혼자서 걸었다. 디지털 세상은 낯설고 어려웠다. 프리미어 프로에서는 시간적 흐름도, 개인이 빚어낸 역사도 배열하는 게 쉽지 않았다. 프리미어 프로는 시간을 짧게, 혹은 길게도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그런 치열한 시간을 끝나고 나니 내 인생을 딱 5분으로 압축할 수 있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인생의 파노라마 앞에 나는 안도했고, 감사했다. 그 시간들이 과거 같지 않았고 현재의 이야기처럼 숨 쉬고 있는 것 같았다. 이토록 생생한 기억이라니. 나는 시간의 조각조각을 이어서 잊었던 많은 감정에 집중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불쑥 내게 질문했다.
“너의 삶은 어땠니?”
나는 대답했다.
“좋았어, 매 순간 열심히 살았지. 시간을 허투루 쓰질 않았던 것 같아. 다만 내 시간에만 너무 집중해서 후회가 되려고 해.”
이 질문이 왜 머릿속에 맴돌았을까? 그 많은 나라를 여행하는 중에서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질문이 머릿속을 가만히 두드렸다. 혼란스러웠다. 그 대답은 여행을 끝낼 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제 그 질문의 대답은 내 숙제이기도 하다. 내가 받았던 많은 시간을 다른 이에게 되돌려주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재능기부라도 할 수 있다면 기꺼이 할 생각이다. 여행을 끝내고 나니 내 인생이 보였다. 컷마다 이어진 사진에 글자를 넣었다. 글자는 내 인생의 스토리 텔링이 되었다. 그러고는 음악도 넣었다.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까지. 인생의 정거장에서 나는 다음 인생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고백하건대 이번 여행은 기대감으로 가득 차는 시간이었다. 내 인생을 미화하고 싶지도 않았고, 있는 그대로의 진솔한 삶의 풍경을 펼쳐놓고 싶었다. 20대 학교 캠퍼스에서, 30대 결혼식장에서, 또 40대 도서관에서. 나는 그곳에서 언제나 배우고 싶었던 학생이었다. 그때 만난 좋은 인연들 지금 생각하니 너무 감사하다. 나는 그분들 때문에 자극받았고, 올곧게 성장할 수 있었다. 배우면서 나를 성장시키는 일. 나는 그 일을 선택하고 몰입했다. 지금은 노력한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한 컷 한컷 옮겨갈 때마다 눈 주위가 따뜻해지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영상제작을 하면서 느낀 점은 모든 것은 기록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 기록은 내 인생의 작은 조각들이다. 모르고 지나쳤던 사진이나, 글이나, 일기나. 그 흔적을 찾으려도 없었던 점이 가장 아쉬웠다.
영상제작 여행을 마치고 우리는 시사회를 가졌다. 같이 탑승했던 사람들의 인생들은 모두 훌륭했다. 각자 맡은 역할에서 최선을 다했고, 칭찬해 줄 만한 인생이었다. 시사회가 끝나고 보니 일상의 작은 사건들은 작은 점이었고, 그 점의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시간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다음 여행은 메타버스 여행이었다.
탑승한 손님들은 이번엔 40대 층 정도의 학부모 고객이었다. 내게 또다시 여행이 시작되었다. 앞에 여행보다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리 겁낼 필요는 없다. 메타버스 여행은 가상공간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되었다. 영화에서만 보았던 아바타를 만드는 일은 신세계였다. 나의 아바타는 정원사다. 정원의 배경을 고민하다가 달나라로 정했다. 이왕이면 누구도 해내지 못할 정원을 만드는 게 내 목표였다.
“달나라의 정원사라니….”
무척 흥미로웠다. 난 달 분화구에다가 민들레 모종을 하나씩 심었다. 나는 어릴 때 민들레 씨앗이 자꾸만 하늘로 올라간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민들레는 하늘로 올라가서 노란 민들레 정원을 만든다. 달빛이 유난히 노르스름한 것도 민들레 정원에 반사된 거라고 나름대로 그렇게 생각했었다. 달 분화구에서 민들레 씨앗이 자라나고, 민들레 정원이 만들어지는 상상. 난 그 상상을 메타버스에서 실현해 보기로 했다. 누가 알 것인가? 이 상상이 결국은 현실로 이어질지, 디지털 세상 속 여행에서나 가능할지 그건 아무도 모를 일이다. 후로 나는 내가 만든 가상공간에서 여러 가지 직업을 바꾸었다. 커피 바리스타도 되어보고, 파티 플래너도 되었다. 나는 이제 디지털 세상의 여행자가 되기로 했다. 디지털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일이 경이롭다. 내가 디지털 세상의 주인이 되어보고, 경험해 보는 일, 이것처럼 멋진 일은 없다. 내 인생 최고의 여행을 말하자면 단연코 디지털 세상 속 여행이다. 앞에 해왔던 수많은 여행과 값을 매기라면 결코 뒤지지 않는 여행이었다. 앞으로 메타버스가 이루어지는 세상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내가 제작한 작품 속 제목 ‘디지털 세상엔 나이는 필요 없다’ 이 문구처럼 나는 요즘 새로 태어나는 기분이다. 벌써부터 다음 여행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