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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나라의 정원사 Feb 29. 2024

북 레스토랑

북 레스토랑에 들어섰어.

 주말, 열심히 일한 내게 맛있는 요리를 먹기 위해서지. 어라, 준비한 메뉴가 다 팔렸다네. 재빨리 스캔해 보니 오늘의 요리, 스페셜 요리는 다 나간 뒤였어. 마지막 남은 메뉴 달랑 하나, 늙은이. 발음도 이상한 이 메뉴 앞에 잠시 머뭇거렸어. 읽어 보니 늙은이 같기도 하고, 먹으면 늙는 요리 같기도 하고. 늙은이 메뉴를 앞에 두고 잠시 고민했어. 근데 자세히 보니 나랑 너무 찰떡같이 어울리는 메뉴야. 나도 나이 좀 있는 여자거든.

 요리를 주문하고 창가에 자리를 잡았어. 이 요리를 만든 셰프가 ’ 빅이슈‘ 편집장이 라네. 필명이 늙은이인 거야. 빅이슈로 말할 것 같으면 노숙자가 판매하는 잡지. 내가 눈에 띄면 늘 사보던 잡지의 편집장이었더란 말이지. 오호. 그 사람이 바로 늙은이였어. 빅이슈는 관심이 많았는데 편집장은 사실 잘 몰랐거든. 사람은 그냥 보면 몰라. 자세히 들여다봐야 보이는 법이지. 오늘 내 앞에 온 요리는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라는 요리야. 이런, 이 문장이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말 아니겠어. 그래, 너무 희망에 부풀어있으면 그 희망을 놓쳐버렸을 때 크게 좌절하게 되잖아. 난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어. 그러니까 희망 따위 없는 척, 그냥 하루하루 주어진 걸 해내며 살면 어떨까? 셰프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어. 세상에 대한 비관은 할지라도 좌절하지 말고 오늘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살아가라고 그런 메시지였어. 

 빅이슈의 편집장이어서 뭔가 다를 것 같았어. 이분은 홈리스와 사회적 약자의 자립을 위해 돕는 사람으로 알려있잖아. 작가는 자신의 일상에 의미 부여하고, 섬세하게 관찰하고, 그것을 조곤조곤 말하는 거야. 읽고 나니 가슴이 따뜻해지더라.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물건을 많이 산다며 헹거가 부서진 이야기부터 코로나로 생긴 일상의 이야기까지. 나는 들을 준비가 되어있었어. 셰프는 한동안 내게 수다를 떨었어. 너무 재미있어 시간이 가는 줄 몰랐지 뭐야. 그중에 ‘고독한 생존방’이란 제목이 인상에 남아. 온라인 채팅방에서 만난 1인 세대들의 이야기야. 말 그대로 고독사를 걱정하는 서로를 챙겨주고 안부를 물어주는 이색적인 단체 방 이야기였어. 나이도 직업도 묻지 않는 단지 그들의 안부를 걱정해 주는 모임이라니. 이야기를 듣고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 최근 고독사를 당한 이웃 할머니가 생각났거든. 한동안 119가 왔다 갔다 할 때 한번 안부라도 물었으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야.

 토요일 오후 북 레스토랑엔 사람들이 조금 앉아있었어. 다들 자신이 고른 요리에 심취해 있는 것 같았어. 나는 눈으로 먹었고, 느꼈고, 행복했어. 토요일 오후, 이 이상한 북 레스토랑에 혼자서 디저트까지 아주 깔끔하게 다 먹어치웠지. 셰프가 다시 오겠냐고 물었어. 나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오겠다고 했지. 그때도 사람들이 먼저 메뉴를 다 찾아서 가더라도 창가 자리에 앉아 남은 마지막 메뉴를 시키겠노라 했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진 오후 5시. 레스토랑 문을 닫는다네. 아쉽지만 난 레스토랑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지.

나는 나오면서 책상에 앉은 주인에게 물었어.

 “이 레스토랑 언제 또 문 열어요?‘

 ”손님들의 요청이 많아서 봄 되면 열 것 같아요. “

 그러더니 이렇게 말하는 거야. 음식값 지불은 되었고, 후기라도 써달라고 말이야.

 나는 문을 밀고 나오며 나에게 말했어.

 ’ 그래,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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