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인 조르바를 읽고
여행을 좋아하는 한 친구는 지금 그리스 여행 중이다. 한 달이 소요되는 긴 장정의 시간이라고 했다. 친구는 지금도 실시간 카톡으로 그리스의 섬들을 내게 하나씩 펼쳐놓았다.‘희랍인 조르바’는 그렇게 친구가 보내준 여행 메시지와 물빛이 고운 그리스 섬의 동경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마치‘희랍인 조르바’에 나오는 제3의 인물처럼, 작중 나와 희랍인 조르바 사이를 오가며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거침없는 이야기 속에 빠져 들어갔다. 이야기의 배경은 1930년 항구도시 피레에프스의 한 카페에서 시작된다. 주인공인 나는 몇 개월간 만이라도 책들은 치워 버리자고 결심한 젊은 지식인이다. 그의 친구 스타브리다키스가 박해받는 그리스인 동지들을 돕기 위해 카프카스를 떠나면서 그에게 남긴 따끔한 충고 때문이었다. 나는 크레타를 향해 출발한다. 잠시 중단되었던 갈탄광 채굴을 다시 시작하고 농민과 노동자 계급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자 하는 생각이다. 거기서 자기자랑 일색인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 남자는 다짜고짜 자신과 함께 동행 하자고 요구 한다 그 남자가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인 알렉시스 조르바이다.
이 소설은 금욕과 사유를 통해 삶의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나와 정 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조르바'를 만나 탄광사업을 하면서 둘 사이에 일어나는 일련의 에피소드를 통해 조르바의 삶 방식을 이해하고 주인공인 내가 서서히 변해가는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이 두 캐릭터의 절묘한 대비는 마치 이성과 감정의 대립 처럼 보인다. 작중의 나는 지식인의 대표적인 캐릭터라고 보면 되겠다. 나는 오직 자유와 구원의 해답을 책속에서 찾으려한다. 인간의 생명은 오직 일회성에 그치기 때문에 누구도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또한 우리의 삶은 하룻밤 꿈 이라는 붓다의 가르침 속에서 구원의 길을 찾으려고 애를 쓴다. 이성과 논리를 내세우고 감각적인 것과 욕망을 자제하는 내 삶의 방식과 달리 조르바는 그 반대의 구도로 맞서고 있다. 조르바는 말한다. 이성을 붙잡아 봤자 내가 묶인 쇠사슬을 끊을 수 없다고, 아니 오히려 더 얽매일 뿐, 절대 자유로워질 수 없다고. 조르바는 나에게 영혼과 육체는 원래 하나이며 그것이 일치해야만 자유로워진다는 것, 그리고 인간의 영혼이라는 것은 이성의 도움을 안 받아도 우주의 진리를 직접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한다. 이 대목에서 그는 인간에게 있어 이성보다는 감정에 우선하는 삶을 따르라고 경고한다. 산투르라는 악기를 다루며 춤을 사랑하는 조르바에겐 그 어떤 복잡한 문제에 대면하더라도 거리낌이 없다. 어떤 식으로든 조르바의 달변은 지식인이라 자처했던 주인공의 내가 끌려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조르바는 본능에 충실하고, 이상한 행동을 거침없이 하는 사람이지만 언제나 본질적인 것은 정확히 알아본다. 이성에 방해 받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며 매순간 자유로울 수 있는 조르바식 삶의 방식은 읽는 내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삶의 변방에 머물려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우리가 이 책에 열광하는 이유는 바로 조르바의 삶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다. 아이처럼 순수하고, 매순간 감동할 줄 알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산투르로 자신을 달래줄 아는 호탕함, 일에 대해는 명확하게 포인트를 알고 그것이 어느 순간 물거품으로 사라졌을 때 절망하는 작중의 나와는 달리 춤으로써 화답하는 그의 아이러니한 태도는 이 책을 덮으면서 묘한 감동의 쓰나미에 전율이 일게 하는 대목이다. 저자 니코스 카잔차카스는 ‘희랍인 조르바’를 실제 경험의 이야기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캐릭터가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다. 현란한 문장, 그의 묘사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섬세하고 아름답다. 특히 풍경에 대한 묘사는 뮤지컬을 보는 듯 문체가 역동적이다. 지금 그리스에 있는 친구는 그의 묘소에 들러 세 장의 사진을 내게 보냈다. 베네치안 성벽으로 둘러싸인 마르키네고 요새의 언덕 위 크레타의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그가 묻혀있었다. 그의 묘소에는 자유와 자기 해방을 얻기 위해서 평생을 투쟁한 묘비명이 적혀있다.
“나는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다. 그래서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다. 나는 자유다.”
그는 영혼의 자유로움을 갈망하며 전 세계를 떠돌았다. 그래서 그의 삶에서 가장 큰 화두는 여행과 꿈 이었다고 한다. 그의 영혼에 깊은 자취를 남긴 사람을 호메로스, 붓다, 니체, 베르르송 그리고 조르바를 들었다. 조르바는 다시 새로워지는 창조적 단순성, 자신의 영혼을 멋대로 조종하는 대담성, 결정적 순간마다 인간의 뱃속보다 더 깊고 깊은 샘에서 쏟아져 나오는 야수적인 웃음을 지닌 이라고 작가는 기억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가 가장 우려 하는 것은 화석처럼 단단해지는 고정관념과 자의식이다. 예순이 넘은 조르바에게 배울 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는 무엇보다도 창의적인 사람이었다. 크레타 섬을 보고 나무들을 어떻게 옮길지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어떻게 현실화 시킬 것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매순간 애정표현도 거리낌이 없다. 작중의 나는 과부를 좋아하지만 사회가 정해놓은 암묵적인 룰에 눌려 그녀에게 선뜻 다가서지 못한다. 그런 나를 눈치 챈 조르바는 나를 부추겨 보지만 나는 욕망을 억누르는 사람이다. 이 대목에서의나는 언제나 사회의 관습이나 주변의 시선에 늘 신경 쓰는 현대인의 표상이다. 나 또한 그렇고 주변에 흔히 있는 캐릭터다. 나는 이 책을 이십대 대학시절에도 읽었고, 현재에도 읽고 있다.‘희랍인 조르바’는 사실 이십대에는 잘 와 닿지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읽어보니 이 책은 무엇보다 가슴 밑바닥에서 전해오는 묵직한 울림과 미지근했던 심장이 서서히 달아올랐다. 이 책을 덮으면서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무엇보다 조르바의 삶의 태도다. 그는 내게 비겁하게 숨지 말고 내 생각이 아닌 것들에 당당하게 저항해 보라고 한다.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해 보라고 한다. 나이에 휘둘리지 말고 가면을 벗고 진정성에 다가서라고 그가 다독이는 것 같았다. 작중의 나와 같이 자신을 감추고, 책에서 구원을 찾던 텍스트적인 삶에서 벗어나 오직 경험과 자신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충고는 이 책에서 가장 건져 올린 큰 수확이다. 조르바의 당당한 태도는 단지 그가 무식해서가 아니다. 그는 인생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자신과 대단히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친구는 마지막으로 크레타 섬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크레타 섬의 물빛은 비현실적인 물빛을 지닌 바다였다. 그 어느 것도 보정하지 않는 푸른 물빛 앞에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아름다운 섬 크레타에서 에메랄드 빛 바다와 뜨겁게 불러오는 바람. 그리고 불타는 태양의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해변에서 나는 지금도 산투르와 리듬에 맞기며 거침없이 몸을 흔드는 조르바를 상상한다. 그는 내게 매순간 정열적으로 삶을 살아내라고, 이 순간을 즐기라고, 그리고 인생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제 인생의 터닝포인트에 서있다. 한 때 모든 것에 자신을 쏟아 부었던 열정은 온데 간데없고 지금은 매사에 자신이 없고 주변을 살피는 늙은 고양이가 된 느낌이다. 다시 심장에 불을 끼얹고 몸을 도사리기 전에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조르바는 내게 있어 영원히 꺼지지 않는 열정의 아이콘이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