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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에서는 지갑 조심!

은퇴부부의 베트남 자유여행 20

by 심웅섭

6박 7일의 남깟띠엔 체류를 마치고 사이공으로 떠난다. 여행자는 떠나야 한다. 아무리 좋고 편안한 곳을 찾았다 하더라도 그곳이 익숙해질 무렵, 아쉬움을 남긴 채 보따리를 싸야 한다. 여행은 낯섦 속에 스스로를 내려놓는 행위이다. 만약 좋다고 해서 한 곳에 머물다가는 또 다른 일상에 함몰되어 깨어있는 여행자가 되지 못할 것이다. 이는 마치 계곡물이 아무리 깨끗하더라도 늘 흘러야 하는 것과 같다. 물이 더러워져서 흘려버리는 것이 아니라, 계속 흘려 내는 것이 맑은 물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말이다. 내년에 겨울여행지로 다시 베트남을 택한다면 이곳저곳 헤매지 말고 바로 이곳에 다시 오자는, 약간은 지켜지지 못할 약속으로 스스로를 달래며 버스에 오른다.


남깟띠엔에서 사이공으로 가는 교통편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택시를 이용하는 방법. 두 시간 반에 비교적 편안하게 갈 수 있지만 200만 동, 11만 원 정도가 든다. 둘째로는 하루 6번 다니는 로컬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인데 4시간이 걸리는 대신 버스비는 11만 동, 둘이서 12,000원 정도면 갈 수 있다. 은퇴백수의 선택은 물론 후자다. 오전 10시에 버스에 올랐다. 엔진이 앞부분에 있는 낡은 중형버스로 30인승쯤 돼 보인다. 자리가 많이 비어 있어서 앞쪽 출입문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차가 출발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조금씩 메스꺼운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버티고 가다가는 낭패가 날 것 같다. 아내에게 자리를 옮기자니 그냥 여기가 좋단다. 자세히 살펴보니 차가 회전하는 동안 우리 부부가 앉은 의자가 미끄러지듯 움직인다. 아하, 멀미의 원인을 알았다. 시트를 고정한 볼트 너트가 풀려서 의자 전체가 흔들렸던 것이다. 아내에게 설명하고 다른 자리로 옮기니 이제 탈 만하다.


앞부분에 앉았으니 시골버스가 달리는 모습을 비교적 잘 관찰할 수 있다. 우선 버스는 엔진이 앞에 있는 구형버스다. 내가 어렸을 때는 모든 버스가 이런 식이었다. 운전석 옆부분이 툭 튀어나와 있고 엔진 열로 뜨끈뜨끈했다. 겨울에는 엉덩이 지지기에 딱 좋았지만 여름에는 그야말로 찜통이었다. 자칫 배기가스라도 새어 들어오는 차를 만나면 멀미확률 100% 였다. 차장도 오랜만에 본다. 젊은 남자 차장은 흔들리는 버스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차비를 받거나 짐을 정리하며 승객들을 관리한다. 차가 정차하기 전에 미리 문을 활딱 열고 몸을 반쯤 내민 채 호객을 하기도 하고, 무거운 짐이 있으면 들어서 차에 올리기도 한다. 딱 70년대에 보던 시골버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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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도로를 달리는 모습도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르다. 우선 차선이 왕복 3차선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두 개의 왕복차선에 각자 오토바이 차선이 반개씩 붙어 있으니 1.5 * 2 = 3, 합이 3차선이라는 말이다. 오토바이가 많은 나라이니 꽤 실용적인 방법일 것 같은데 문제가 있다. 오토바이와 차가 꼭 제 차선만으로 달리는 것은 아니라는 거다. 오토바이는 편하게 달리기 위해서, 혹은 다른 오토바이를 추월하기 위해서 버스 차선을 침범한다. 차도 오토바이 차선을 침범하기는 마찬가지다. 맞은편 차가 추월하느라고 내 차선으로 달려오면 그걸 피할 공간이 오른쪽 오토바이 차선이다. 슬금슬금 바깥으로 피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것 말고도 또 하나의 경우가 있으니, 그건 오토바이 차선, 그러니까 바깥차선으로 추월하는 것이다. 그것도 시끄러운 경적을 빵빵거리며, 달리는 오토바이를 슬금슬금 밀어 재껴가면서 말이다. 앞부분에 앉아서 이런 모습을 보자니 마치 오락실에서 게임이라도 하듯 자꾸 조마조마 긴장을 하게 된다. 게다가 가끔 중앙선을 넘는 커다란 트럭이나 버스도 보이고 역주행하는 오토바이에 무단횡단하는 보행자까지, 다이내믹한 4D 게임이 아닐 수 없다. 안 되겠다 싶어서 얼른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으로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한참을 내다보느라 좀 피곤했나 보다. 흔들림에 몸을 맡기니 금세 잠이 들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3시간 반 만에 스위띠엔 파크 정류장에 도착했다. 숙소 주인이 내려서 19번 버스로 갈아타라고 친절하게 알려준 곳이다. 아직 사이공이라기엔 너무 허름한 외곽지대이긴 하지만 알려준 대로 내렸다. 그런데 커다란 슈트케이스를 두 개나 끌고 버스를 갈아타려니 꾀가 난다. 털털거리는 완행버스에 반나절을 태웠으니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도 슬그머니 올라온다. 에라, 그랩 앱을 켜고 검색해 보니 45분 정도의 거리에 247,000동, 14,000원 정도다. 뭐 감당할 돈이다 싶어서 그랩 택시를 이용한다. 그런데 타고보니 거리가 만만치 않다. 숙소 주인이 그랩 타지 말고 꼭 19번 버스를 타라고 한 이유를 알겠다. 여기서 사이공 중심가는 대략 30km 정도, 만약 그랩을 탈 거면 사이공의 다른 정류장을 가르쳐주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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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한 호텔에 도착, 구시가지 벤탄시장 부근에 있는 작은 호텔이다. 방에 들어가 보니 좁고 낡은 느낌이 든다. 창문 커튼을 젖히니 앞 건물의 낡은 벽과 건물들 사이의 좁은 골목길이 아슬아슬 내려다 보인다. 아내가 눈치를 보며 말한다.


"그래도 이거 럭셔리 룸이야, 스탠더드는 창문이 없어"


이 호텔의 숙박료는 조식 제외하고 하루 4만 원 정도, 다낭에서는 28,000원에 조식 포함 깔끔한 방이었으니 베트남 물가로는 싼 방이 아니다. 사이공의 물가는 지금까지 지나쳐온 베트남의 다른 곳보다는 비싸겠구나. 카페에 들러보니 달달한 연유커피가 45,000동이다. 오늘 아침까지는 25,000동이었는데 거의 두 배가 올랐다. 조금 더 다녀 보니 사이공의 물가는 제법 비싸다. 물론 한국으로 치자면 그래도 싼 편이지만 지금까지 겪어온 시골과 중소도시와는 비교 불허. 내가 겪은 몇 가지 물가만 얘기하자면 이렇다. 쌀국수 45,000동 (시골 35,000), 돼지고기 덮밥 10만 동 (시골 5만 동), 순두부찌개 25만 동 (달랏 김치찌개 13만 동)......, 남깟띠엔 시골장터에서 통째로 8만 동에 사 먹은 잭프룻은 먹기 좋게 까서 아주 작게 포장한 것이 5만 동, 양만으로 치자면 1/20밖에 안될 양이니 많이 비싼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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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시, 이번에는 밤 문화를 구경할까 길을 나선다. 구글 맵을 들고 부이비엔 거리로 나가 볼 참이다. 아직 문을 닫지 않은 상가들이 많다. 쇼윈도를 들여다보니 웨딩 샵들이 많이 보이는데 특이한 것은 붉은색 웨딩 드레스가 많다는 거다. 조금 걷다 보니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한 교차로가 나타난다. 워낙 복잡한 교통체계라서 자세히 못 봤는데 나중에 지도를 살펴보니 무려 7 거리다. 그런데 내가 놀란 건 7 거리나 네온사인이 아니다. 바로 엄청난 숫자의 오토바이들이다. 오토바이야 지금까지 다낭과 달랏을 거치면서 많이 보기도 하고 직접 타기도 했다. 그런데 사이공의 오토바이는 그 차원이 다르다. 신호등에 걸리면 수십m씩 기다리는 오토바이들도 장관이지만 일단 신호등이 바뀌면 그 많은 오토바이들이 그야말로 강물처럼 도로로 쏟아지는 모습은 입이 벌어질 정도다. 깜짝 놀라 카메라를 들이댈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 것은 사이공의 오토바이는 신호를 지킨다는 거다. 이 많은 오토바이와 차들이 달랏처럼 신호를 무시했다가는 완전히 교통이 마비될 테니 일종의 생존전략으로 질서가 생겼나 보다. 그렇다고 보행신호까지 지키지는 않는다. 만일 보행신호에서 적극적으로 길을 건너지 않고 쭈빗거리다가는 신호 위반하는 오토바이에게 얄짤없이 길을 빼앗기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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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럴 상가와 9월 23일 공원을 지나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간다. 유명한 여행자 거리라는데, 구글맵은 왜 이렇게 좁은 길로 안내할까 의아해하는데, 갑자기 큰 소리와 함께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짠 하고 펼쳐진다.


하나,

둘,

셋.


내가 눈앞에 펼쳐진 세상을 이해하기에는 정확히 삼초가 걸렸다. 제법 넓은 거리가 쫙 펼쳐지는데 번쩍 거리는 네온사인과 싸이키 조명, 귀가 떨어질 정도의 큰 음악이 뿡짝거리고 사람들이 흥겹게 춤을 추며 술을 마시고 있다. 업소들 앞에는 드럼통으로 만든 작은 무대 위에 무표정한 반나의 무희들이 로봇처럼 춤을 추고 사람들은 고막이 터질 듯 커다란 음악소리에 둥둥 떠다니다가 원하는 자리에 내려앉아 흐느적거리며 술을 마신다. 업소마다 수많은 호객꾼, 일명 삐끼들이 나와서 손님을 손짓으로만 유혹한다. 음악소리가 너무 커서 여기서는 그 누구도 말로 의사소통을 하지 않는다. 시골에서 은퇴부부로 사는 나는 소음을 유난히 싫어한다. 그런데 이렇게 극한 환경에 뚝 떨어지니 묘하게 마음이 편해지면서 용기가 생긴다. 그래, 오늘은 이 큰 소음, 아니 소리로 샤워 한 번 해볼까나?


소리샤워, 그중에서도 음악샤워는 젊을 때부터 경험이 좀 있다. 재수생 시절, 종로 2가의 르네상스 음악 감상실에 들어가서 큰 소리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지고 평화로워졌다. 편안하게 잠이 들 정도로 말이다. 나이가 들어서는 오디오 취미를 갖게 되면서 큰 소리의 볼륨으로 클래식 음악을 듣곤 했다. 역시 마음이 편해지고 평화로워진다. 좋은 음악을 좋은 음질로 크게 듣는 것은 전혀 귀가 아프지 않다. 오히려 가슴과 머리에 찌들고 막힌 때를 말끔하게 뚫어주는 뚜러펑 역할을 한다. 이곳의 음악이 좋은 연주에 좋은 음질인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찢어지는 고음이 아니라 가슴을 쿵쾅쿵쾅 때리는 저음 위주라서 부담은 적다. 이런 시끄러운 음악을 듣는 데는 요령이 있다. 귀로 듣는다고 생각하지 않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다. 어차피 귀에 들어오는 충격은 같은데 그게 무슨 효과가 있냐고 묻겠지만, 그래도 상당히 다르다.


나도 적당히 자리를 잡았다. 젊은 남자가 상의를 탈의한 채 춤을 추는 바로 앞이다. 적당한 상체 근육이 보기 좋다. 나이가 들면서 젊은 여자의 몸도 좋지만 이상하게 남자의 몸이 보기 좋아졌다. 성적인 취향이 바뀌었다는 게 아니라 그 젊음과 건강미가 부럽고 좋은 것이다. 맥주 한 병에 망고주스, 그리고 감자튀김을 시켰다. 그야말로 최소한으로 시킨 셈이다. 나중에 일어나면서 계산하니 36만 7 천동, 한국돈으로 치면 별거 아니지만 베트남에서는 비싼 돈이다. 게다가 나처럼 달랑 한 병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흥에 겨워 몇 병 마시다가는 10만 원이 후딱 넘을 참이다. 돌아오면서 아내에게 한마디 했다.


"여보, 사이공에서는 지갑 조심해야겠어"


"아니, 왜? 소매치기가 있는 거야?"


"그건 아니고, 지갑이 금방금방 얇아지네. 특히 우리 같은 백수들은 사이공에서는 지갑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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