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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의 눈물

은퇴부부의 베트남 자유여행 21

by 심웅섭

사이공에 오면서 뭔가 알 수 없는 이상한 느낌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우선 '사이공'이라는 지명에서부터 시작된다. 모두 알다시피 사이공은 통일되기 전(월남패망하기 전), 남베트남의 수도일 때 지명이다. 1976년 이후 호치민으로 바뀌었으니 없어진 지 벌써 50년이 다 된, 죽은 이름이다. 나는 이곳에 여행 오기 전만 해도 당연히 '호치민 시'로만 알고 있었고 '사이공'이라는 말은 맥주이름으로만 남아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곳에 와 보니 '호치민 시'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내가 타고 온 버스도 '사이공행'이지 '호치민행'이 아니었다. 벤탄시장에서 상인에게 물어보니 대부분의 이곳 사람들이 사이공이라는 말을 쓴단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베트남이 무력으로 통일되는 과정에서 자본주의 베트남 수도였던 이곳 사람들이 100% 동의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재산과 기득권을 잃었을 테고 상실감을 느꼈을 터, 어쩌면 그들에게 통일은 전쟁에서의 패배를 의미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이공이 "사이공"으로 남기를 원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로 이상한 느낌이 든 건 사이공에 도착해서 오래된 건물을 보면서다. 내가 머문 곳은 벤탄 시장 부근의 구시가지다. 구시가지의 특성상 낡은 건물이 많은 건 당연한데도 이상하게 낡고 허름한 건물들이 눈에 띈다. 아주 오래된 옛날 유적도 아니고, 대충 5-60년 전에 지어졌음직한 콘크리트 건물들이, 수리는커녕 색깔도 제대로 칠하지 않은 채 낡은 모습으로 남아 있다. 길거리에는 구걸하는 장애인도 가끔 보이고 구두닦이들도 제법 있다. 이건 그냥 가난한 나라의 모습으로 보기엔 뭔가 앞뒤가 안 맞는다. 몇 년 전 들른 하노이는 물론이고 요번에 거쳐온 다낭, 호이안, 달랏은 물론이고 소도시 바오록에서도 못 보던 모습이다. 베트남에서 가장 큰 경제도시라는 일반적인 평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쩌면 딱 50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는 느낌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50년 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혹은 벗어나기를 거부하고) 시간의 덫에 갇혀 맴돌고 있는 느낌이랄까. (물론 구시가지를 벗어나면 고층빌딩에 은행과 상가들이 휘황찬란하고, 아시아의 새로운 부국으로 떠오르기 위해 마지막 용틀임을 하고 있는 줄은 잘 안다. 그러나 장님에게도 코끼리에 대해 말할 자유를 준다면, 내 느낌은 그렇다는 것이다 )



도시여행에 나섰다. 맨 처음 들른 곳은 숙소에서 제일 가까운 독립궁, Indefendence Palace다. 독립궁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 프랑스에 의해 건축되어 노롬동 궁으로 불리었다. 이후 프랑스로 부터 독립하면서 독립궁으로 바뀌고, 이후 1966년 현대적 건물로 재건축되면서 대통령의 관저 및 집무실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그 대통령이 다름 아닌 티에우 대통령이다. 티에우 대통령, 내 기억에는 티우 대통령으로 남아 있다. 1975년 베트남이 통일(혹은 패망)되기 전까지 3번이나 대통령을 이어하면서 이곳을 집무실 겸 관저로 썼다니, 독립궁보다는 대통령궁이라는 말이 더 맞을 듯도 싶다. 1층부터 3층, 그리고 지하 벙커까지 둘러보며 느낀 것은 티에우 대통령이 전쟁 중임에도 절대권력을 누렸겠구나 하는 점이었다. 여러 개의 방들이 꾸며져 있었는데 예를 들면 각료들과 회의하는 방, 외국대사들을 접견하는 방, 영부인이 외부인을 접견하는 방 등이 따로 있었다. 중앙 계단을 통해 각 층이 연결되는데 이 계단을 올라서면 넓은 회랑이 좌우로 열려있다. 이곳에 서서 잠시 앞을 내려다보자. 우선 수직의 가벽 구조물들 사이사이로 시원하게 물을 뿜는 분수대를 지나 넓은 길과 차도를 오가는 수많은 차들이 내려다보인다. 제법 거리가 있으니 소음은 별로 들리지 않아 약간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 정도다. 웅장한 건물에서 가벽 구조물로 분할된 풍경을 내려다보는 느낌. 이건 그냥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것과는 좀 다르다. 왠지 오가는 차와 사람들이 작아 보이고, 내가 더 우월한 존재로 느껴진다. 내가 만일 이곳에 살면서 대통령 역할을 한다면 2-3년 만에 독재자가 되기 딱 좋겠구나 싶다. 3층에는 대통령 전용 헬리콥터가 그대로 보전되어 있다. 어쩌면 1975년에도 티에우 대통령이 이 헬리콥터로 이곳을 떠났는지도 모르겠다.


1975년 4월 30일, 월남이 패망했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나는 월남이 공산화됐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아는 공산화는 국가의 소멸과 같은 의미였고 티우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과 비슷한 경력과 이미지를 가진, 분단상황의 동맹국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월남이 망하다니, 그럼 우리나라도 공산당에게 망할 수도 있다는 것 아닌가, 도대체 왜 미국과 대한민국의 용감한 청룡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은 월남을 떠나버렸을까? 책상 앞에 커다랗게 '1975년 4월 30일, 월남패망'이라고 써서 붙여놓고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이해해 보려고 했으나 어린 나에게는 버거운 일이었다.


이후로 보트피플의 사진들이 외신을 통해 보도되면서 월남패망의 참상들이 계속 내 귀에 들어왔다. 좀 더 나이가 들면서 미군의 융단폭격과 고엽제 살포, 이로 인해 사망자와 환자가 생겨나고, 수많은 기형아들이 태어나고 있다고도 들었다. 그 용감하던 국군장병 아저씨들에 의해 무고한 민간인들이 학살된 이야기와, 미국의 용병으로 명분 없이 참전한 것이라는 전혀 새로운 해석도 접했다. 생각해보니 최근 역사에서 우리나라가 간접적으로나마 전투를 벌인 나라가 바로 베트남이다.

가까운 전쟁 박물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들어서면서부터 커다란 수송용 헬리콥터인 치누크와 탱크들, 전투기들이 눈에 띈다. 건물 외벽에는 고엽제로 말라죽은 맹그로브 숲의 사진이 마치 지구종말을 그린 SF인양 괴기스럽다. 전쟁의 과정들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정리한 1층은 그래도 나았다. 건물이 무너지고 시체가 즐비한 사진들을 보면서 그저 가슴 한편이 찌르르해질 정도였다. 그런데 전쟁의 참상을 주제로 한 2층 전시실에는 훨씬 더 충격적인 사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네이팜 탄에 새까맣게 타 죽은 시신들, 총앞에 벌벌 떠는 베트남 아낙과 아이들, 웃으면서 물고문하는 미군, 그 유명한 '네이팜탄의 소녀'라는 사진도 있었다. 끔찍한 사진들을 바라보며 내 가슴은 먹먹해졌다. 자꾸만 울컥울컥 눈물이 올라온다. 도대체 공산당을 막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기에 이런 끔찍한 전쟁을 벌이게 되었을까? 옆방에서는 차마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고엽제로 태어난 기기묘묘한 모습의 기형아들은 하나같이 웃고 있었고, 손이 없어서 발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월남전이 끝난 지 불과 48년, 그 참상을 잊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구나. 한국군, 따이한의 가해사실을 담은 사진은 한 장도 붙어있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딱 걸렸다. 애초에 베트남에 오면서 그냥 가깝고 물가 싸고 안전한, 은퇴백수의 여행지로만 생각하고 온 것이 잘못이었다. 베트남은 불과 50년 전까지 치열한 전투와 끔찍한 학살이 일어났던 곳이고, 자의든 타의든 우리나라도 역할을 했던 나라였다. 베트남은 통일 이후 과거 전쟁 당사국에게 어떤 배상이나 사과도 요구하지 않았단다. 고엽제를 뿌려댄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 프랑스 모두에게 말이다. 한국은 미국을 도와서 잠시 파병을 했으니 물론 책임추궁에서 면제가 된 것은 당연할 정도였다. 그러나 국가가 책임을 묻지 않았다고 모든 베트남 사람들이 용서했다는 말은 아닐 것이요, 잊었다고 볼 수는 더욱 없는 일 아닌가? 물가가 싸다고 헤헤거리고, 시끄럽고 무질서하다고 투덜거리며 여행해 온 지난 한 달이 갑자기 부끄러워진다. 정작 우리 부부를 여행자로 받아들이고 죄를 묻지 않는 것은 바로 베트남 사람들이 아닌가?

밖으로 나오니 종이 하나 걸려있다. 무슨 사연이 있겠다 싶어서 읽어보았다. 주민들은 폭격으로 죽은 수많은 영혼들을 달래기 위해서 대나무로 엉성한 탑을 세우고 불발탄으로 종을 만들었단다. 생로병사를 의미하는 춘하추동이라는 한자를 새겨서 말이다. 전쟁에서 죽어간 이들의 영혼을 생각하며 나도 종을 울렸다. 은은한 종소리의 여운을 따라서 그들의 영혼도 안식을 찾아가길 빌면서.



전쟁 기념관을 둘러본 우리 부부는 박물관 카페에 앉아 한 시간 이상을 아무 말도 나누지 못했다. 그저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며 먹먹해진 가슴을 달랠 뿐이었다. 한참의 침묵 끝에 아내가 입을 열었다.


"에휴, 전쟁 박물관에 오니 마음이 아프네"


"여보, 어쩌겠어? 우리가 당연히 감당해야 할 아픔이지"

오후 네시, 텅 빈 시티 투어버스를 타고 사이공을 둘러본다. 한두 방울씩 내리던 비가 어느새 장맛비처럼 주룩주룩 내린다. 사람들은 비에 조금씩 젖어가고, 도시는 비와 어둠에 조금씩 녹아들고 있다. 사이공이 울고 있다. 전쟁과 학살과 고엽제의 고통을 잊기에 50년이란 세월은 너무 짧은 것일까? 버스에서는 애절한 목소리의 팝 송, 퀸 안의 'Hello, Vietnam'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다.


One day I'll walk your soil
One day I'll finally know my soul
One day I'll come to you
To say hello... Vietnam
To say hello... Vietnam
To say xin chao... Viet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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