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이라는 시간은 긴 걸까, 짧은 걸까? 갑자기 바보 같은 질문이 떠오른다. 이제 하룻밤만 더 자면 베트남 여행도 끝이다. 우리 부부는 아쉬움과 홀가분함이 묘하게 뒤섞인 혼란스러운 정서상태가 되었다. 얼른 집에 가서 아들과 딸, 그리고 고양이 두 마리를 보고 싶은 마음과 이 따뜻하고 물가 싼 베트남에서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이 반반씩 섞여 나 스스로 내 마음을 잘 모르는 상태라는 말이다.
마지막 남은 하루는 사이공의 이곳저곳을 훑어보기로 했다. 우선 숙소에서 가까운 사이공 시립미술관을 찾았다. 미술이나 역사에는 거의 문외한이지만 여행지에서는 가능하면 미술관과 박물관을 찾는 편이다. 사람들의 의식과 문화의 뿌리를 아주 압축적으로 볼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시립미술관에서 주로 눈에 띄는 작품들은 전쟁을 주제로 한 것들이었다. 물론 전통 동양화 풍의 네 쪽짜리 민화도 흥미로왔고 전쟁과 관련 없는 베트남의 풍경과 인물들을 소재로 한 것들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숫자가 많고 가슴에 와닿은 것들은 전쟁을 소재로 한 것들이었다는 말이다. 그중에서도 1층 복도에서 만난 조각상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높이 7-80cm 정도의 청동상으로 늙은 여인이 어디론가 걸어가는 모습이었다. 남루한 옷차림은 자연스럽게 단순화되었고 대신 무서울 정도로 무표정한 얼굴과 먼 곳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불끈 쥔 오른손이 무척이나 결연해 보인다. 제목을 읽어보니 "저항군에 합류하는 엄마"다. 순간 막심 고리끼의 ' 어머니'라는 소설이 떠오른다. 자식과 남편을 지극히 사랑하는 평범한 시골 엄마였으리라. 아마도 남편과 아들이 전쟁에 희생되었으리라. 딸들은 유린당하고 비참하게 죽어갔으리라. 혹은 네이팜탄이나 고엽제에 희생당했으리라. 이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여인은 자신이 늙었다는 것도 잊은 채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저항군에 합류하기 위해서 길을 나선다. 엄마에서 전사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분노조차 보이지 않는 결연한 표정, 몸은 죽어도 살아남을 것 같은 시퍼런 의식, 어쩌면 베트남 사람에게 베트남전은 그렇게 남아있는지도 모르겠다.
기념품 쇼핑에 나섰다. 은퇴백수의 여행에 쇼핑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행위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워낙 물가도 싸고 짐에 여유도 있으니 한 달간이나 기다려 준 지인들에게 가벼운 기념품 정도는 줘도 좋을 것 같아서다. 숙소에서 가까운 벤탄시장에서 나무젓가락 세트와 베트남 처녀상, 그리고 달걀껍데기로 나무접시에 그려진 난각화 두 점을 샀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런저런 기념품들을 추천하는데 그중에서 후추도 있다. 마침 친구가 후추를 부탁하기에 통후추와 가루후추도 몇 개 샀다. 알고 보면 우리가 국내에서 먹은 후춧가루가 거의 다 베트남산이란다. 따라서 기념품이라고 들고 들어가 봐야 몇 천 원 아끼는 의미밖에는 없다는 걸 잘 알지만, 그래도 떡국에 넣어 먹으라며 이웃들과 나누기에는 꽤 괜찮을 것 같다.
저녁에는 길거리 음식으로 유명한 호티키 야시장을 찾았다. 그랩 앱에서 검색이 안되기에 주변 꽃시장에서 내려서 걸었다. 덕분에 대도시인 호치민에서 꽃구경은 실컷 했다. 환한 불빛 아래에 온갖 꽃들이 다 나와 있다. 역시 꽃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나라, 그중에서도 제일 큰 도시답다. 먹거리 야시장은 사람을 두 번 놀라게 한다. 우선 뜬금없이 나타난 게 놀랍다. 꽃시장을 지나고 허름한 주택가를 지나는데 갑자기 불빛이 환해지면서 야시장이 나타났으니 말이다. 두 번째 놀란 것은 길거리 음식의 종류와 그걸 파는 노점이 엄청나게 많다는 거다. 그리 넓지도 않은 골목의 양쪽 상가와 길 가운데 노점상까지 빽빽하게 무언가를 요리해서 팔고 있고 사람들은 그 사이를 헤엄치듯 누비다가 마음에 드는 음식이 있으면 조그만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무언가를 사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가난한 호찌민 시민들이 외식과 사교를 즐기는 만남의 시장인 셈이다. 우리 부부도 그들 사이에 끼어서 이것저것 간식들을 사 먹는다. 기름에 자글자글 튀긴 반 콧과 바닷가재 구이에 도전했다. 바닷가재는 은퇴부부의 주머니로 감당하기에는 가격이 높아서 국내에서는 먹기 힘든 녀석인데 이곳에서는 비교적 저렴하니 잘 만났다 싶어서 주문했다. 값은 100g에 육만 동, 3천 원 정도다. 두 마리를 고르니 800g 정도, 50만 동 지폐 한 장으로 랍스터 구이를 맛본다. 호치민 야시장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다음날 아침, 새벽 6시에 숙소를 나섰다. 새벽의 사이공 모습을 보기 위해서다. 한 달간의 여행 기간 동안 좀처럼 하지 않던 짓인데, 이제 마지막이라니 못 보던 모습을 살뜰히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나 보다. 그런데 막상 숙소에서 나와보니 부지런한 호치민 사람들의 하루는 이미 시작된 뒤였다. 길거리를 쓸고 치우는 청소부들,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거리 밥집들, 벌써부터 노점을 펼쳐놓은 과일가게들, 거기에 상가들도 반쯤은 문을 열었거나 여는 중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이른 시간에 아가씨들이 아오자이를 입고 사진을 찍고 있다. 이 시간이면 젊은이들이 한창 잠에 빠져 있을 시간인데, 화장까지 예쁘게 하고 차려입으려면 두 시간 전에는 일어났을 테니 도대체 베트남의 젊은이들은 왜 이렇게 부지런한가 싶다. 그런데 부지런한 건 호치민의 젊은이들 뿐 아니다. 한 달간 여행을 하면서 느낀 것은 사람들이 참 부지런하면서도 낙천적이라는 것이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뭔가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움직임들이 모두들 빠릿빠릿하다. 일당을 받을법한 공사장 인부들마저도 느긋하게 여유로운 몸놀림이 아니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나 저녁에는 모두들 길거리에 둘러앉아서 거리 음식을 나눠 먹으며 수다를 떤다. 이런 부지런함과 낙천적인 삶의 태도가 결국 호치민, 그리고 베트남의 활기를 만들고 그 활기가 빠른 경제성장으로 이어지고 있구나 싶다.
저녁 6시, 늦은 비행시간에 맞추어 호텔을 나선다. 마침 퇴근시간에 걸려서 공항까지 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차와 오토바이가 뒤섞여 사람이 걷는 것 보다도 느리게 차가 움직인다. 그러나 이런 도시의 모습이 정겹게 느껴진다. 남들의 눈에는 무질서지만 이들은 나름대로의 질서를 만들고 있음을, 가난과 전쟁의 기억 속에서도 이웃들과 웃고 떠들며 부지런히 살아가고 있음을 이제는 이해하기 때문이다.
늦은 밤하늘 위로 비행기가 솟아오른다. 이제 정말 한 달간의 여행이 끝나는 순간이다. 말도 안 통하고 주머니도 얇은 은퇴부부에게 아무런 거리감도 없이 삶터를 내어 준 베트남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나중에 다시 만나요. 그리고 이제 한국에 가서 베트남 사람들 만나면 더 반갑게 인사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