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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웅섭 Sep 26. 2024

마늘향기 솔솔, 골목길 투어

회인면 송평리

 회인의 첫 동네는 어디일까?  청주에서 피반령을 넘어오는 사람에게는 오동리이겠고 보은에서 수리티를 지나오는 사람에게는 건천리가 되겠다. 만일 대전에서 회남을 거쳐 온다면 신대리쯤이 되지 않을까? 그러나 국도로 다니는 차보다는 고속도로로 드나드는 이가 많고 보니 요즘 회인의 첫 동네는 단연코 송평리다. 회인 IC를 나서면 왼쪽으로 처음 만나는 동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인 IC를 빠져나온 차들이 송평리에 머물거나 눈길을 주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은 마을 앞의 지방도를 따라 제갈길을 가 버리기 쉽다. 개울가에 있는, 그저 그런 시골동네로 보여 도무지 여행지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입견을 버리고 한 발짝만 다가서면 새로운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이 마을의 첫 번째 특징은 골목이 살아있다는 거다. 집과 집 사이로 승용차 한 대가 겨우 빠져 다닐만한 넓이의 골목길이 미로처럼 이어져있다. 그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비슷한 듯 다른 집들이 계속 나타난다. 집과 담과 대문이 조금씩 다른데 오래되었다는 점은 비슷하다는 말이다. 비슷한 듯 다른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컹컹 짖는 개소리에 놀랄 수도 있고 담 아래 피어있는 예쁜 꽃들에게 마음을 빼앗길 수도 있다. 무엇보다 낯선 이를 경계하지 않고 웃어주는 순박한 얼굴, 고향의 부모님이나 할머니를 닮은 분들을 만날 수도 있다. 그분들에게 먼저 웃으며 인사를 건네면 아주 짧은 시간에 그들의 인생사와 삶의 철학을 들을 수도 있다. 모두 적적한 노년을 보내고 계시기 때문이다.

골목길을 걸으면서 떠오르는 의문이 하나 있다. 왜 이 마을에 사람이 많이 살까? 참 바보 같은 질문이지만 워낙 농촌이 고령화, 공동화되다 보니 문득 머리에 떠오른 것이다. 물론 송평리라고 해서 젊은이가 많은 것은 아니다. 대부분 70대 이상, 80대의 어르신들이 주를 이루고는 있다. 그래도 빈집은 어쩌다가 눈에 띌 뿐, 대부분 어르신들이 집을 깔끔하게 지키고 계신다. 어쩌면 살림살이가 윤택해서일까, 아니면 물과 공기가 좋은 장수마을일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고마운 일이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이 헛간의 구조다. 다른 마을과는 달리 대부분 헛간 위에 시렁을 만들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다락방처럼, 지붕밑에 작은 공간이 있는 것이다. 무언가를 말리거나 매달아 보관하기 위해서일 텐데, 과연 무얼까?


대답은 생각보다 쉽다. 마침 제철을 맞은 농작물, 바로 마늘을 말리기 위해서이다. 그만큼 이 동네에는 마늘 농사를 많이 짓는다. 물론 이웃 눌곡리나 신대리에서도 마늘을 심긴 하지만 유독 송평리에서는 거의 대부분 농가에서 마늘을 심을 정도로 그 비율이 높다. 그래서 마늘을 말리는 계절, 9월의 어느 날 송평리의 골목길을 걷다가 알싸한 낯선 향기가 코끝을 스치면 궁금해하지 마시라. 바로 마늘 향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작은 마을 송평리의 마늘을 주목할 만한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이곳의 마늘은 알이 작고 맛이 매콤 달콤하면서 독특한 향이 있는, 그야말로 토종이라는 거다. 워낙에 알이 잘아서 눈에 들지는 않지만 한 번 맛을 보면 잊지 못해 다시 찾을 수밖에 없는 알싸한 맛이 바로 송평의 마늘이다.


추석이 막 지난 요즈음, 송평리 어르신들의 손길이 바쁘다. 골목의 낙엽도 쓸어야 하고 맷돌호박도 따서 갈무리해야 하고 애동고추도 따서 쪄야 한다. 찹쌀풀을 입혀 말리면 겨울철의 훌륭한 밑반찬, 고추부각이 되기 때문이다.


송평리가 오래된 마을이지만 옛날 집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속도로 IC 부근에는 멋진 전원주택도 자리 잡았고 호롱불 모양의 독특한 집도 눈길을 끈다. 이곳의 주인장은 김삿갓 복장으로 노래도 하고 본인만의 비법으로 약초를 이용한 민간요법도 할 줄 아는 팔방미인이란다.

이제는 귀해진 골목풍경이 그립다면, 어린시절의 기억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고향집과 돌아가신 부모님이 보고싶다면 망설임 없이 송평리의 골목길을 걸어보는 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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