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그러니까 30년쯤 전의 이야기다. 부천에 살던 나는 여의도 전경련회관 앞에서 버스를 내려 여의도 광장을 걸어서 건너는 코스로 출근하곤 했다. 그러려면 왕복 10차선이 넘는 넓은 여의대로를 건너야 한다. 그런데 하루는 교통경찰 한 명이 신호등을 멈춰놓고 수신호로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다. 무슨 행사나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마포대교를 건너온 차들이 꼬리를 이었고 경찰은 보행 신호를 주지 않은 채 차에게만 신호를 주고 있었다. 그렇게 10여 분이 넘게 지났다. 그 사이 버스에서 내린 직장인들은 점점 늘어났고 길을 건너려는 사람들이 인도를 가득 메웠다. 사람들 사이에서 무언의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경찰은 보행 신호를 주지 않았다. 갑자기 몇 명이 달려오는 차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뒤이어 수많은 인파가 강물처럼 길을 건넜다. 교통경찰은 호루라기 한 번 불지 못하고 멀뚱멀뚱 지켜보아야 했다. 그 모습이 참으로 초라하고 한심해 보였다. 순간 깨달았다. 아무리 합법적인 공권력이라도 일반인의 상식을 이길 수는 없구나.
지금 대법원의 이례적인 판결을 두고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있다. 재판의 내용에 불만이 있어서가 아니다. 절차가 상식에 어긋날뿐더러 형평성을 크게 잃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이례적으로 빠른 기간 내에 이재명 후보에 대한 고등법원의 무죄판결을 파기환송했다. 무죄가 아니라 유죄로 다시 판결하라는 거다. 방대한 자료를 읽을 물리적 시간조차 부족한 짧은 기간에,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큰 후보의 자격을 박탈할 수 있는 중요한 판결을 졸속으로 해낸 것이다. 또 대법원의 파기환송은 보통 하급법원의 판결에 법 적용 오류가 있거나 새로운 증거 등장으로 기준 판결이 변경될 수 있을 때, 혹은 재판 진행 과정에서 절차적 위법이 있을 때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 판결은 사실 자체에 대한 유죄 여부를 대법원이 다시 판단했다. 아무리 봐도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의견을 지닌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지지하지 않는 후보에게 불리한 판결이니 오히려 잘됐다거나, 전문가 중의 전문가가 내린 판단이니 뭔가 이유가 있겠거니 하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둘 다 틀렸다. 심판의 권위는 상식에 어긋나지 않고 공정할 때 인정된다. 공정하지 못하면 아무리 합법적, 합리적이어도 정당성을 지닐 수 없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불법 주차단속은 당연히 합법적인 공무 수행이다. 그러나 주차단속원의 개인적인 신념에 따라 어느 한 업소 앞에서만 종일 하고, 경쟁 업소 앞에는 하지 않는다면 누가 정당하다고 인정할 것인가? 혹시 불공정한 주차단속으로 내가 이익을 본다고 해도 좋아할 것은 없다. 언젠가는 나에게 불리한 한 단속을 할 것이고 결국 모든 업소가 단속원의 눈치를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사법부에서도 가장 권위가 있는 최고의 기구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온갖 갈등을 최종 판단해서 통합에 이르게 하는 대단히 중요한 기능을 하는 곳이다. 그래서 높은 전문성과 도덕성을 지닌 곳이라고 인정하고, 판결의 내용이 다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를 존중하는 것이 성숙한 민주사회라고 배워왔다. 그런데 이번 사태로 대법원뿐 아니라 사법부 전체의 신뢰와 권위가 흔들리게 되었다. 이는 결국은 민주사회 자체의 안정성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생기는 상황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대통령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보다 사법 시스템 전체의 신뢰가 무너지는 이번 사태가 오히려 더 위험하고 심각할 수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 공정과 상식에 어긋난 판결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분노가 필요하다. 그래서 미흡한 제도가 있다면 보완하고, 자격 없는 심판은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 어쨌든 사법부의 권위가 무너지고 민주사회의 기본 틀이 위협받는 일만큼은 막아내야 한다. 상식의 이름으로, 자신들이 마음대로 세상을 만든다고 착각하는 일부 집단의 망상을 깨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