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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

by 심웅섭

"제비가 무얼로 집을 짓는지 아는 사람?"

"저요, 저요!"

앞에서 세 번째 줄에 앉은 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모든 질문에 손을 드는, 공부는 좀 하지만 자신감이 지나쳐서 요즘 말로 좀 재수가 없는 아이다. 선생님이 손으로 가리켰고 아이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솜 같은 걸 모아서요"

선생님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이때 맨 뒤에 앉은 아이가 손을 들고 대답했다.

"진흙하고 지푸라기로요"

평소에 한 번도 손을 들지 않던 아이가 조용히 대답했고 ’맞다‘는 선생님의 판정이 내려졌다. 아이는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도, 다른 아이가 맞혔다는 것도,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지식이 있다는 것도 모두 충격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바로 내가 겪은 일이다. 아주 사소한 사건의 장면을 소상하게 기억하는 걸 보면 열 살 꼬마의 자존심이 제대로 구겨졌나 보다.

50여 년이 지나서 내게 만회할 기회가 찾아왔다. 아내와 함께 운영하는 마을 카페에 제비 한 쌍이 집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네 마리가 날아들었다. 추녀 밑을 분주히 날아다니다가 가까운 전깃줄에 앉아 서로 지저귀는 게, 여기다 집을 지어도 될지 회의라도 하는 게 분명했다. 두 마리는 새로 살림을 차린 신혼부부일 테고 나머지 두 마리는 시부모, 혹은 처부모일 터이다. 집터를 정하는 일이 중요한 만큼 어른 세대의 조언을 받는가 싶었다. 회의의 결과는 다음 날 공개되었다. 신혼부부로 보이는 두 마리가 날아와 집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 진흙과 지푸라기를 교대로 물어다가 건물 이마에 열심히 붙인다.


그런데 뜻밖의 문제가 발생했다. 흙이 잘 붙지 않는다. 건물의 표면이 흙이나 나무가 아니라 미끄러운 징크 판넬이라서 생긴 문제다. 제비는 이리저리 장소를 바꾸며 흙을 붙여 보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보다 못한 내가 나무 조각을 하나 덧대어 주었다. 그러나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제비는 사람이 인공적으로 마련해준 것에는 절대로 집을 짓지 않는다는 걸 나중에 동네 사람에게 들었다. 우리처럼 징크판넬로 지은 집의 아주머니 말에 의하면, 작년에 제비가 결국 집짓기를 포기하고 떠났단다. 결론은 그저 지켜봐야 한다는 것.


여기에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음식 쓰레기와 건축자재가 분리수거 없이 마구 떨어진다는 거다. 물고 온 마른 솔잎과 진흙 덩어리는 물론이고 하루는 초록색 노린재 한 마리와 날도래 두 마리, 이름 모를 딱정벌레 한 마리까지 바닥에 떨어져 있다. 손님들이 차를 마시는 곳이라서 신경이 쓰이지만, 아내와 상의 끝에 쫓아내는 대신 청소를 좀 더 열심히 하기로 했다.


며칠이 지나자 두 가지 문제 모두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제비가 징크 판넬의 2cm정도 되는 작은 턱에 의지해 기초를 쌓는 지혜를 발휘했고 이 공법은 성공했다. 며칠 만에 골조공사가 끝내고 지금은 인테리어 작업을 하고 있다. 건축폐기물도 부쩍 줄었고 음식쓰레기는 첫날을 빼고는 더 나온 적이 없다. 혹시 첫날 떨어뜨린 벌레들은 실수가 아니라 사람에게 내는 일 년 치 텃세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우스갯소리를 하나 더 하자면 이 녀석들이 나름대로 건축허가까지 받았다는 거다. 본격적인 기초공사가 시작되기 전, 하루는 두 마리가 카페 안까지 날아와서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서양화 액자에 앉아 한참이나 나와 눈을 맞춘다. 설마 실내에 집을 짓겠다는 건 아닐까, 살짝 당황했지만 잠시 후 밖으로 나가서 별문제 없이 상황이 끝났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녀석들이 나에게 허가를 구한 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것도 모르고 밖으로 내쫓는 대신 한참이나 지켜보기만 했으니, 도장을 찍지는 않았지만 건축 허가를 내주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꼼짝없이 제비집 건축과 앞으로 태어날 제비 가족의 안전에 책임을 나눠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처음 카페에 찾아온 강아지. 차를 마실 것 같지는 않고, 제비 구경을 하러 왔나보다

사실은 스스로 찾아 든 제비가 반갑고 고맙다. 농약을 많이 치면서 한동안 사라졌다가 돌아온 것이 반갑고, 까다로운 심사와 면접을 통해 카페를 집터로 결정해주어 고맙다. 옆에서 자세히 지켜봤으니 이젠 솜으로 제비집을 짓는다는 멍청한 소리는 하지 않을 터, 내겐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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