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봐서는 뭔가 백수생활의 정석이나 대단한 비결, 하다못해 괜찮은 정보라도 들어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런 걸 기대하고 클릭한 분들은 한 마디로 낚. 였. 다. 뭐 내용은 별 거 아니면서 제목만 광고 카피처럼 근사하게 붙이는 게 브런치이다 보니 큰 기대는 접어두고, 그래도 양심이 있으면 백수생활의 경험이라도 재미 삼아 읽을 수 있겠거니 생각한 분들은 제대로 골랐다. 사실 나는 백수생활을 시작한 지 불과 2년 남짓의 초보 백수이다. 제대로 된 백수의 요령을 익히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다. 게다가 남들을 가르칠 만큼 박식하지도 않고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인생은 이렇게 살아라'는 식의 백수 생활지침을 펼칠 생각은 추호에도 없다. 대신 내가 경험한 백수생활의 소소한 일상과 백수가 된 과정에서 느낀 것들을 두서없이 풀어낼까 한다.
나에게 은퇴 후 삶은 언젠가 다가올 먼 미래의 현실감 없는 이야기였다. 마치 다른 모든 사람에게 나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당연한 사실이 실감 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해마다 나이가 먹어가는 만큼 은퇴는 확실히 예정되어 있었지만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직장의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백수를 꿈꾸며 은퇴 후 삶을 기다렸다. 그런데 막상 맞이한 은퇴 후의 삶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땅이었고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잠복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예상치 못한 문제들에 대한 답을 찾아내느라 이리저리 헤매야 했다. 아니 이 대목에서 과거형 시제를 쓰는 것은 옳지 않다. 현재 진행형 내지 미래형으로 바꾸는 게 맞다.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은퇴 2년 만에 어렴풋이 깨달은 게 있다. 백수, 그냥 쉽게 되는 거 아니구나. 나름대로 요령과 노력이 함께 필요한 직업, 그것도 고도의 기술과 자기 통제력이 필요한 전문직이로구나. 그런데 그동안 왜 아무도 백수생활에 대해서 얘기해주지 않았을까, 아니 혹시 많은 사람들이 미리 얘기해 주었는데 내가 관심이 없었던 걸까?
나의 글들은 슬기롭지 못한, 준비되지 않은 초보 백수의 방랑기 혹은 모험기일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도 같은 경험이 반복되리라는 법이 없으니 정답을 가르쳐 주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비슷한 상황, 혹은 심리적인 과정들을 겪을 가능성은 없지 않다. 그러니 짧은 브런치 글에서 도대체 백수의 삶은 어떤 것인지, 간접경험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예행연습 삼아, 혹은 그냥 심심풀이로라도 말이다.
D-59일, 아마 이날부터였으리라. 내가 퇴직을 앞두고 칠판에 커다랗게 D- N일 이라고 써 놓고 매일 숫자를 줄이기 시작한 것 말이다. 휴일 빼고 남은 휴가 빼고, 실제로 출근해야 할 날 만을 세었으니 짐작하자면 대충 10월 초쯤 되지 않았나 싶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 숫자를 지우고 하나씩 줄여가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조금만 참자, 이제 자유가 눈 앞에 다가왔다.
거꾸로 세면서 숫자를 줄여가는 재미는 있지만 사실 후배들에게 눈치깨나 보이는 짓임을 어찌 모르겠는가. 뒤늦게 말단 보직을 받아 따로 방을 쓰고는 있었지만, 수시로 후배들이 드나들면서 칠판에 쓴 숫자를 못 봤을 리가 없다. 더구나 쫌만 참자! 이런 글씨까지 턱 하니 써 놨는데 몰라 볼 사람이 있겠는가? 명색이 국장이란 놈이 회사에 얼마나 애정이 없으면 말년병장 제대 날짜 손꼽아 기다리듯 퇴직 날짜를 헤아릴까, 말은 안 하지만 이런 느낌에 뒤통수가 뜨끈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굳이 칠판에 쓰지 않고 조용히 수첩에 숫자를 적거나 스마트폰을 써도 될 텐데 왜 굳이 사무실 칠판에 큼직하게 써 붙였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좀 유치한 짓이었나 싶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퇴직을 구 년 가뭄에 단비 기다리듯, 아니 30년 장기수가 복역을 마치고 석방을 기다리듯 가슴 설레며 퇴직 날짜만을 기다렸다.
남들은 대부분 정년퇴직을 어쩔 수 없이 맞이하는 듯 보였다. 퇴직을 앞둔 동료들이 은근슬쩍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고, 후배들은 축하를 가장한 위로와 걱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퇴직을 앞두고 3개월의 휴가를 선택할 수 있는데 이걸 포기하고 근무하려는 사람들마저 제법 있었다. 뭐 이해 가는 이야기다. 당장 매달 따박따박 통장에 들어오던 월급이 안 들어오는 심각한 사태도 사태려니와 매일 출근하고 동료들과 어울려 아웅다웅 일하는 삶이 송두리째 없어지는 데 누가 퇴직을 좋아한단 말인가? 더구나 제법 월급도 많고 사회적으로 인정도 받는다는 방송사, 그중에서도 꽃 보직으로 꼽히는 PD들이고 보니 퇴직에 아쉬움이 남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그렇게 퇴직을 기다렸던 것일까? 돈이 엄청 많았을까, 아니면 퇴직 후 더 좋은 자리로 오라는 제안이라도 받았을까? 둘 다 아니었다. 두 번의 중간정산으로 남아있는 퇴직금도 많지 않았고 그나마 은행융자를 갚고 나면 겨우 여행 한 번에 1년 정도 버틸 돈이 남아있었다. 지방 평 PD로 30여 년 근무하고 말년에 국장 한번 달고 나가는 나에게 하다못해 중소기업 홍보담당으로라도 와달라는 제안 따위는 당연히 없었다.
그러나 내가 자신만만한 것, 그리고 퇴직을 기다리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내가 하고 싶고 즐길 거리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었다. 퇴직만 하면 내가 맘껏 해보고 싶은 것들이 넘쳐났다.
퇴직을 하면 우선 아내와 외국여행을 떠날 생각이었다. 30년간 휴가라고는 일 년에 일주일 남짓, 연차에 월차에 이것저것 붙이면 한 달 이상도 가능하겠지만 그건 이론적인 계산일 뿐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했다. 내가 맡은 프로그램을 그렇게 오랫동안 미리 만들어 놓거나 남에게 맡겨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여행기간도 그 기간을 벗어날 수 없었다. 오가는 데 시간이 걸리는 해외여행, 그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자유여행을 하기에는 턱없이 짧았다. 퇴직만 해라, 몇 달씩 외국으로 배낭여행을 가리라. 실크로드야, 터키야, 라오스야, 기다려라 내가 간다.
국내 여행을 위해서는 카라반을 장만해두었다. 3,400만 원이라는, 월급쟁이에게는 후덜덜한 거금을 턱 들여서 앞마당에 모셔놓고는 퇴직 날짜만 기다렸다. 동해안에서 남해안 서해안까지, 지리산에서 설악산까지, 통일이 되면 원산항을 거쳐서 개마고원까지 달려가리라.
그밖에도 시간을 보낼 소소한 취미거리는 많았다. 우선 800평이 넘는 널찍한 시골 전원주택이다 보니 할 일이 많다. 텃밭농사에 풀 뽑고 잔디 깎고 나무 손질하는 것만으로도 바쁠 지경이다. 서툰 솜씨지만 목공실에 웬만한 장비까지 갖춘 자칭 (개) 목수다 보니 마음만 먹으면 뭔가를 뚝딱거리고 만드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오디오 바꿈질에 이리저리 세팅하고 CD, LP, 릴 테이프, 외장하드, 스트리밍, 음악 FM까지 다양한 소스들을 비교하며 공부하며 듣는 일도 평생을 해도 모자랄 만큼 다양하고 재미있는 일이다. 걷는 것 좋아하고 자전거도 즐기는 데다가 가까운 곳에 속리산과 피반령과 임도들이 즐비하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걷거나 라이딩을 할 수 있다. 여차하면 외국어 공부에 인문학 책들도 읽고 마음이 움직이면 침술도 좀 더 파고 들 수도 있었다.
아내와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라고 생각했다). 흔히들 퇴직하고 나면 아내와의 새로운 관계 설정에 어려움을 겪는다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아내는 나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고 있으니 나와 함께 있는 순간들을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앞서 말한 이런저런 즐길거리들 옆에는 당연히 지켜보고 함께하고 손뼉 쳐 줄 아내가 있었다. 이러니 퇴직을 손꼽아 기다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 퇴직만 해라, 이제부터 내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