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오늘이 순례 3일 차다. 역시 어둠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간에 숙소를 나왔다. 아침 식사를 파는 곳이 있다는데, 어째 얼른 눈에 띄지 않는다. 다음 마을까지 한두 시간쯤 걸어서 아침 식사하면 될 테니 걱정 없다. 그래도 혹시 싶어서 자판기에서 땅콩 과자 두 개를 뽑았다. 길은 편안하고 날씨도 쾌청하다. 오늘은 묘하게도 뒤처지지 않고 순례자들과 같이 걷는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주칠 때면 가볍게 목례를 하거나 ‘buen camino’라는 말로 인사를 건넨다. 같이 걷되 각자 걷는 것이다.
나는 아내와 걷기를 좋아한다. 혼자서는 심심하고 그룹으로 걷는 것은 정신이 없다. 산이든 둘레길이든 걸을 때는 주변의 풍경과 내 몸의 변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살피면서 걷는데, 다른 사람들과 걷다 보면 종종 대화에 정신이 팔려서 주변과 나 자신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잘 모르는 남의 이야기나 정치 이야기 등을 끊임없이 해 대는 사람은 최악의 길동무다. 몸은 길을 걷되 마음은 엉뚱한 곳에 있기 마련이고 무엇보다도 듣고 대답하는 데 신경을 쓰다 보면 힘이 든다.
그렇다고 혼자 걷는 게 좋다는 말은 아니다. 혼자서는 심심하다. 아내와 걷는 게 좋은 점은 같이 걷되 각자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참을 걷다가 자연스럽게 일상적인 대화나 내 마음에 일어나는 생각들을 나누기도 한다. 이미 상대방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대화만으로도 충분히 교감할 수 있으니 사실 긴 말도 필요 없다. 아내와 걸을 때는 상대방을 의식하거나 나 자신을 무언가로 포장할 필요가 없다. 혼자 걷는 것처럼 무방비 상태로, 혹은 무의식 상태로 걷는 데만 집중할 수 있다.
순례길에서 만난 길동무들도 대부분 나의 취향에 꼭 맞는 순례자들이다. 가까워지면 서로가 눈인사나 'buen camino' 정도의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보폭을 조절해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친구나 연인이 일행으로 걷는 사람들도 있지만 시끄럽게 떠드는 것을 보기 어렵다. 다만 중간에 카페에서 쉬거나 숙소에 들어가서는 다르다.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시고 혹은 떠들썩하게 어울려 놀면서 외로움을 달래기도 한다. 여럿이 걸어도 혼자 걸을 수 있고, 혼자 걸어도 외롭지 않은 길이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배가 고팠다. 출발한 지 세 시간쯤, 아침을 걸렀으니 위장은 이미 텅텅 비었고, 소화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 얼마든지 음식을 넘겨 달라고 아우성이다. 그런데 식당이 없다. 아니 열린 식당이 없다. 마을을 지나며 몇 개의 알베르게를 지나치긴 했는데 모두 닫혀있다.
심지어 어느 작은 도시에서는 까미노를 벗어나서 마을 한복판으로 진출하는 용기를 내었는데, 식료품점조차 문을 열지 않았다. 친절한 스페인 아줌마 한 분이 길을 묻는 우리를 차에 태우고 도착한 식료품점이었다. 난감한 표정의 아줌마가 정 배가 고프면 자기 집에라도 가자고 할 것 같아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음 마을에서 먹겠다는 말을 남기고 헤어진 후였다. 그러나 다음 마을에도, 그다음 마을에도 식당이나 카페나 식료품점이나 문을 연 곳이 없다.
비상이다. 순례자들은 배낭을 뒤져서 먹을 것을 나눈다. 나도 아침에 챙겨두었던 조그마한 땅콩 과자를 꺼내 보지만 그야말로 코끼리 비스킷이다. 간식을 먹으면서 여러 가지 해석들이 나온다. 어떤 이는 순례 시즌이 끝나서 알베르게의 문을 닫았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오늘이 무슨 휴일이라서 닫았다고도 한다. 이유야 어찌 됐든 결과는 하나다. 굶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 소싯적에 특공대 출신으로 주린 배를 움켜쥐고 생 옥수수며 무를 씹어가며 산악 행군했던 철의 사나이 아니신가? 앞에서 말한 머루와 이루엘라를 순례자 간식으로 개발한 것이 이날이다. 덕분에 우리 부부는 결정적인 허기는 면한 채 걸을 수 있었다.
길가에서 따 먹은 머루, 조금 달고 많이 시다
얼마인가를 더 걷다 보니 제법 큰 마을, 비아바(Villava)가 나타난다. 먼저 온 순례자 몇이 성당 부근 광장에 놓인 노천 테이블에 앉아 있는 걸로 봐서 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오, 카페가 열려있다. 냉큼 들어서 보니 간식들이 눈에 띄는데 모두가 먹음직스럽다. 그중에서도 동그랗고 두툼한, 우리나라의 옥수수 빵처럼 생긴 녀석이 눈에 들어온다. 삐죽삐죽 감자가 섞인 달걀 떡쯤 될 것 같다. 음, 입에 맞겠는걸. 이름을 물어보니 또띠야란다. 멕시코에서 본 또띠야는 옥수수 가루를 얇게 부쳐서 채소와 고기를 싸 먹는 일종의 전병인데, 스페인의 또띠야는 전혀 다르다. 하긴 뭐 스페인이 오리지널이고 멕시코가 가리지널일 터이니 시비를 걸 것도 없다. 배고픈 김에 또띠야도 시키고 샌드위치도 시키고 와인도 시키고, 배를 채우고 나니 세상이 내 것 같다.
배가 부르면 주변이 보이는 법, 한국에서 온 젊은이들이 몇 명 눈에 띈다. 사실은 론세스바예스부터 봐 온 친구들인데 그저 가벼운 눈인사만 나눴던 사이다. 그런데 몇 시간을 허기에 굶주리다가 배부르게 먹고 나니 마음이 열렸나 보다. 주로 젊은이들인데 휴학 중인 대학생도 있고 취준생으로 보이는 친구도 있고 직장을 다니다가 잠시 쉬고 온 친구도 있다.
까미노의 불문율이 한국에서 뭘 했느냐, 왜 왔느냐, 공부나 일은 팽개치고 어쩌려고 왔느냐 등등의 지극히 사적인 질문들이다. 젊은 친구들이 우리 부부를 멀리서만 바라보고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던 것도, 어쩌면 시시콜콜 호구조사에 뒤이어 나올 꼰대 식 가르침이 싫어서였으리라. 나 역시 궁금하기는 했지만 스스로 말하기 전까지는 묻지 않는 편이라서 다행히 이날 이후 편하게 걷는 사이가 되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나는 순례자들은 독일 사람이 제일 많고 다음으로 한국 사람이다. 그 뒤를 이어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호주, 뉴질랜드, 미국, 남아공, 러시아, 브라질, 이스라엘...... 가 보지도 못한 전 세계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일본인은 겨우 4명 만났고 중국인은 한 명도 없고 대만 사람은 두 명, 그중에 한 사람은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는 여성이었다.
많은 한국 사람을 굳이 연령대로 나누자면 절반 정도가 나 같은 60대고 나머지 절반이 젊은이다. 60대는 단체가 많고 젊은이들은 개별 순례가 많다. 그런데 한국의 젊은이들을 보면 60대와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우선 영어를 잘하고, 혹시 못해도 기죽지 않는다. 서양 젊은이들과 어울려 떠들고 마시고 낄낄대면서 조금도 주눅 드는 일이 없다. 스마트 폰을 능숙하게 다루니까 사실 길을 찾거나 정보를 얻거나 거리낌이 없으니 그럴 법도 하겠다 싶다. 다른 외국 젊은이들과 다른 점은 각자 왔으면서도 그룹으로 잘 뭉친다는 거다. 금방 친해져서 형, 누나, 동생이 되어 서로를 챙기고 도와준다. 내 눈에는 이런 젊은이들이 참으로 대견하고 사랑스럽다. 이들이 커서 어른이 된다면 서로가 도와주면서 세계무대에서 큰 역할을 하겠구나.
말이 나온 김에 한국 순례자 얘기를 하나 더 하자.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인터넷에서 본 기사가 있었다. 한국 순례자들이 매너를 지키지 않아서 어글리 코리안으로 소문이 나고, 심한 경우 한국인을 받지 않는 숙소와 식당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숙소에서 김치찌개에 삼겹살을 구워 먹고 시끄럽게 떠들고 아무 데나 한국말로 낙서한다고도 했다. 그 기사를 읽고 은근히 기가 죽어서 스페인에 왔다. 그런데 웬걸, 앞에서 말한 어글리 코리안은 한 명도 없다.
우선 낙서 이야기부터. 까미노를 걷다 보면 낙서가 참 많다. 특히 도시 주변으로 들어가는 콘크리트 다리와 터널 등에는 온갖 낙서와 그림들이 검고 붉은 스프레이로 빼곡히 그려져 있다. 이런 낙서들은 사실 낙서라기보다는 공공미술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럴 수는 없겠지만 만일 까미노에 그려진 낙서의 숫자를 모두 센다면 수백 만 개는 넘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많은 낙서 중에 한국말 낙서는 딱 7개 봤다. 그것도 아주 작고 얌전하게, 남의 낙서들 사이에 수줍게 말이다.
김치찌개에 삼겹살도 이해가 안 된다. 순례자들이 그 먼 거리를 비행기로 김치를 가져와서 무겁게 지고 걷다가 왕창 넣고 찌개를 끓여 먹는다는 것이 말이 안 되고, 설혹 끓여 먹는다고 그게 다른 외국인에게 피해를 준다는 말 또한 동의하기 어렵다. 냄새에 조금 당황할지는 모르지만, 혐오식품이 아니라 신기하고 이국적인 음식일 뿐인데 그걸 비난할 외국인이 있을까? 시끄럽고 떠든다는 말도 내 경험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 오히려 시끄러운 건 스페인 현지인이 제일이고 이탈리아나 독일인도 만만치 않다. 결론은 완전히 가짜 뉴스라는 건데, 도대체 누가 그런 가짜 뉴스를 퍼뜨려서 한국 사람들을 기죽이려고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빰쁠로냐, 스페인에서 몇 백 년 전에 지어진 돌로 된 집과 성당, 아치형 돌다리들을 제법 보고 건너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런 나에게도 이 오래된 도시는 놀라움이었다. 옛날 나바라 왕국의 수도로 20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는데, 우선 성벽 자체가 대단히 견고하다. 마치 첨단토목 기술로 정밀시공을 한 것같이, 틈새나 허물어진 것은 고사하고 조금 기운 곳도 없이 매끈하다. 16세기에 성을 쌓은 이후 한 번도 함락된 적이 없다는데, 과연 천하의 요새로 보인다. 나폴레옹 군대에게 성을 빼앗긴 적은 있지만, 성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프랑스군의 계략에 속아 문을 스스로 열었다고 한다.
언덕을 올라 성으로 들어서는 문에 들어서니 수백 년 전에 만들었을 기계장치들이 눈길을 끈다. 성문을 여닫기 위해 도르래를 만들었는데, 성문을 내리면 해자에 걸친 다리가 되고 감아올리면 문이 닫혀 길이 끊기는 식이다. 그 정교함과 견고함, 그리고 오랫동안 보존된 모습이 놀랍고 부러웠다. 아무래도 지진이나 큰 전쟁이 없었고 기후가 건조하기 때문이리라.
더 놀라운 것은 성벽 안에 오래된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있고 아직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점이다. 오래된 건물들이 어깨를 맞대고 빼곡히 늘어서 있고 그 건물에는 수백 년은 되었을 식당과 식료품점과 기념품점들이 좁은 골목길을 따라 이어져 있다. 왠지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인데 알고 보니 우리가 흔히 TV에서 보던 광란의 축제, 소 떼가 거리를 질주하고 사람들이 소 떼를 피해 달려가는 아찔한 엔시에로 행사가 열리는 곳이 바로 이곳이란다.
피곤이 대수랴, 숙소에 짐을 풀고 거리 구경에 나섰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알록달록 신기한 전통 과자도 좀 사고 식료품점에서 과일도 사고, 출출하기에 식당에 들어갔다. 지금까지는 순례코스에서 만난 순례자 메뉴였지만 오늘은 아니다. 제대로 된 스페인 전통요리, 그중에서도 나바론 음식을 맛볼 차례다. 그런데 식당 주인 말이 아직 영업을 안 한단다. 아니 6시가 넘었는데 식당을 안 열다니, 그럼 몇 시에 여냐고 물으니 8시란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여행안내서에 스페인의 식당은 저녁 8시가 돼야 저녁 식사를 판다고 쓰여 있다. 스페인 사람들은 저녁 식사시간이 늦고 길어서 이때 시작한 식사시간이 밤 10시까지 이어진단다. 그동안 순례길을 걸으며 6시에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순례자들의 요구에 맞춘 것이었구나.
배는 고픈데 8시까지 기다릴 자신이 없다. 할 수 없이 식료품점에 다시 들렀다. 먹음직스러운 바게뜨 빵에 달걀, 채소, 과일, 거기에 쌀도 있고 마늘도 있다. 숙소에 들어와서 아내가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채소와 과일로 샐러드도 만들고, 고기도 굽고, 달걀과 감자를 삶아서 바게뜨에 끼운 보까띠요도 만든다. 오랜만에 아내가 만들어 준 요리를 행복하게 먹었다. 나바론 전통음식이 눈에 어른거리기는 하지만 뭐, 스페인 여행 이제 시작이다. 기회가 많이 남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