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아침은 부산하기 짝이 없다. 일단 아침 8시에 모두 정리하고 숙소를 나서야 한다. 그전에 대충 씻고 화장실 가고 아침밥 먹고 우리 부부처럼 짐을 부칠 사람들은 배낭에 택을 붙여서 정해진 장소에 가져다 놓아야 하니 늦어도 6시 반에는 일어나야 한다. 10월 하순 스페인의 아침 8시는 아직 해가 뜨기 전, 혹은 막 뜰 무렵이라서 결국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서 부산을 떨어야 한다는 말이다. 더구나 눈을 떠보니 어둠 속에 비가 내린다. 촉촉이 내리는 가을비가 아니라 제법 주룩주룩 내리는 장맛비다.
고등학교 때 배운 세계지리의 한 부분이 떠오른다. 지중해성 기후는 여름에는 덥고 건조하고, 겨울에 춥고 비가 온다고 했다. 참 이상한 기후다 싶어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이 지역이 지중해성 기후 지역인지는 모르겠으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비가 제법 내렸다. 처음에는 며칠에 한 번 정도 내리더니 11월 들어서는 점점 자주, 그리고 많은 비가 내렸다. 마지막 산티아고 들어갈 때는 아예 온종일 내리는 장맛비를 뚫고 입성을 할 정도였다. 그러나 비가 온다고 순례를 멈출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으니 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출발하기 전에 아예 배낭 얘기까지 끝내자. 앞서 말한 대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배낭을 숙소에서 다음 숙소로 옮겨주는 서비스, 흔히 동키라는 서비스가 있다. 동키라는 말은 당나귀란 뜻인데 사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 아닌가 싶다. 순례길 어디에도, 배낭에 붙이는 택 어디에도 동키라는 단어는 없으니 말이다. 어쨌든 동키를 이용하려면 숙소에 비치된 봉투를 하나 골라서 가져다가 5유로(혹은 4유로, 회사에 따라 다르다)를 넣고 배달을 원하는 다음 숙소를 적어 놓는다. 그리고는 배낭을 둘 장소를 알베르게 주인에게 물어 가져다 놓으면 다음 숙소까지 차로 배달된다. 영수증도 없고 직접 맡기는 것도 아니라서 혹시나 짐이 사라지거나 누군가 귀중품이라도 빼면 어쩌나 걱정이 되지만 뜻밖에 그런 일은 없다. 우리 부부는 순례길 34일 중 거의 매일 동키 서비스를 이용했다. 집에서 출발할 때는 18kg도 할 만하다 싶었는데, 잠시 어깨에 메어 보는 것과 하루 20여 km를 매일 걷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동키로 보낼 80 리터 배낭에는 무거운 옷과 비상약과 목욕용품 등등을 잔뜩 밀어 넣고, 메고 걸을 38 리터 배낭에는 꼭 필요한 것들만 단출하게 챙긴다. 마실 물, 비상 간식, 판초 우의, 패딩점퍼, 스마트 폰, 지갑...... 뭐, 이 정도면 충분하다. 5kg이 채 안 되는 가벼운 배낭을, 그것도 부부가 번갈아 가면서 메고 가니 짐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단점은 매일 5유로의 돈이 든다는 것과, 내일 묵을 숙소를 미리미리 예약해야 한다는 점, 공립 알베르게의 경우에는 예약이 필요 없지만 사립 알베르게의 경우 앱을 통해서, 어떤 경우에는 전화로 직접 예약해야 확실하다. 따라서 숙소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내일 걸을 구간을 정하고 그곳의 숙소를 찾아서 예약하는 일이다. 발 닿는 대로 걷다가 마음 내키는 곳에서 묵으면 더 좋았겠지만 무거운 짐을 지고 낑낑대다가 중간에 포기하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인 선택일 듯싶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 빗속에 순례 2일 차를 시작한다. 론세스바예스에서 수비리는 23km 구간으로 한 번의 오르막을 빼고는 거의 내리막길, 어렵지 않은 코스다. 처음에는 작은 나무들 사이의 숲길, 조금 지나니 작은 개울을 따라 오솔길이 이어진다. 다행히 비는 그치고 날도 밝아졌다. 다른 순례자들이 심심치 않을 정도로 눈에 띈다. 부지런하고 걸음 빠른 그룹들은 이미 멀리 앞서가고 우리 부부처럼 게으른 순례자들이다. 우리 부부는 당연히 게으르면서도 늑장 부리는 그룹에 속한다. 천천히 느릿느릿 걷고, 처음 보는 식물이나 오래된 건물이 보이면 이리저리 살펴보고, 주민이라도 만나면 한두 마디 인사말이라도 건네고야 만다. 평생 바쁘게,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종종걸음으로 살아왔지만, 이제부터는 그럴 필요가 없다. 아무렴, 가진 게 시간뿐인 백수 아닌가?
까미노가 문득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 것은 바로 여유를 부리며 천천히 걷던 중이었다. (까미노 camino는 길이라는 뜻의 스페인어, 일반명사이다. 그러나 순례자들은 까미노를 우리가 걷고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뜻의 고유명사로 흔히 이해한다). 크지도 않은 개울을 건너는데 돌다리가 놓아 있다. 돌을 군데군데 던져놓은 징검다리가 아니라 제법 큰 돌로 교각을 만들고 그 위에 길쭉한 돌로 상판을 만들어 얹은 제대로 된 형태의 돌다리다. 색깔과 생김새로 봐서는 최소한 몇 백 년 전에 만든 듯싶다. 현대 장비가 없으니 저 무거운 돌들을 마을 사람들과 당나귀들이 낑낑대며 끌고 와서 만들었겠지, 그런데 이 한적한 오솔길의 저 다리는 누굴 위해 놓았을까?
스페인은 땅이 넓다. 농토는 넓고 집들은 각자의 농토에 흩어져 있는게 아니라 마을의 성당을 중심으로 다닥다닥 모여 있다. 농토에서 생산된 곡물들을 대량으로 먼거리까지 옮겼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농민들은 우리나라처럼 지게에 등짐을 지는 게 아니라, 말이 끄는 수레에 농작물을 날랐을 것이다. 사람이 한 명씩 건너야 하는 저 돌다리는 주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순례자를 위한 다리겠다는 판단이 서는 이유다.
1000년 전, 혹은 500년 전의 광경을 상상해 본다. 당시의 순례자들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충분한 노잣돈을 지닌 럭셔리한 여행은 아니었을 것이다. 추위를 막을 모자가 달린 커다란 망토에 몸을 지탱할 지팡이, 남루한 한 두 벌의 옷과 빵을 넣은 배낭, 발가락이 튀어나오는 허름한 신발을 신었으리라. 그런 차림으로 독일에서, 프랑스에서, 혹은 북유럽에서 출발해서 이곳을 지나갔으리라. 배고픈 순례자들은 구걸도 했을 것이고 혹은 남의 농작물이나 생필품들을 훔치기도 했겠지. 지쳐서 아무 데서나 자거나 병들어 죽는 경우는 없었을까? 말은 순례자라지만 주민들의 눈으로 보면 달갑지 않은 불청객들, 한 마디로 거지 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런 순례자들을 막거나 쫓아내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발이 젖을까 봐 힘들게 돌다리를 놓아준 스페인 사람들, 아니 그들의 조상들에게 문득 고개가 숙여졌다.
‘감사합니다. 당신들 덕분에 오늘 우리 부부와 수많은 순례자들이
아름다운 길을 편안하게 걷습니다.’
순례자들을 위한 배려는 이것만이 아니다. 길을 걷다 보면 아무리 무심한 사람도 스페인 사람들이 순례자들을 위해서 얼마나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는지 금방 느낄 수 있다. 우선 곳곳에 길을 잃지 않도록 표지판이나 표지석을 세워놓거나 돌멩이에 노란 화살표, 혹은 순례의 상징인 가리비로 길을 표시해 놓았다. 거기에 친절하게 산티아고까지의 남은 거리를 적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런 표지들은 출발지에서 시작해서 산티아고 성당에 도착할 때까지, 밭두렁 길과 산길과 마을길과 도시의 넓은 인도와 건물의 벽과 전신주를 가리지 않고 빠짐없이 설치돼 있다. 순례자들이 길을 잘못 들지 않도록 딱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세심한 배려가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마을에는 군데군데 순례자들을 위한 우물들이 남아있고, 주민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집 문 앞에 순례자를 위한 물병을 놓아두기도 한다. 알베르게 또한 순례자를 위한 편의시설이다. 옛날에는 주로 가톨릭 교구에서 운영했다는데 지금은 가톨릭 교구뿐 아니라 스페인 정부에서도 공립 알베르게를 운영한다. 대부분의 공립 알베르게는 시설이 깨끗하고 편의시설도 나름대로 훌륭하다 (물론 몇 군데 예외는 있었다). 하룻밤 숙박비는 5-10유로, 이익을 보기에는 너무 적은 액수다.
식당에서는 순례자들을 위해서 순례자 메뉴를 준비해두었다. 빵과 샐러드, 메인 스테이크, 간단한 디저트에 와인이나 커피를 곁들인 이 순례자 메뉴는 거의 12유로 선이다. 우리 돈으로 치면 15,000원 정도니까 순댓국 보다 비싸다고 볼 수도 있지만 유럽임을 감안하고 다른 식당들과 비교해보면 감사한 가격이다.
더 재미있는 게 있다. 길을 걷다 보면 길옆으로 다양한 간식거리가 심심찮게 나타난다. 마침 계절이 맞아서인지 모르지만 참으로 다양한 과일들, 간식거리를 만났다. 맨 먼저 눈에 띈 과일은 머루, 누가 봐도 주인 없이 그냥 길가에 달린 녀석이라 아무 생각 없이 따 먹었다. 조금 더 가다 보니 이번에는 진한 보라색의 이름 모를 과일이 눈에 띈다. 땅에 떨어진 놈을 조금 먹어보니 말랑말랑, 달달하니 썩 괜찮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녀석 이름이 이루엘라란다.
길가에서 떨어진 이루엘라를 주워먹고 있다
사과, 아몬드, 석류, 호두, 복숭아, 무화과, 포도........ 그 뒤로 우리 눈앞에는 여러 종류의 과일들이 잊을 만하면 차례대로 나타나 주었다. 처음에는 주인이 있으려니 싶어서 길에 떨어진 것들만 조금씩 주워 먹었는데 가만히 보니 이건 순례자들을 위한 배려라는 생각이 든다. 첫째 넓은 밀밭이나 올리브 과수원이나 마을길이나 가리지 않고 이런 과일나무들은 순례길 옆으로만 몇 그루씩 심어 있다. 땅에 떨어져 밟히고 썩어도 누가 수확하는 법이 없다. 배고픈 순례자들을 위한 스페인 사람들의 숨은 배려임에 틀림이 없다.
포도밭도 그렇다. 길을 걷다 보면 포도밭이 제법 많은데 유독 길가 쪽으로는 군데군데 수확하지 않은 포도가 까치밥, 아니 순례밥으로 매달려 있다. 나중에 들어보니 순례자들을 도둑으로 만들지 않기 위한 배려란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울컥, 눈물이 솟는다.
“그라시아스 아라 까미노”
아르헨티나의 국민가수 메르세데스 소사의 노래 제목, ‘생에 감사해(Gracias a la vida)’가 머리에 떠올라 이렇게 중얼거렸다. 길을 내준 스페인 사람들에게 한 인사말이다. 나중에 번역기를 찾아보니 정확한 스페인어도 아니다. 아무렴 어떠랴?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데, 스페인 사람들이 알아들으면 그만이지. 다시 한번 그라시아스 아라 까미노!
순례자에 대한 이런 배려는 중세, 가톨릭이 있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국가라는 개념이 지금보다는 더 약하고, 유럽 대부분이 가톨릭이라는 종교적 공동체성을 띄고 있었으니 막강한 가톨릭의 힘과 종교적 믿음으로 순례자들을 위한 시설과 활동이 가능했으리라는 말이다. 공립 알베르게도 그렇지만 순례길을 걷다 보면 옛날 배고픈 순례자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거나 가져가도록 두었다는 건물들도 있고 아픈 순례자들을 치료해주던 의료시설도 보인다. 물론 수백 년 전 일이니 지금은 유적으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종교적인 이유라고는 해도 스페인이 순례자들에게 많은 배려와 양보를 한 게 사실이고 천 년이 지나면서 이제는 뿌리 깊은 전통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점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순례자들을 바라보고 대하는 스페인 사람들의 태도다. 숙소인 알베르게나 식당 역할을 하는 바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야 당연하다고 치고, 어쩌다 마주치는 동네 사람들도 따뜻한 시선으로 순례자들을 맞아준다. 눈이 마주치면 웃어주거나 손을 흔들어주고 부엔 까미노 (Buen camino!)라는 격려의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무사히 잘 걸으라는 축복의 말이다. 이때 올라, 부에노스 디아스 (Hola, buenos dias!) 정도의 스페인 인사라도 한다면 뒤이어 장황한 질문 공세가 이어진다. 너 어디서 왔냐, 춥지 않냐, 어디까지 걸을 거냐? 등등...... 스페인어를 거의 못 한다는 뜻의 ‘노 엔뗀디, 아블라 운 뽀꼬 데 에스빠뇰’이라고 말해도 별로 소용이 없다. 이왕 터진 말 문, 한참을 이런저런 말을 하고서야 잘 가라고 인사를 하는 게 보통이다.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사람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순례자라는 이유 하나로 마음의 벽을 허물어버리는 스페인 사람들, 가리고 싶고 지키고 싶은 자신들의 삶터를 순례자들을 위해 아낌없이 내놓은 스페인 사람들, 문득 초대와 응대라는 말이 떠오른다. 마음을 열고 손님을 초대를 하는 것이 먼저, 손님들은 초대에 응하고 환대에 감사하고 거기에 적당한 보상을 하는 것이 순서다. 혹시나 우리는 마음을 열지 않고 시설만 잘 갖추었다고 손님들이 몰려와서 돈을 펑펑 쓰고 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수비리 입구의 라비아 다리
중간중간 마을에 들러 커피도 마시고 점심도 사 먹고, 오늘도 순례자들 중 거의 끄트머리로 숙소로 예정된 수비리에 오후 네 시쯤 도착했다. 수비리에 도착하니 먼저 멋진 다리가 우리를 반긴다. 라비아 다리라는데, 중세시대에 세워졌단다. 스페인을 걷다 보면 이처럼 오래된 다리를 종종 만나는데 1000년, 혹은 그 이상 무너지지 않고 있다는 게 참 신기하고도 부럽다. 자세히 살펴보면 다리의 가운데 부분이 높아서 전체적으로 아치형을 이루고 있다. 다리의 길이에 따라서 다르지만, 물이 빠져나가는 통로가 몇 개씩 있게 마련인데 이 또한 아치형이다. 돌이 돌을 누르고 있어서 무너지지 않고 긴 세월을 버티고 있는 거다. 집들도 마찬가지다. 네 모퉁이와 현관문, 창문까지도 모두 아치형으로 돌을 쌓았다. 우리나라는 주로 나무로 집의 구조를 짰는데, 스페인에서는 나무보다는 돌을 구하는 게 더 쉬웠나 보다. 크고 작은 집들 뿐 아니라 나중에 본 커다란 성당들도 결국은 아치를 이용해서 지붕과 기둥의 무게를 견디게 돼 있다. 건축의 기본이 아치인 것이다.
그 옛날 가난한 순례자들이 피곤한 걸음을 옮겼을 다리를 건넌다. 오늘은 공립이 아니라 사립 알베르게에 묵는다. 욕실과 주방이 있고 독립된 방이 주어지는, 제법 깔끔한 방이다. 숙박비는 35유로, 공립에 비교하면 비싸지만, 부부가 함께 묵고 편하게 잘 수 있으니 사실 크게 과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알베르게에서 약간의 상황이 생겼다. 아내가 샤워하는 사이에 내 차례를 기다리느라고 팬티만 입은 채 거실에 있는데 갑자기 현관문이 열리면서 집주인 아줌마가 부부로 보이는 순례자를 데리고 들어온다. 사실은 2층 전체를 쓰는 줄 알고 방심하고 있었던 터라 주인아줌마를 탓할 형편은 아니지만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앗, 죄송해요. 제가 지금 거의 벌거벗고 있거든요”
그런데 주인아줌마와 부부의 반응이 의외다. 별일 아니라는 듯이 나를 무심히 바라보고 있고 따라 들어온 중년 부부 역시 아무렇지도 않다. 나중에야 당황하는 나에게 맞장구를 쳐 주려는 듯, 남편만 손으로 눈을 가리는 척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헉, 이건 뭐지? 내 복장이 지금 별거 아니란 말인가? 나중에 공립 알베르게에 머물면서 차차 알게 되었는데 스페인에서 삼각팬티 한 장이면 숙소 내에서는 거의 정장 수준이다. 심지어 아가씨들도 속옷 바람으로 왔다 갔다 한다. 처음에는 놀랍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더니, 며칠 지나고 보니 별거도 아니다. 뭐, 내가 그동안 너무 호들갑을 떨며 살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