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금살금, 나는 지금 크레바스를 건너는 중

by 심웅섭

삐리리리릭-


전화가 울렸다. 오랜 고향 친구들과 구례로 나선 여행길, 조용하고 경치 좋은 산사를 둘러보는 중이었다.


"여보세요?"

"아 네, 고객님. **은행입니다. 지금 마이너스 대출 쓰고 계시죠? 그거 만기가 돼서 연락드렸습니다"

"아, 마이너스 대출이요? 저 그거 혹시나 해서 약정만 해 놓고 안 쓰고 있는데요"


있으나마나 한 마이너스 대출 연장이라니, 그걸 꼭 지금 같은 분위기에 전화를 해야 할까? 조용하지만 단호한 내 대답에 잠시 머뭇거리는 상담원. 그런데 뒤이어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저기요, 고객님. 지금 쓰고 계시거든요. 아직도 회사 다니시나요?"

"아니요, 퇴직했습니다"

"그러면 더 이상 연장이 안되니까 상환하시든가 다른 대출을 알아 보시죠"


허걱, 예상치 못한 반격에 제대로 맞았다. 순간, 지금 상황에 대한 재빠른 판단이 이루어진다. 공과금과 카드값이 나가는 내 계좌에 잔고가 부족했구나, 월급이 끊긴데 이어 실업급여마저 끝이 난 상황에서 카드값이 결제되느라고 마이너스가 생겼다는 말이다. 이번에는 다른 계좌의 잔고를 옮기는 것으로 간단하게 해결했지만 결코 간단하지 않은 상황의 시작임을 모를 리 없다. 바야흐로 연금 크레바스에 막 첫발을 내 디딘 것이다.


연금 크레바스, 정년퇴직과 9개월의 실업급여 기간이 끝나고 나서 국민연금이 개시되기 전까지의 수입이 제로인 기간이다. 정확히 15개월간 아무런 수입이 없이 버텨야 하는데 이걸 빙하의 좁고 깊은 틈새인 크레바스에 비유한 것이다. 크레바스, 산악인들이 두려워한다는 좁고 깊은 얼음 구덩이가 내 앞에 펼쳐져있다. 그동안 자유니 제2의 인생이니 낭만적인 단어로 포장해 왔지만 사실 은퇴는 소득의 단절이라는 혹독한 현실, 크레바스의 시작이었구나.


그런데 크레바스를 건너려면 무얼 해야 하지? 아무래도 몸이 가벼워야 할 것 같다. 불필요한 누수와 지나친 지출을 없애거나 줄여야 한다는 뜻이다. 먼저 통장의 지출내역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쓰지도 않는 인터넷 전화요금이 10년째 매달 몇 천 원씩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 인터넷 전화를 신청한 적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얼마 쓰지 않아서 전화기를 없애버렸는데 해약하는 걸 깜빡했나 보다. 그 사이 요금은 따박따박 나가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당장 전화를 해서 해약했다. 일 년에 대략 9만 원씩, 어쩌면 백만 원쯤의 돈이 필요 없이 재벌그룹으로 들어갔구나, 속은 쓰리지만 누굴 탓할 수는 없다. 이제라도 막았으니 다행이다.


두 번째로 줄이기로 한 것은 통신요금, 매달 5-6만 원이 핸드폰 요금으로 나가고 또 25000원 정도가 인터넷과 IPTV로 나가는데 이걸 알뜰폰 결합상품으로 바꾸면 합쳐서 3만 원 남짓으로 해결된단다. 거의 매달 5만 원가량이 절약되는 셈이다. 약정이 끝나기를 기다려서 하루도 넘기지 않고 딱 제 날짜에 통신사를 바꿨다.


담배도 끊었다. 하루에 15개비, 한 달이면 22-3갑 정도의 전자담배를 피우고 있었으니 금연만으로 대충 10만 원 정도가 절약된 것이다. 혹시나 실패하면 어쩌나 싶어서 아내에게는 일주일쯤 지나서야 금연 사실을 알렸다. 며칠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생각보다는 쉽게 금연에 성공했다. 이렇게 세 가지 사소한(?) 노력으로 한 달에 무려 15만 원 정도의 지출이 줄어들었다. 이런 나의 노력을 조금 의아하게 바라보는 시선들도 있었으나 개의치 않았다.


20여 년 전, 우연한 기회에 녹색평론이라는 잡지를 만났다. 얼마 전 고인이 되신 김종철이라는 분이 발행하신 생태주의 잡지다. 재생지를 이용한 가볍고 소박한 잡지였는데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단순 소박한 삶, 자발적 가난이 전 지구적인 생태위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말에 깊게 공감했고 나도 언젠가는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조금 욕심을 더하자면 생태적인 삶에 자연과 영성이 보태어진 삶을 살고 싶었다. 때마침 명상과 기공수련에도 심취했는데 생태와 영성은 다른 듯 공통점이 많았다. 부와 물질 소비에 관심을 두지 않는 점에서 말이다. 생태적인 삶을 꿈꾸고 흉내도 내보았다. 시골에 터를 잡고 텃밭농사에 생태 화장실도 만들고 소비와 쓰레기를 줄이는 척 폼도 잡아봤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어느새 자가용 두 대에 카라반을 두고, 천만 원 대의 기계를 운영하는 오디오 마니아로 도시적 삶을 살고 있었다.


이제 소득이 줄었으니 억지로라도 생태적 삶을 살 수 있을까? 단순 소박한 삶, 물질이 아니라 자연과 영성, 그리고 문화를 즐기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아니면 궁핍감 속에서 부끄러워하며 불편해하며 살아갈 것인가? 그건 잘 모르겠다. 이제 겨우 첫 발을 내딛는 초보 백수이기 때문이다. 하나 확실한 것은 앞으로 내 소득은 직장 다닐 때의 1/3 수준을 결코 넘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런저런 일로 잔돈푼을 벌 수는 있겠지만 돈벌이에 매일 생각은 아예 없다. 결론은 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내 지출 감량의 목표는 노령연금과 개인연금을 합한 금액, 다시 말해서 내가 받게 될 연금총액 이내로 줄이는 것, 거기에 욕심을 낸다면 약간의 여행경비와 비상금을 위한 저축을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게 있다. 이 과정에서 부끄러워하거나 기죽지 않기, 때로는 경조금 대신 말로 인사를 건네거나 가벼운 분식으로 외식을 때우거나 중고장터에서 물건을 사는 일에 머뭇거리지 않고 당당하기, 그러면서도 가끔은 의미 있는 소비에 인색하지 않기 뭐 이런 것들이다.


나는 지금 연금 크레바스를 건너는 중이다. 어디를 밟아야 얼음이 깨지지 않을지, 과연 내가 무사히 건너갈 수 있을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조심스럽지만 두렵지는 않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은퇴 백수라는 상급학교에 진학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처음 중학교에 진학했을 때 방정식이라는 단어에 기가 죽었지만 알고 보니 별 거 아니었던 것처럼, 연금 크레바스도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닌 과정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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