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혹은 보름에 한 번씩 되풀이되는 나의 이벤트가 있다. 커피를 볶는 일이다. 장소는 수돗가 추녀 밑, 바람이 제일 덜 부는 후미진 곳에 주방에서 쫓겨난 낡은 가스레인지를 옮겨 놓고 깡통으로 만든 로스터기를 올려놓았다. 로스터기는 멸치 국물 내는 구멍 뚫린 깡통에 식당에서 쓰는 반찬냉장고 통을 재활용해서 어느 솜씨 좋은 사람이 수작업으로 만들었는데 보기보다는 제법 튼튼하고 실용적이다. 게다가 손으로 돌리면 삐그덕 삐그덕, 아날로그 감성 가득한 소리를 내는 것이 딱 내 취향이다. 생두는 주로 에티오피아를 많이 쓴다. 예가체프, 시다모, 훈쿠테..... 저렴하면서도 비교적 신맛이 강한 녀석들이다. 여기에 가끔은 과테말라나 온두라스, 혹은 브라질 생두를 사기도 하는데 일단 가격이 비싼 놈들은 제외다. kg당 12,000원 내외, 비싸도 2만 원을 넘기지 않는다. 백수에게 커피값으로 한 달에 5만 원 정도면 적당하기 때문이다.
자격증은 고사하고 그 흔한 유튜브 한 번 검색한 적 없으면서 은근히 자신감 넘치는 야매 로스터가 커피를 볶는 방법은 이렇다. 먼저 생두를 1kg을 깡통에 붓는다. 500g씩 볶으라고 설명 들었지만 여러 해 경험해보니 1kg도 문제없다. 결점두를 미리 고르지도 않는다. 어차피 로스팅이 끝난 후에 한 번 골라내면 그만이다. 먼저 센 불로 10분 정도, 대략 1분에 45-50회전으로 천천히 손으로 돌린다. 이걸 잘한답시고 너무 빨리 돌려서는 안 된다. 원심력 때문에 오히려 잘 섞이지 않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쓸데없이 힘이 든다.
센 불로 10분 정도 가열하다 보면 달착지근하면서도 익어가는 냄새가 살짝 올라오는데 이쯤에서 중불로 내리고 3-4분을 계속한다. 이때부터는 냄새와 함께 소리에도 집중해야 한다. 커피가 튀겨지는 소리, 파핑을 놓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가짜 파핑에 속으면 안 된다. 성질 급한 녀석들, 주로 작거나 불량품인 놈들이 먼저 틱 소리를 내는데 요건 그냥 무시한다. 어차피 나중에 골라낼 놈들이다. 진짜 파핑은 최초의 틱 소리가 나고 나서 최소한 2-3분쯤 지나서 약간 푸르스름한 연기, 그리고 구수하고 달큼한 냄새와 함께 연달아서 틱 틱 소리가 날 때이다. 갑자기 통이 가벼워져서 거저 돌아가는 느낌이 드는 것도 이때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먼저 불을 약불로 내린다. 처음부터 시간을 재기 위해서 스마트폰의 초시계를 돌려놓았는데 파핑이 시작된 후부터는 초시계에서 거의 눈을 떼지 않는다. 1차 파핑이 일어난 후 몇 분을 더 로스팅하느냐에 따라서 커피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생두 종류와 계절에 따라서 달라지지만 내가 좋아하는 시간은 보통 1분에서 최대 2분 이내다. 미디엄 로스팅을 권장하는 생두일 경우는 30초에 끝내기도 하고 혹시라도 불이 세어서 파핑이 타타타타 급하게 진행될 경우는 즉시 꺼내기도 한다. 어쨌든 보통 1분 정도를 약불로 가열한 후에 불을 끄고 다시 1분 정도 통을 돌린다. 가스 불은 꺼졌지만 커피는 이미 200도가 넘은 상태로 파핑은 서서히 진행 중이다. 일종의 뜸을 들이는 과정이다.
그 사이 두꺼운 가죽 장갑을 끼고 통을 열어서 색깔을 확인한다. 원하는 색이 덜 나왔을 경우는 다시 뚜껑을 닫고 조금 더 기다린다. 잔열만으로도 충분히 뜸이 들기 때문에 다시 가열할 필요는 없다. 이제 쿨러(라는 멋진 영어를 썼지만 사실은 목욕탕에서 쓰는 플라스틱 의자에 환풍기를 거꾸로 매단 자작품이다)에 쏟아 넣고 전원을 넣으면 끝, 이상태로 5분 정도 식히고 비벼서 껍질(채프)을 알뜰하게 제거하고 결점두를 골라내면 로스팅이 끝난다. 로스팅의 전 과정에 필요한 시간은 대략 30-40분, 이제 한두 시간 야외에서 거풍을 시켜 통에 넣고는 2-3일 후부터 내려 마시면 된다.
커피를 볶는 과정은 묘한 긴장감과 기대가 교차하는 즐거운 이벤트다. 그 이유는 결과가 항상 같지 않다는 불확실성, 다시 말해서 실패할 확률이 있다는 점이다. 생두가 무엇인지, 권장하는 로스팅 포인트는 무엇인지, 바깥 날씨는 얼마나 추운지......, 등등의 변수에 따라서 잘 조절하지 않으면 너무 타거나 덜 익거나, 어쨌든 원하는 맛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불확실성이 바로 즐거움의 주된 요인이 된다. 정보와 경험과 느낌과 기분에 따라서 결과를 예측하고 통제하는 일, 그리고 그 복잡한 연산의 결과가 내가 예측한 결과와 정확히 떨어질 때의 쾌감, 혹은 우연히 오묘한 결과가 나왔을 때의 희열 같은 것들은 커피 볶는 일을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즐거운 이벤트, 혹은 예술로 만드는 요인들이다. 물론 이런 관점은 내가 돈을 벌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순전히 혼자서 즐기기 위해서 로스팅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 마디로 프로가 아니라 아마추어라는 뜻인데, 아마추어라는 말이 서툴다는 뉘앙스와는 다르게 어원상 사랑한다는 뜻의 아모르에서 나왔다고 하니 커피 볶는 일을 즐기는 나야말로 진정한 아마추어일 것 같다.
내가 커피를 볶기 시작한 것은 대략 6-7년 전, 그전까지 나는 커피를 즐겨 마시지 않았다. 대신 다구와 차실까지 만들어 놓고 주로 보이차와 우롱차를 마시곤 했다. 가끔은 직접 고욤잎과 우엉, 수박무 등으로 차를 만들기도 했고 지인들에게 자랑 겸 나눠주기도 했다. 그러나 집에서 커피를 마시지는 않았다. 솔직히 난 커피가 맛있는 줄 몰랐다. 봉지에 든 믹스커피는 너무 달고 텁텁해서 부담스러웠고 어쩌다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는 씁쓸하고 맹물 냄새가 나는데 값은 쓸데없이 비쌌다. 뭐 장소 값이거니 이해는 했지만 어쨌든 커피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물론 이런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커피가 누구신가, 한때는 금보다도 귀한 사치스러운 기호품이었고 천 년 이상 수많은 종교인과 예술가와 학자들,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귀족들과 평민들의 애호품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서양 신문물의 상징으로 들어와 낭만의 아이콘을 거쳐 이제는 믹스커피라는 형태로 서민들의 필수 기호품이 되고 길거리마다 카페들이 생겨나는 커피왕국이 되지 않았는가? 이처럼 이미 검증된 훌륭한 기호품인 커피에 시비를 거는 순간, 그 결과가 어찌 될지는 안 봐도 비디오였다. 중세 유럽에서 기독교리에 의문을 제기한다거나 유교사회에서 공자님 말씀에 토를 다는 행위와 다를 바가 별로 없는 무모한 짓이다. 마녀재판이나 멍석말이는 아니지만 천하에 무식한 놈, 교양 없는 놈으로 은근히 따를 당할 게 뻔하지 않은가. 그래, 남들은 다 맛있어서 마시는 걸 거야, 아직 내가 몰라서 그런 거니 암 말도 안 하고 그냥 마시고 돈 내자.
그런데 내가 커피를 볶아서 마시면서 뜻밖의 사실을 알았다. 우선 커피는 쓴 맛만 있는 게 아니라 시고 달고 고소하고 종류에 따라서는 과일향에 비스킷 향이 나기도 하는 아주 오묘한 녀석이라는 거다. 그동안 커피가 쓰게만 느껴진 것은 대부분의 커피숍에서 강배전된, 그러니까 내 기준으로 봐서는 너무 태운 커피를 진하게 뽑아서 여기에 물을 희석해 주었기 때문이다. 적당한 정도로 볶은 커피를 잘 내리면 쓴 맛이 아닌 다른 맛들이 나고 카페인도 덜해서 즐겨 마실 수가 있다.
물론 커피숍이니 인터넷에서 전문가가 로스팅한 원두를 사서 먹는 아주 간단하고 편리한 방법이 있다. 아주 다양한 종류의 원두를 생두 값에도 미치지 않을 정도의 저렴한 가격으로 파는 곳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는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으니 그건 커피에 대해서 단순한 소비자냐 생산에 참여하는 능동적인 존재냐 하는 기본적인 관계설정의 문제,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로스팅된 원두를 꺼낼 때의 짜릿함과 사람들에게 내가 볶은 거야 라고 자랑스럽게 떠벌이는 즐거움을 포기해야 하는 등의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들이다.
게다가 커피를 볶고 갈고 내려마시는 일은 나름대로의 불확실성이 내포된, 다시 말해서 집중이 필요한 작업이니 생활에 약간의 긴장감을 주는 의식(리추얼)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아침 식사를 하고 나서 아내와 커피를 마시는 의식, 그전에 물을 끓이고 커피를 갈고 드리퍼를 선택하고 서서히 내리고 아내의 반응을 살피고......, 이런 과정들이 백수에게는 나름 중요한 매일매일의 리듬이 아닐 수 없다. 거기에 가끔씩 사람들의 칭찬과 감사의 인사까지 덤으로 따라오는 일, 백수가 계속해서 커피를 볶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