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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남책 Jul 04. 2024

우당탕탕 캠핑일기_1

병지방캠핑_첫 날

무계획 캠핑의 시작.


지금의 아내를 여자친구로 만나고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난 그때 처음으로 캠핑을 시작했다. 


사랑하는 마음에 방금 보고 왔던 얼굴을 또 보고 싶던 시기였고, 신나게 데이트한 후 집으로 보내야 할 때면, 다음에는 어디서 데이트할지를 미리 정하고 싶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보니, 항상 비슷한 방식으로 비슷한 곳에서 하는 데이트 말고 좀 창의적인 데이트를 하고 싶었고 그때 떠오른 것이 바로 ‘캠핑!!’ 이었다. 누가 보면 어지간히 창의적이라고 비웃을 거리지만, 그때 나에게는 머리에 백열전등이 환하게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난 그 흔한 검색 한 번 해보지 않고 여자친구에게 대뜸,


“ 우리 캠핑갈까? ” 하고 물어보았다.

“ 응, 좋아 ”

잠시도 고민하지 않는 그녀의 긍정적인 대답과 함께 나는 들뜨기 시작했고 난 그때부터 정말 신이 나서 떠들었다. 캠핑에 대해 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데도 여자친구는 계속해서 내 말에 호응해주었고 그게 바로 사랑이자, 그 당시 내 에너지였던 것 같다. 


집에 돌아와 근처에 살고 계시는 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 삼촌, 저 캠핑갈 건데 장비 있죠? ”

삼촌과는 워낙 친한 사이라 나한테 빌려줄지에 대한 의사는 묻지 않았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삼촌은 흔쾌히 수락하며 나보다 더 들뜬 말투로

“ 필요한 건 다 있지, 뭐든 가져가라”라고 말씀하셨다.

앞으로 자주 등장할 내 막냇삼촌과의 대화는 항상 이런 식이다. 


때는 더위가 한창인 7월의 여름이었고, 우린 시원한 계곡을 찾아보았다. 그러다 보니 우연히 횡성의 ‘병지방 계곡’이란 곳을 알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우리는 바로 캠핑할 장소를 확정했다.

예약도 하지 않은 캠핑계획. 그것은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미친 짓의 시작이었다. 예약도 없이 그곳에 가기만 하면 우리가 캠핑을 할 수 있는 것인가? 우리의 무모한 행동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출발 


삼촌의 집으로 가서, 삼촌의 차에, 삼촌의 캠핑 장비를 실었다. 삼촌은 장비를 하나하나 보여주며 나에게 설명을 해줬는데.. 내가 이 장비들을 잘 사용하길 바라는 마음과 그것들에 대해 뿌듯함이 같이 있는 듯했다.

무거운 장비를 트렁크와 뒷좌석에 꾹꾹 눌러 넣은 후 차 키를 받아들고 난 시동을 걸었다. 삼촌은 항상 내가 탈 것에 대비해 ‘누구나 보험’을 들어두신다. 그리고 오늘 난 내 수준에 탈 수 없는 고급 차를 몰고 캠핑을 떠난다. 


여자친구를 태우러 가는 길에 보이는 하늘이 그렇게 맑을 수가 없었다. 이글이글 태양도 그냥 환하게 비추는 조명 같기만 하고, 자동차의 기름은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중계동의 똑같은 모양과 똑같은 색깔을 한 아파트단지들을 끼고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곳에 정차했다.

여자친구는 날씬한 몸매에 쫙 달라붙는 가죽 레깅스를 입고 나왔다. 왠지 부끄러워 말은 안 했지만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덕분에 출발도 하기 전부터 마음이 딴 세상을 헤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내 운전에 집중했다.  

서울에서 병지방 계곡까지 가는 길은 중부를 타고 가다가 영동고속도로를 타야 한다. 그리고 그 당시만 해도 마지막쯤엔 정돈되지 않은 산길을 꽤 올라가야만 했다. 구불구불 계곡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던 중 우리는 많은 사람이 주차하고 힘들게 짐을 옮기는 장소를 발견했다.

“오! 여기인가 본데? ”

우리는 예약도 없이 그냥 왔고 거기가 어떤 시스템인지 알지도 못했지만, 그냥 사람들을 따라 차를 세웠다.

다행히 누군가가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고, 주차는 저기에 하고 짐을 계곡으로 옮기면 된다고 친절히 알려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관리직원은 아니었을 텐데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궁금하고 고마웠다.

그렇게 우리의 무모한 첫 캠핑이 시작되고 있었다. 



캠핑 시작_첫째 날 


어디에 텐트를 칠지 자리를 찾아보지도 않고 먼저 옷 가방이 든 짐을 내렸다. 그리고 계곡에 아슬아슬 놓인 다리를 건너 그늘진 산속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여기저기 텐트를 쳐놓았고 빈자리는 없어 보였다.


‘ 아 이런….’


짐을 들고 한참을 방황하던 중 어떤 터줏대감 같은 아저씨랑 눈이 마주쳤다. 그 아저씨는 우리를 불쌍하게 보더니,

“ 여기 사실 내가 맡아둔 자리인데…. 그냥 여기에 쳐 ”

라고 선심을 쓰듯 말하며 본인이 맡아둔 짐을 다른 곳으로 옮겨주었다.

우리는 “ 와아!! 감사합니다 ” 를 몇 번을 외쳤는지 모를 정도로 인사를 하고 신나게 그 자리에 짐을 갖다 두었다. 

그 당시 나는 캠핑은 아무 곳이나 가서 텐트만 치면 된다고 생각했었고, 캠핑장을 예약한다는 생각도 못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끔찍한 기억이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하나도 힘들지 않았고 실제로 우리는 웃으며 계속 즐거워하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차 트렁크에 있는 무거운 짐들을 들고 계곡을 건너는 일이 남았다. 주차장이 왜 이렇게 멀리 있는지 투덜대고 낑낑대며 짐을 옮겼지만 3박 4일간 우리의 여행이 시작된다는 생각에 시간이 짧게만 느껴졌다. 누가 이런 걸 과학적으로 설명해주면 좋겠지만 아마도 아인슈타인만 가능할 것이다. 


우리의 자리는 터줏대감 아저씨가 명당으로 맡아둔 자리다 보니 숲속 그늘진 곳에 남들의 방해를 가장 적게 받는 좋은 자리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초심자의 행운’을 여기에 한 번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미리 밝힌 사실이지만 이 여자친구와 나중에 결혼까지 했으니 결과적으로 엄청난 행운을 사용한 것이라 하겠다. 

자리를 감상하는 시간도 잠시, 짐들을 다 옮기고 나니 이제 텐트를 쳐야 할 시간이었다.


“ 자 이제 텐트를 쳐 볼까? ”


괜히 자신감을 보이듯 혼잣말을 하고 난 뒤, 문득 삼촌의 말을 떠올려본다.

‘ 이건 엄청 쉬워. 그냥 가운데 부분을 위로 쭉 올리면 되는 거니까 가서 해보면 바로 알 거야 ’

난 그때 삼촌의 설명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왜? 쉽다고 하니까…. 

근데 삼촌의 샛노란 색 텐트를 다 펼쳐놓고 아무리 봐도 텐트를 일으킬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삼촌이 주는 대로 받아서 챙겨온 장비이다 보니, 팩은 있는지? 망치는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텐트만 펼쳐둔 채로 주위를 둘러보며 저 사람들은 어떻게 텐트를 친 건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때 우리의 구세주인 터줏대감 아저씨가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이 아저씨는 지금 생각해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계곡 자리에 장기간 텐트를 쳐놓고 독점하는 나쁜 아저씨였지만, 그 당시 우리에게는 ‘구세주’ 였다. 


구세주 아저씨가 슬금슬금 오더니, 우리에게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고….’ 우리는 귀로는 듣고 있지만, 감히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멍하니 서로 보고만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답답했는지 아저씨가 “ 이리 와봐 ” 하더니 텐트 치는 걸 도와주기 시작했다. 잠깐 사이에 텐트가 마법처럼 일어나고 아저씨는 구석구석에 팩을 박기 시작했다. 우리는 또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수 차례 드렸고 구세주 아저씨는 쿨하게 자기 텐트로 되돌아갔다. 

이제 진짜 여행의 시작이다. 우리는 텐트 안쪽에 짐을 정리했다. 그리고 함께 텐트에 들어간 김에 뽀뽀도 했다. 땀이 범벅이었지만 더럽다는 건 전혀 의식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배가 고파오는 건 느껴졌는데 역시 인간은 생존본능이 먼저 인가보다. 우리는 계곡물에 잠깐 세수만 하고 마트에 가기로 했다. 내비게이션을 찍어보니 하나로마트가 그럭저럭 가까운 곳에 있었고 우리는 바로 출발했다. 

이제부터가 먹을 거 하나 없이, 예약도 안 하고, 생전 처음 보는 텐트를, 남의 도움으로 세팅한 다음, 시작하는 우리의 진짜 캠핑이었다. 

마트의 수많은 먹거리를 보며 우리는 행복하게 쇼핑했다.

“ 이것도 먹자. 이것도 먹으면 좋겠어. 이건 어때? ”

우리는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하나로마트를 통째로 살 듯이 쇼핑을 했고, 이후 계곡의 주차장에 돌아와 다시 먼 길을 마주했다.

'아…. 이걸 또 저기까지 옮겨야 하네'

그래도 맛있는 삼겹살을 생각하고 이쁜 여자친구를 바라보며 힘을 냈다. 솔직하게 힘들었지만, 기분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 이제 슬슬 고기를 구워볼까? ”


삼촌이 챙겨준 바비큐그릴을 펼치고 숯을 넣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며 ‘지익지익’ 소리를 내며 불을 붙이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따라 했다. 근데 다른 사람들의 숯은 불이 잘도 붙는데 내가 붙이는 숯은 불이 안 붙었다. 이거 대충 불붙이면 금방 활활 타오를 줄 알았는데….


‘ 아, 또 계산 착오다. ’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더 이상의 시행착오는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또 구세주 아저씨를 찾아갔다.

“ 그건 한참을 들고 있어야 해 ”

숯에다가 토치를 대고 한참을 있으라고 하신다.

난 또 ‘감사합니다’ 를 연발하고 후다닥 뛰어와서 숯을 노려보며 한참을 토치질했다. 


배고픔을 참으며 기다리고 있는 여자친구의 시선이 신경 쓰이기 시작할 때쯤 드디어 불이 붙었고 우리는 제대로 된 반찬을 차리지도 않은 채 고기부터 올렸다. 그땐 그냥 고기만 먹어도 너무 맛있을 것 같았다. 땀이 범벅이고 뭐고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한 입 넣은 그 고기는 내 평생 가장 맛있는 고기 한 점이었다.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 소주 한 잔을 기울이고 있을 때 우리에게 첫 번째 고비가 찾아왔다. 여자친구가 “ 여기 화장실은 어디야? ” 라고 물었고 난 화장실이 절대로 있을 것 같지 않은 주변을 둘러보며 당황하기 시작했다. 다시 구세주가 필요했다. 

아저씨에게 무언가 답변을 듣고 온 나는 그 대답을 여자친구에게 자신 있게 전달할 수 없었다. 쭈뼛쭈뼛하고 있는 내게 여자친구가 물었다.


“ 어디로 가면 된대? ”

“ 응, 저 위쪽 산속에 들어가서 해결하라는데…?”

난 차마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여자친구는 이 힘든 여행에서 한 번도 싫은 내색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당황한 듯했다. 난 이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해보려고 내 모든 피를 뇌로 끌어올렸다.


“ 아 맞다. 주차장 앞에 있는 매점!! 거기에 가면 화장실이 있지 않을까? ”


내 말에 여자친구도 동의했다. 우리는 급하게 매점으로 향했고 가는 길에 세상모르는 순진한 대화를 나눴다.

“ 매점에서 그냥 화장실만 간다고 하기엔 좀 그러니까, 마트보다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물건을 몇 개사고 화장실을 이용한다고 하자 ”


그녀는 동의했고 우린 계곡에 놓인 다리를 기분 좋게 건넜다. 그리고 이제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광경이 우리들의 눈에 들어온 것이 그때쯤이었다. 짐을 옮기느라 주차장부터 그렇게 몇 번을 오고 갔는데도 이게 이제야 눈에 들어오다니…. 

매점 옆 화장실은 긴 줄로 늘어서 있었고 매서운 눈매를 한 사장 아주머니가 손에 동전을 짤랑거리며 지켜서 있었다.


500원이었다. 화장실을 한번 이용하는데 드는 이용료.

심지어 저 긴 줄을 기다려야 한다. 줄을 선 사람들은 대부분 산속에서 용무를 해결하기 힘든 여자들이었지만 중간중간 남자도 있는 걸 보니 그들의 목적은 좀 더 큰 것이었고, 그 시간까지 고려하면 꽤 오래 기다려야 할 판이었다. 난 걱정스러운 눈으로 “ 괜찮겠어? ” 라고 물었고 여자친구는 힘든 표정이었지만 말로는 괜찮다고 했다.


길고 긴 시간이 지나 차례가 왔고 여자친구가 안으로 들어갔다. 화장실은 동양식이었고 물이 잘 나오지 않아 바가지로 자기 뒤처리를 하고 나와야 하는 방식이었다. 아니, 이런 열악한 화장실을 이용하게 하고 500원을 받다니... 동전을 짤랑거리면서 서 있는 저 아줌마가 그렇게 미워 보인다. 

다시 텐트로 돌아와 남은 음식을 정리하고 나니 설거짓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엥? 이건 어디서 씻지?'


  휴. 우리는 한숨을 내쉬고 다시 그 짤랑이 아줌마가 운영하는 매점 앞 수도꼭지로 그릇들을 들고 간다. 여전히 줄은 길지만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도 행복한 우리는 이런저런 농담을 하며 지루하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설거지를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여자친구가 여기까지 온 김에 화장실을 한 번 더 가겠다고 했다. 난 이제까지 여자들이 이렇게 화장실을 자주 가는지 몰랐다. 산속이고 절대 혼자 보낼 수 없는 곳이기에 나는 매번 함께 따라가며 3박 4일을 보냈는데 그래서 알 수 있었다.

‘ 진짜 자주 가는구나.’ 


난 산속을 살피며 여기저기 내 흔적을 남겼다. 민망한 일이지만 덥다는 핑계로 계곡물에 들어가서 후딱 쉬를 하고 나온 적도 있었다. 매점까지 가는 게 귀찮기도 했지만, 500원이 아까웠다. 아니, 그 아줌마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어떤 사람이 있었다. 뭔가 불편한 표정으로 한 손에는 티슈를, 다른 한 손에는 노란 손잡이가 있는 손 삽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는 우리 텐트를 지나 산속으로 들어가더니 한참을 있다가 개운한 얼굴로 다시 나타났다. 난 여자친구에게 그 사실을 말했고 급할 때마다 매번 갈 수 없으니 나도 내일 삽을 사야겠다고 말했다. 사실 그 아줌마에게 500원을 주느니 돈이 더 들더라도 삽을 사고 싶었다. 


내일 아침 하나로마트에서 장 볼 것들을 생각하며 우리는 잠자리에 누웠다. 한여름에 무슨 침낭이냐며 안 가져간다는 걸 삼촌이 굳이 챙겨줘서 가지고 왔었는데 우린 금세 알았다. 밤이 되니 기온이 뚝 떨어져서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만큼 추웠다. 

'삼촌.. 고마워요'

우리는 침낭이 있음에도 너무 추워서 서로 꼭 끌어안았고 서로의 체온으로 겨우겨우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젊음이 이 상황을 그냥 두지 않았다. 난 여자친구에게 조용히 속삭였고 눈이 맞은 우리는 텐트 안에서 뜨겁게 사랑을 나눴다. 추위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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