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문화재 옆 고층건물을 고민하는가

by 봉킹

최근 국가유산청과 서울시는 동일한 문제를 두고 서로의 권한을 주장하며 분쟁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는 사극 속에서 "종묘, 사직을..."이라는 대사를 익숙하게 듣는다. 종묘는 제례악과 같은 무형의 문화 요소를 품고 있는 문화재로, 보존과 개발이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조선의 왕과 왕비들의 위패를 모시고 왕조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종묘는 건축적으로 수평적으로 넓게 뻗은 구조를 가지며, 목조 건축물로서도 규모가 매우 크다. 그 공간감은 배경의 숲과 넓은 마당으로 이루어진 구획을 통해 형성된다.


문제의 핵심은 문화재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문화재를 왜 보존해야 하는지, 어떠한 방식으로 보존해야 하는지에 대한 담론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기관과 지자체가 서로의 권한과 논리로 충돌하고 있다. 문화재는 예술품처럼 박제된 상태 그대로 보존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본래의 기능을 유지하며 사용되어야 하는가라는 논제는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본질적으로 조선 왕조는 끝났다. 따라서 이미 종묘의 원래 기능을 상실했지만, 대한민국은 조선을 이어받았다는 인식 아래 동일성을 유지한다. 정치체제는 민주정과 왕정으로 달라졌지만, 우리의 조상은 비교적 최근까지 조선시대를 살아왔다는 연속성이 존재한다. 이 단절된 듯 이어진 역사적 연속성은 종묘의 가치를 다시금 성찰하게 만든다.


개발은 인류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 이루어지며, 토지의 가치와 이용성을 높여 전체적 가치를 상승시키는 행위로 주로 건축을 통해 구현된다. 그러나 개발이 추구하는 목표가 단순한 금전적 가치인지, 아니면 공공의 요구를 수용하며 합리적 이익을 창출하는 것인지는 법률과 조례, 규칙의 고민을 필요로 한다. 지자체는 규제권자로서의 입장과 개발로 인한 세수와 경제 활성화라는 복합적 입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만약 종묘를 사라져 버린 왕조의 잔재로 본다면 그 중요성은 낮게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꽃을 보면서 그 꽃이 맺은 열매를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종묘 역시 과거가 남긴 자산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방안은 무엇일까? 도심 속에서 종묘의 가치를 높이는 방식으로 개발을 고려할 수 있지 않을까. 낮아서 종묘 내부에서 보이지 않는 것도 보존의 한 방법이 될 수 있고, 높더라도 종묘의 가치를 높이는 디자인이라면 단순한 훼손으로 볼 수 없다.


이제 우리는 문화재를 단순히 박제하는 수준을 넘어,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대중의 삶 속에서 문화재가 특정 기능을 갖고 존재할 때, 그것은 단순한 규제가 아닌 보편적 가치로서 사랑받을 수 있다. 삶을 산다는 것은 다양한 흔적을 남기는 것이며, 때로는 무한한 부조리와 무한한 합리성을 동시에 남긴다. 그 순간의 가치는 미래 기준에서 다르게 각인될 수 있다.


문화재를 사랑하는 순간이 모두에게 다가올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도 담론이 형성되면 좋겠다. 오늘도 나는 민들레 홀씨를 날리기 위해 바람을 타고 날아가고 있다. 그 홀씨가 나의 생각과 같은 방향으로 흩날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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