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시리즈의 시작점

by 봉킹

― 15m에서 줄 하나에 의지한 채 매달려 본 적이 있는가


나는 고등학생 시절, 히말라야(Himalaya)와 같은 고산에 맹목적인 동경이 있었다.

오지 탐사대를 준비하며 산에 관한 기록을 찾아 읽었고, 그곳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그들은 단순히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목표를 위해 살아가는 법을 보여주고 있었다.

알피니즘(Alpinism)은 여러 수사로 표현되고,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된다.


하지만 그 근원은 단순하다.

산을 오르고, 그 속에서 인간의 한계를 마주하며 극복하는 방법을 탐구하는 일.

결국 그것은 삶의 도전에 맞서는 마음가짐을 배우는 수단이다.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탐험가(Explorer), 모험가(Adventurer), 알피니스트(Alpinist)라 부른다.

나는 그들 중 한 명, 한 산악인을 존경했다.

“집에서 집으로(From Home to Home).”

그는 자신의 도전을 이렇게 정의했다.

베이스캠프(Base Camp)에서 출발해 정상(Summit)에 오르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통해

삶 자체를 등반의 은유로 삼은 사람이었다.


그는 김창호(金昌浩, 1969~2018)였다.

그는 세계 14좌를 무산소로 완등한 대한민국 산악인이며,

히말라야 구르자히말(Gurja Himal) 원정 중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학구적인 자세로 산을 대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산을 오르는 법을 탐구하던 인물이었다.

보통 베이스캠프는 가장 안전한 곳으로 여겨지지만, 그날은 폭풍이 몰아쳤다.

늘 안전을 고민하던 산악인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안전한 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부고를 들었을 때, 나는 오래도록 멍했다.

언론과 대중은 물었다.

“저런 위험한 일을 왜 하냐고.”

그 말속에는 비난이 섞여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래, 나는 왜 고산을 동경했을까?”

아직 완벽한 답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본능을 떠올린다.

‘오른다’라는 행위의 당연함.

아직 말을 배우지 못한 아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기어오르고, 붙잡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몸을 일으켜 본다.

아마도 인간의 본능 속에는 ‘높은 곳을 향한 사랑’이 새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먼 조상, 혹은 그 이전의 생명체는

나무 위와 같은 높은 곳에서 위협을 피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산악인(Mountaineer)이라는 직업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그들은 등반을 통해 새로운 기술을 제안하고, 장비를 실험하며,

때로는 그것을 세상에 알린다.

새로운 생명체나 자연 현상을 기록하며 과학적 탐구를 이어가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들은 대중에게 영감을 주는 아티스트(Artist)다.

일반인들이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고난과 실패, 그리고 협력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그들의 삶에서 울림을 받는다.

그래서 그들의 도전은 단순한 위험이 아니라,

삶을 풍부하게 하는 기록이 된다.


하지만 요즘의 사회는 묻는다.

“그런 위험한 곳에 왜 가는 거야?”

심지어 법적으로 배상 책임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제는 안전이 가장 우선시 되는 시대이기에,

도전과 모험은 당연하지 않다.

고도로 분배된 책임의 사회 속에서,

위험은 곧 ‘누군가의 잘못’이 된다.

그래서 도전하는 사람들은 더 외로워지고, 종종 궁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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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다 보면 타인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순간이 많다.

등반에서는 확보자(Belayer)가 있다.

밑에서 등반자의 추락을 막기 위해 줄을 잡고,

필요한 만큼 풀어주고, 다시 당겨주는 사람이다.

줄 하나에 의지한 채 매달린 상대를 바라보며 호흡을 맞추는 일.

그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신뢰로 완성되는 관계다.

때론 손의 움직임 하나에 생명이 달려 있다.

그 무서움 속에서, 책임감이 자란다.


나는 지금도 삶과 도전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글을 쓴다.

‘왜,’ 시리즈는 그 탐구의 기록이다.

우리 모두가 서로의 도전을 응원하고,

관용(Tolerance)을 품은 사회가 다시 오길 바란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도전을 미루며 살았다.

“아직은 어리니까.”

그 핑계 속에서 시간은 흘렀다.

그러던 중, 오래된 친구가 잠수 작업 중 산업재해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처음으로 삶의 무게를 느꼈다.

마지막 연락이 뜸했던 그 친구가 자꾸 생각난다.


부디 그곳에선 넓은 꿈과 호기심을 펼치며 살아가길.

그리고 나는, 여전히 이곳에서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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