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Lee Ufan)의 *관계항(Relatum)*은 돌과 유리, 금속 같은 재료를 통해 ‘관계’에 대한 사유를 담아낸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몇 가지 재료로 추상화하기엔 너무 많은 관계를 품고 있다.
2025년 가을, 송현광장에서는 커다란 벽과 그 뒤로 ‘걸리버들의 방문’이 나열된 전시가 열렸다.
이곳에서 우리는 건축가의 담론 제시와 시민의 수용이라는 관계를 실제로 경험했다.
시민의 시선에서 보면 헤더윅의 거대한 리본 벽은
서울 상업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간판의 확장된 형태로 읽힌다.
그러나 도시건축비엔날레라는 특별한 맥락 속에서는
사람과 건축의 관계를 텍스트와 이미지로 구현한 시도로 볼 수 있다.
헤더윅은 입면을 통해
‘간판과 같은 정보의 수단성’과 ‘감각을 자극하는 조형성’을 드러내며,
비엔날레의 주제인 “매력 도시, 사람을 위한 건축”을 시각화했다.
‘걸리버들의 방문’은 다양한 주체가 구상한 프로그램의 표상이다.
현대차그룹, 에드워드 리 등 건축가 이외의 인물과 기업이 참여하며
건축의 보편성을 드러냈다.
현대차그룹은 금속과 물을 주요 재료로 한 벽을 제안했다.
그들에게 늘 따라붙던 ‘부식차’, ‘누수차’의 오명을
물이 흐르는 금속으로 표현함으로써 기술적 한계를 넘어섰다.
그 재료들이 그리는 관계는 비 오는 날 한옥의 처마 아래에서 바라보는 장면을 닮았다.
에드워드 리는 한국계 미국인 요리사로서,
‘한식의 근원은 장과 채소’라는 관점에서
항아리와 작물의 수직적 배치를 통해 우리의 식탁을 재해석했다.
고추장이 빠진 비빔밥처럼, 본질만 남은 관계의 맛을 느끼게 한다.
비엔날레장을 마주한 서울공예박물관은
이우환의 관계항이 건축적으로 구현된 공간처럼 느껴진다.
학교 건물의 변용과 증축을 통해 박물관으로 재설정된 이 건물은
딱딱한 콘크리트와 벽돌 사이에 유리를 매개로 두어
서로 다른 구조를 하나의 건축으로 엮어냈다.
유리의 개방성과 빛의 수용성은
건조한 재료들 사이에 공공성을 스며들게 했다.
학교는 박물관이 요구하는 큰 홀이 없었지만,
그 대신 동선을 통해 관람객의 시선과 휴식,
건물 간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연결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관계성’을 중심으로 공감의 감정을 읽어보기 위함이다.
인간이 관계 속에서 느끼는 감정의 근원은 결국 공감과 위로다.
홀로 여행을 즐기는 나는 관계의 부재 속에서 사유를 빽빽이 채워 넣곤 했다.
하지만 이번 답사에서는 학교라는 공식 행사와 개인적인 약속이 공존했기에,
혼자만의 여행과는 다른 밀도를 느낄 수 있었다.
북촌을 혼자 걸을 때는
공간의 물질적 특징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이동 속도가 빨라 주변의 장면이 파편적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여럿이서 걸을 때는
물질보다 상황이 먼저 인식되었다.
과로사 문제의 매장 앞을 지나며
그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인식을 나누고, 공감과 위로를 받았던 순간처럼,
관계 속에서 기억은 짙어지고
선적 인식에서 면적 인식으로 확장된다.
창덕궁은 ‘숲속 궁궐’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현재는 공사 중인 돈화문을 지나 궐내로 들어가면
커다란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운다.
혼자 여행할 때는 그 시대성과 구조를 추상적으로 바라보았지만,
따스한 사람과 함께 걷는다면
큰 나무의 구멍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토끼굴을 떠올리게 된다.
문화재를 보는 경직된 인상에서
‘따스한 공간’으로 인식이 바뀌는 것이다.
우리는 관계성을 모른다.
정확히는 그 방향과 크기, 그리고 영향을 모른다.
그러나 유리와 금속이 만나 커튼월이 되고,
하나의 테이블이 되고, 조각이 되는 현상처럼,
관계란 단순히 정의될 수 없는 것임을 비유적으로 깨닫는다.
“태양의 그림자를 본 적이 있는가?”
이 질문에 “있다”고 답하는 사람은 없다.
태양은 빛의 근원이기에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다.
나는 OO와 함께해서 좋았다.
그 관계 속에는 단순한 공간과 재료를 넘어선 이야기,
그리고 따스함이 있었다.
가벼운 인사로 시작된 순간이었지만,
결국 JFK의 말처럼 —
관찰의 대상이던 관계는 이제 도달하고 싶은 목적지가 되었다.
단순한 여행일지인지, 탐사일지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그 불확실함마저 관계의 한 형태일 것이다.
이맘때쯤이면 늘 이런 인사를 전한다.
“날이 찹니다. 감기 조심하십시오.”
이 문장들의 관계는 당신의 평안을 바란다.
물리적으로 온도가 낮더라도,
우리 마음의 온도만은 일정하게 따스하길.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