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나무로 돌아가려 하나?

by 봉킹

언젠가부터 건축 공모전에서 나무를 마감재 혹은 주요 구조재로 사용하는 작품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과거,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와 가까운 나무들은 한옥의 기둥이나 책상의 합판처럼 전통적인 형태로 존재해 왔다.

나무의 순수한 크기는 대체로 인간의 규모에 닿아 있다.

그래서일까, 나무로 만든 물건들은 작고, 오밀조밀하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과거의 건축이 언제나 작은 규모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경회루나 황룡사의 9층 목탑을 떠올려보자.

지금의 건물과 크기 차이가 있는가?

오히려 더 거대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것들은 당대의 최고 기술과 재료로 어렵게 지어진, 왕의 의지가 담긴 기념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각각의 부재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아직 ‘나무를 인공적으로 조합하기 전의 건축’이었다.

한 그루 한 그루, 제 크기대로 다듬어 쓰던 시절의 나무들이다.

나무는 다양한 용도로 쓰이지만, 가장 오래된 용도는 땔감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무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불에 약한 재료’라는 생각을 한다.

실제로 근대 이전의 목조건축 도시들은 한 번쯤 대화재를 겪었고,

그 기억은 오랫동안 법과 제도로 이어졌다.

건축법은 목조건축의 높이와 규모를 제한해 왔다.

그러나 최근 그 제한은 완화되고 있다.

왜일까.

화재의 위험을 넘어설 수 있는 기술,

그리고 나무의 크기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나무의 화재 취약성은 나무의 본질에 있다.

나무는 쉽게 타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지키는 성질도 갖고 있다.

표면이 탄화되면서 내부를 보호하는 것이다.

이 탄화층은 불길을 늦추고, 내부 구조를 지탱하는 일종의 방화막이 된다.

그래서 대구경 목재, 즉 통나무만큼 큰 단면을 가진 구조용 목재는 생각보다 화재에 취약하지 않다.

겉은 타지만 속은 남는다.

그 사이, 사람은 대피하고 진화 작업이 이뤄질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튼튼하다’고 믿는 쇠는 오히려 열에 약하다.

철골은 화재 시 쉽게 휘어지고, 구조적 안정성을 잃는다.

그래서 철골조는 언제나 피복과 보강이 필요하다.

화재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단순하다.

목재의 치수를 키우고, 약품 처리를 하고, 잘 말리는 것.

그런데 — 목재의 치수는 어떤 방식으로 ‘늘어나는가’?

예로부터 목수들은 나무를 엮는 법을 알고 있었다.

못 하나 없이 홈을 새기며 짜 맞추고,

짧은 나무는 어슷하게 잘라 맞물리게 이어왔다.

그 전통은 오늘날 CLT나 글루램 같은 구조용 합성목재로 이어진다.

이제 나무는 다시 거대한 건축을 가능케 하는 재료가 되었다.


사실 이 글은,

어떻게 엮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담긴 글이다.

나무처럼, 사람도 건축도 삶도 엮어야 한다.

단단하게, 그러나 너무 강하지 않게.

내가 엮어가고 싶은 나무는 이미 너무 잘게 잘려버린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다시금 그 파편들을 매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