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의 씁쓸함, 농촌의 달콤함

새벽수필

by 봉킹

좋아하고 사랑하는 작가들 가운데는, 글에서 늘 씁쓸한 향기를 풍기는 사람들이 있다. 한 명은 어느 섬에서 기원한 제국의 식민지에서 태어났고, 또 한 명은 농업 대국이자 문화적 중심지였던 나라의 식민지에서 나고 자랐다. 그들은 매혹적인 문장으로 사회를 비판했고, 철학적 깊이를 머금은 소설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일반화하기에는 분명 조심스러운 지점이 많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노래 Geef Mij Maar Nasi Goreng처럼, 식민지에서 태어나 그 지역의 문화가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린 이들도 존재한다. “나의 조국은 A였지만, 나는 사실 B에서 더 오래 살았네.”라는 심경이 자연스레 떠오를 만큼, 식민지 경험의 복잡한 결은 쉽게 닿을 수 없는 층위를 가지고 있다.
정말로 많은 것을 가진 이들이라면, 단순한 여행이나 업무를 위한 잠깐의 이주가 아니라 ‘정착’을 목적으로는 쉽게 움직였을까. 며칠 전 읽었던 글에서는 아프리카 식민정책이 남긴 건, 이익이 아닌 ‘국가’라는 개념이 부족을 넘어 강제로 부여되면서 오히려 지역 정체성을 파괴한 일뿐이었다고 했다. 결국 식민 경영은 실질적인 이득 없이 영토만 넓힌 셈이었다.
이처럼 모순된 출발점을 거쳐 온 사람들이기에, 그들의 글에는 씁쓸한 맛, 깊은 철학적 고민, 스스로를 향한 오래된 질문들이 담겨 있는 건 아닐까. 종군기자로서, 혹은 의용군으로서 그 모순을 온몸으로 겪어낸 사람들. 그래서 더 응축된 문장이 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사랑스럽고도 깊은 맛을 내는 글을 쓰기엔 너무 평탄하고 안일한 길 위를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학의 정점은 언제나 흔들림과 고통, 잇따르는 악재 속에서 태어나는 감정에서 비롯되곤 하니까.

뭐, 나는 농촌이 내 고향이고 친구들이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 때 논에서 메뚜기를 잡았던 이색적인 이야기를 품고 있으니 언젠간 글에서 쌀의 달큰한 맛이 스며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