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달의 단면

작업일기

by 봉킹

오랫동안 공들여 그린 도서관 리노베이션 프로젝트가 끝났다. 그리고 오랫동안 나를 사랑해 준 엄마가 떠났다.

나의 12월은 시작부터 거센 바람과 추위로 나를 에워쌌다. 평범한 주말, 늦은 밤까지 작업을 하다 쪽잠을 자고 일어나 시킨 국밥을 채 비우기도 전에 일이 터졌다. 병원으로 가라는 누나의 연락. 모자를 눌러쓰고 제발 아무 일 없기를 소망하며 택시에 몸을 실었다.

구급대원과의 통화에서 나는 이미 어렴풋한 이별을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대학병원의 거부로 외곽 병원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 눈물보다 간절함으로 달려간 그곳에 엄마는 없었다. 그저 너무나 조소(渺小)해진 육체 하나가 꿈속을 헤엄치듯 누워 있었고, 수많은 손길이 그 위에 매달려 있었다. 첫 보호자로 도착한 나에게 의사는 출혈량이 너무 많다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 일렀다. 하지만 57세, 수술을 포기하기엔 엄마는 너무 젊었다.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잡은 엄마의 손은 유난히 차가우면서도 따스했다. 고등학생 시절, 보호자로 엄마를 수술실에 들여보냈던 기억이 났다. 그땐 금방 끝나겠지라는 가벼운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빨리'라는 단어보다, 수술이 끝난 뒤 "춥다"라고 말하며 깨어날 엄마의 목소리만을 기다렸다.

결국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평소 엄마의 소신과 가족들의 합의로 연명치료를 중단했다. 술자리와 토론회에서 '존엄한 죽음'의 가치를 그토록 주장하던 나였지만, 막상 마주한 임종은 존엄보다는 처절한 사투에 가까웠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엄마의 마지막 모습은 한동안 나에게 지워지지 않을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다.


정신없는 일주일을 보내고 다시 학교 설계 책상 앞에 앉았다. 눈물 대신 가슴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화가 차올랐다. '활동적인 도서관'이라는 당초의 컨셉을 제한된 시간 안에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나는 단면도(Section)를 택했다.

1층부터 3층을 잇는 메인스탠드, 중앙의 클라이밍 벽, 그리고 아트리움을 가득 채운 그린코어(Green Core). 건물을 수직으로 가로지르는 단면을 통해 이 공간이 어떻게 숨 쉬고 동작하는지 증명하고 싶었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오로지 순수한 열정만으로 도면을 채웠다. 화려한 렌더링은 아니었지만, 내 생각이 읽힌다는 평을 들었다.

최종 발표에서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전체를 흔드는 게 아니라, 필요한 부분에 힘을 집중해 개념과 구조를 동시에 보여준 것이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의 본질을 정확히 짚었다." 미친 듯한 작업 끝에 들은 환청 같은 칭찬이었을지도 모르나,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나의 12월은 한동안 '차가운 이별의 달'로 기록될 것이다. 이젠 정말 안녕을 고한다, 나의 차가운 달이여. 한동안 따스한 글감은 나를 찾아오지 않겠지만, 이 거친 도면 속에 새겨진 온기만은 잊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