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25.02 겨울
친구 두 명과 무작정 영국과 이집트를 떠돌았다.
오늘은 영국, 그중에서도 런던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건축 전공을 포기하고자 했던 여행이다. 한국에서의 건축학도는 끝없는 과제와 자기부정을 경험하며, '설계판은 답이 없다'는 말을 계속 듣게 된다. 하지만 나는 사명감과 목표가 있었기에 3학년까지 버텼다. 하지만 무너지는 집안의 경제 사정과 개인적인 고민으로 건축을 포기할 생각으로 휴학을 했다.
복학을 앞둔 시점에서 나는 친구들과 여행을 떠났다.
서론을 접어두고 나는 런던에서의 신기한 경험들을 나열하려 한다. 런던에서 만난 대부분의 육체직 및 서비스직 노동자들은 인도 혹은 네팔 출신이었다. 어쩌면 편협한 시각일 수도 있으나, 나의 경험이다.
1. 대영박물관과 테이트 모던
런던의 대다수 박물관과 미술관은 무료로 열려 있다. 어쩌면 당연하다. 대영박물관의 작품들은 대다수 영국산이 아니다. 나 스스로조차 대영박물관에서 기대한 작품이 영국산이 아님을 밝힌다.
나는 에릭테리온의 기둥인 여신상을 찾았다. 하지만 그 작품은 현재 전시 수정 문제로 미공개 처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자원봉사자 혹은 큐레이터로 보이는 노신사분께 한국에서 에릭테리온의 기둥을 보러 온 건축학도라고 설명드렸고, 신사분은 비밀이라며 한 작품 뒤의 공간으로 나를 이끌었다.
한 작품의 뒷공간에는 칸막이 사이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게 보였다. 눈으로는 보이지만 사진으로 담기에는 아쉬운 화각으로 에릭테리온의 기둥이 보인다. 노신사분은 잘 보고 가라며, 인사를 건네신다. '규정이 딱딱하지만, 여유가 있다'는 느낌의 시작이었다.
테이트 모던으로 가는 길은 그라피티가 가득하고, 예술대학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었다. 곳곳에서는 대마초 냄새도 살짝 풍겨오는 '예술적인 거리'라고 말하고, 살짝 어두운 동네다.
테이트 모던은 발전소를 개조하여 만든 미술관으로, 가운데 발전용 터빈이 있던 자리에 세계적인 규모의 설치미술 전시 공간이 있다. 현재는 현대차 후원으로 한국인 작가 이미래의 'Open Wound'가 전시되고 있다. 터빈 구조물 아래로 염료가 흐르는 작품으로 산업화와 상처를 다루고 있다.
현대미술관 서울에서의 작품들보다 인상적인 작품들이 많았으며, 생각을 위한 쉼의 공간들이 훨씬 많았다.
2. 펍과 마약
우리 숙소는 패딩턴역 근처의 2차 대전 직후에 지어진 오래된 호텔이었다. 호텔 앞으로 오래된 병원과 건물들이 즐비하며, 하이드 파크가 가까웠다.
호텔 건너 골목에는 펍이 있었다. 1층의 규모는 대략 30평 정도로 작지만, 지하층에 숨겨진 많은 방들이 있고, 잔잔한 노래와 맛있는 맥주들, 서비스가 좋은 서버들이 있었다. 우리는 3일 동안 매일 그 펍에 출석했고 마지막 날 사고가 터진다.
마지막 날은 술과 분위기에 죽자고 나서는 콘셉트이었으나, 무리에서 광대는 나뿐이었다. 무리에서 가장 영어 어휘가 부족했지만, 첫날부터 호텔의 부서진 침대를 따졌던 것도 나였고, **'Everything is very good but, one problem'**이라는 유행어를 만들고야 말았다.
런던에서 가장 핫한 지역인 소호의 펍 거리에서 결국 하나의 유행어를 만들고야 만다. 정말 예쁜 사람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창가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을 때, 우리는 자리가 없어 창밖에서 서서 맥주를 홀짝이며 사진 찍기에 바빴다. 그러면 안 되었는데 그만, 광대 기질이 터져버린 나는 핸드폰 메모장에 크게 'Hi?'라고 쓰고 창문으로 들이밀고야 만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은 웃음이 터졌고, 나와 핸드폰을 사진 찍더니 자리를 비웠다.
그래서 우리는 앉아서 마실 수 있었다. 암튼 그랬다.
밖에 서서 먹을 때는 현지인들과 짠도 하고, 소소한 대화도 나누며 펍이 왜 발전했는지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맥주는 도구이고, 사실 대화를 통해 관계를 만들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아이디어를 만드는 좋은 목적이 조금은 있더라.
만취한 우리는 숙소 앞 펍으로 향했고, 마지막 날이기에 야외 자리에 앉아 런던의 밤거리를 안주 삼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고등학교 친구를 닮은 사람이 우리에게 대략 10분가량 말을 걸며, 앞에서 담배 피우고 있는 서버랑 어쩌고 하면서 떠들고 있었다. 계속하길래 한국어로 욕했지만 가지 않았고 서버에게 눈빛으로 도와달라고 SOS를 보냈다. 서버는 소리치며 싸웠고 그 사람은 도망갔다. 우리의 질문에 서버는 'Drug'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졌다.
3. 그래서 예술
옛 제국주의 국가의 수도는 풍부한 약탈 문화재와 다양한 민족이 있고, 또한 개방적인 분위기가 있기에 예술의 가능성이 높고, 풍부한 문화 투자를 통해 관광의 소재로 회수하는 구조로서 예술을 지원하고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근원적으로 예술가들을 향한 후원과 존중이 배경이라고 느꼈다.
건축을 그만두려고 간 여행에서 들어간 AA스쿨의 전시는 매우 인상 깊었고, 나도 돈을 모아 AA스쿨로 유학 가고 싶다는 목표 의식을 심어주었다. 그렇기에 빵꾸 난 내 청춘을 기워 나가야지.
고작 빵꾸 하나로 쓰러지는 인간으로 남기에는 내 이름이 너무 아깝기에.
25년 초가을에 쓰는 24년 늦겨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