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글솜씨가 사라진 뒤,

새벽시

by 봉킹

나는 꽤 오랜 시간을 나 스스로 만든 동굴 속에서 더 깊은 동굴로 나를 몰아가고 있었다. 불과 달력 속 숫자가 현재보다 조금 작던 시절에는 몽글몽글하고, 괜스레 달콤한 말로 포장하며 누군가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전하곤 했었다. 그냥 익숙한 길을 걷다가도 아름다운 모습들이 내 일기장으로, 또 글 속으로 스며들어 파스텔 색조의 내면을 꾸미기도 했었다. 뚜벅뚜벅 걸어가는 길 속에는 점점 채도가 낮아지고, 햇살이 사라져 갔을 뿐이다. 좋아하던 커피를 대신해서 술잔이 내 손에 쥐어져 있고. 나를 표현하던 글자들은 단순한 움직임으로 바뀌며 단편적인 도파민을 추구하며 그렇게 동굴 속으로 향했다.

내가 사랑하던 내 모습들은 사라지고 꽤 탄력 있던 몸은 늘어지고 10개는 쉽게 넘기던 턱걸이 횟수는 0을 넘어 음수를 향해 달리고, 몇 년을 거쳐 회복했던 내 무릎과 허벅지는 늘어진 지방으로 대체되었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거울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 나. 정말 동굴의 끝을 넘어 동굴을 파 내려가고 있었음을.

졸업 과제를 준비한다는 핑계로 흘려버린 시간이 사실은 동굴을 확장하는 데 쓰였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느지막이 일어나 흔들의자에 앉아 오늘은 뭘 하며 보낼까 하는 고민에 유난히도 아귀찜이 먹고 싶었다. 동굴을 파 내려가게 된 사건 속 주인공은 나에게 아귀찜으로 상징되곤 한다. 그렇다. 그리운 것이다. 애써 옷을 입고 밝은 척하며 오랜만에 길을 나섰다. 두 발로 걷고 걸으니 조금은 머리가 움직인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노을이 지는 것을 보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바라보는 예쁜 노을이었다.

시간을 역행하며 사는 것이 만들어낸, 현실과의 괴리가 참으로 시리면서 더 빨리 뛰게 해주는 하루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 딸기, 제주산 애플망고, 밀치, 드라이브, 요리, 조카 그리고 다시는 못 만나는 그 사람.

다시 시작이다. 내 꿈이여, 내 밝은 청춘이여 부디 내 걸음이 동굴 안이 아닌 밖을 향하고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