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글을 써볼까 합니다.
제대로 된 글을 올린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빈 공간들이 가지는 무게는 그 공백의 시간들과 곱해져, 다시 글을 쓰는 일을 어렵게 만들곤 했습니다.
오늘도 어딘가의 하늘에서는 ‘정의’라는 이름으로 불이 쏟아져 내립니다. 그 불이 과연 누구를 향한 것인지, 부정의 대상인지, 아니면 그 부정의 압제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늘 정확한 진실을 사랑했고,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곤 했습니다. 하지만 짧은 인생을 살아오며 느낀 것은, 결국 사람들은 자기 목소리에 가까울수록 그것을 ‘정의’라고 부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고민들이 이분법 사이의 공백을 조금씩 메우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런 입장 정리 위에서, 고급 호텔보다는 값싼 모텔과 야외를 즐기는 아직 가난한 20대의 시선으로 해운대를 읽어 보려 합니다.
나에게 LCT는 커다란 장애물처럼 느껴집니다.
어릴 적 기억 속 해운대는 오른쪽에 동백섬과 호텔이 있었고, 왼쪽에는 적당히 높은 호텔들이 늘어서 있었으며, 그 뒤로 달맞이 마을이 이차적인 배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대략 10대 후반부터 해운대를 다시 찾기 시작했을 때, 그 운치 있던 스카이라인을 가로막는 거대한 물체가 등장했습니다. 본질적으로 해변 풍경의 공공성이 침해되었다고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나는 해운대를 자주 찾는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갈 때마다 아름다운 풍경은 거대한 빌딩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고, 시원한 해풍 대신 불쾌한 힘을 가진 ‘빌딩풍’을 느낄 때면 나는 공공성을 침해당했다고 믿는 근거를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달맞이 언덕 끝에 자리한 시가바를 좋아합니다. 고민이 있을 때, 혹은 좋은 사람들이 부산에 왔을 때 데려가는 곳입니다. 그곳에는 작은 테라스가 있습니다. 그 테라스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면 바다는 보이지 않고 유리벽만이 배경을 이룹니다. 그래서 거대한 LCT가 하나의 정리된 형상으로 인식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곳은 가장 바다가 그리워질 자리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부산이라는 거대한 공룡의 허리 어딘가에 서 있다는 묘한 성취감과 소속감이 생깁니다. 그곳에서 나는 부산을 느낍니다.
예전에 LCT에 배달기사로 간 적이 있습니다. 여느 고층 아파트들이 그러하듯 까다로운 출입 절차와 여러 개의 문을 지나 엘리베이터에 올라야 했습니다.
배달지에서 바라본 바다는 참 넓고 아름다웠습니다. 한편으로는 너무 푸르러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빠져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해변의 사람들이 하나의 점으로 보일 때 느껴지는 감정이 과연 성공의 단맛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날 내 머리를 지배한 질문은 하나였습니다.
‘휴먼 스케일’이라는 단어는 혹시 건축가들만 사용하는 하나의 기능어, 혹은 허상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동네 뒷산 정도의 높이를 가진 LCT는 여러모로 해운대와 부산에 상징적인 흔적을 남겼습니다. 여러 사회 지도층을 검찰과 경찰로 보내는 스캔들을 만들기도 했고, 아름다운 전망대를 만들기도 했으며, 매력적인 수영장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그럼에도 결국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인 상품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오늘 점심 무렵 다시 찾아간 미포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거리를 거닐며 상가를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바람은 거셌지만 사람들은 그 거대한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내가 LCT를 너무 나쁘게만 읽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다시 도돌이표처럼 돌아왔습니다.
사적으로 이용된다고 비판받던 공공용지도 쾌적한 휴식 공간을 만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결국 나는 다시 같은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단지 나는 그 커다란 형체가 싫었던 것 아닐까.
최근 학교 설계 프로젝트로 미포항 주변을 다루고 있습니다. 대략적인 목표는 공공성을 가진 공간으로서 사계절 관광지로 느껴지는 바다를 만드는 것입니다.
나는 처음에 ‘바다란 물이 닿는 순간’이라고 생각하며 설계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추운 겨울날 바다와의 접촉을 꺼리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비평 속에서 아직도 헤엄치고 있습니다.
나는 겨울에도 서핑을 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일상의 일부였지만, 그것이 대중적인 경험은 아니라는 것을 오늘도 배웁니다.
글을 읽는 여러분의 해운대는, 바다는 어떤 인상으로 어떤 향으로 기억되고 있을까요. 잠시 생각해 본다면 우리의 일상 속 기억들이 조금 더 향기롭고 매력적으로 살아나지 않을까요.
조심스레 하나의 생각을 정리해 봅니다. 바다와 같은 자연은 특정한 대상의 소유로 항구적으로 유지되는 순간들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너무나 우리에게 자유롭게 열려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놓아둔다면, 우리의 일상 속 자연이 어느 순간 우리로부터 격리될 수도 있겠습니다.
자연과 격벽을 이루는 건축물에게 공공성이란 어떤 의미인지 고민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욕망과 자유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는 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떫은맛이 아직 채 빠지지 않은 감 같은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