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우리.
사랑의 끝이 무척 슬프기만 한 건 아니야.
사랑했던 그 시간들이 우리의 꿈을 품어주었던 기억으로 남아, 우리는 그 안에서 꿈의 싹을 키울 수 있었던 거지.
씁쓸한 담배 연기 속에서 푸른 두 사람이 만나며 영화는 시작한다.
꿈을 좇는 남자와 집을 찾는 여자는 어쩌면 그 시절 서로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들을 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매우 선명한 색과 향으로 기억에 남는 순간들은 우리 삶에서 그리 많지는 않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은 사랑이라는 감정과 함께했음을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다.
이성적인 사랑과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랑, 모두를 품는 그런 시간들은 매우 선명한 색과 향으로 남는다.
어려서부터 집이 없었기에 집을 만들고 싶었던 정원은 꿈이 있지만, 팍팍한 현실 속에서 꿈의 주변만을 맴돌고 있다.
초반부에서 집은 이렇게 정의된다.
집: 자기를 품어주는 사람과 공간이 있는 곳.
홀로 자란 정원은 은호를 만나며 그런 집을 얻게 된다.
따스한 햇살을 품고 있는 은호는 자신의 햇살을 정원에게 나누어주며 꿈을 응원하겠다는 표현을 한다.
현실에 막혀 꿈을 향한 직진이 아닌 옆 오솔길을 걷고 있던 정원은, 어쩌면 그 맹목적인 지지에 힘입어 큰길로 나아가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은호는 정원에게 처음의 집이 되어준다.
회상을 하며 서로의 기억을 더듬는 은호와 정원을 보며, 나는 집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집을 만드는 학과인 건축학과에 다닌 지도 어느새 5년이라는 시간이 쌓여가고 있다.
점점 더 집에서 멀어지고, 이제는 나에게 집이 없어졌다.
어려서부터 나에게 집은 가지고 싶었던 맹목적인 추상이었다.
그리 유복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언제나 집은 따스한 감각을 만들어주었다.
초반부의 집은 감각만이 있었고, 공간은 없었다.
친한 동기 다섯 명 중 설계 공부를 계속하는 사람은 나 혼자다.
생각해 보면 다른 친구들은 스스로의 집이 확고히 아름다웠다.
나는 불현듯 이런 생각을 해본다.
절실히 자신만의 집을 가지고 싶은 이들이 살아남는 곳이 건축학과인 게 아닐까.
정원은 그런 감각으로 꿈을 계속해서 꾸어갔던 게 아닐까.
요 몇 년간 나의 집은 태풍이 불던 날, 제주에서의 일을 마치고 늦은 비행기로 내린 김포공항에서 그 당시 나의 내력벽에게 들었던 한마디로 정의된다.
“왜 이렇게, 잘생겼어!”
소금물에 절고 까만 조약돌 같던 나에게 해주었던 그 말 덕분에 오늘도 다시 꿈을 꾸어본다.
어디서든 행복하시라.
너무 높은 파도를 만난다면, 그때 말했던 터틀롤로 피하며 끝내 뚫고 가시라.
당신 덕분에 오늘이 이리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때로는 누군가의 은호이자 정원일 모든 사람들에게, 따스한 순간이 찾아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