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워 공부한 내용을 뇌에서 삭제하지 않으려면 충분한 수면이 필요합니다
"선생님 불안해서 잠이 안 와요."
"남들은 4시간 자고 공부한다는데, 저만 7시간씩 자면 될까요?"
수험생 커뮤니티에 가장 많이 올라오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대한민국에는 아주 오래된, 그러나 아주 위험한 미신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4당 5락'입니다.
4시간 자면 합격하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이 말은, 수십 년간 수험생들을 공포로 몰아넣었죠.
잠을 줄이는 것이 노력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사회.
하지만 뇌과학의 관점에서 볼 때 잠을 줄여서 공부한다는 건 '나는 오늘 공부한 내용을 뇌에 저장하지 않고 전부 삭제하겠다'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습니다.
잠은 공부를 안 하고 쉬는 버리는 시간이 아닙니다.
깨어 있는 동안 입력한 정보를 장기 기억장치로 옮기는 유일한 시간입니다.
우리 뇌에는 기억을 임시로 보관하는 해마라는 기관이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컴퓨터의 램(RAM)과 같습니다.
문제는 해마의 용량이 아주 작다는 겁니다.
하루 종일 공부한 정보들은 일단 해마에 쌓입니다.
하지만 잠을 자지 않으면 이 정보들은 꽌 찬 해마에서 흘러넘쳐 그대로 증발해 버립니다.
우리가 잠든 사이, 뇌는 놀라운 작업을 시작합니다.
해마에 임시 저장된 기억들을 대뇌피질이라는 거대한 하드디스크로 이동시킵니다.
이것을 '기억의 공고화(Memory Consolidation)'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낮에 공부하는 건 문서를 작성하는 것이고 밤에 자는 건 저장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습니다.
밤새워 4시간만 자고 공부했다고요?
당신은 밤새 문서를 작성해 놓고 저장 안 함을 누르고 컴퓨터 전원을 끈 셈입니다.
다음 날 머리가 멍하고 기억이 안 나는 건 당연한 결과이고요.
잠이 부족할 때 머리가 띵하고 멍한 느낌은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닙니다.
실제로 뇌 속에 쓰레기가 가득 찼기 때문입니다.
뇌는 깨어있는 동안 엄청난 에너지를 쓰며 '베타 아밀로이드' 같은 독소를 만들어냅니다.
이 독소가 제때 배출되지 않고 쌓이면 뇌세포를 파괴하고, 심하면 치매의 원인이 됩니다.
이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 시스템인 '글림프시스템(Glymphatic System)'은 오직 깊은 잠을 잘 때만 작동합니다.
잠이 들면 뇌세포가 수축하면서 그 사이로 뇌척수액이 흐르며 독소를 씻어냅니다.
잠을 줄인다는 건, 쓰레기로 가득한 방에서 공부하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독소에 찌든 뇌는 판단력이 흐려지고, 감정조절이 안되어 짜증을 쉽게 내며, 집중력이 바닥을 칩니다.
수면은 크게 '렘수면(Rapid Eye Movement Sleep)'과 '비렘수면(Non-Rapid Eye Movement Sleep)'으로 나뉩니다.
잠들고 초반부는 육체를 회복하는 비렘수면이 오고 잠드로 6~7시간 후에는 렘수면의 비중이 늘어납니다.
이 렘수면이 수험생에게는 핵심입니다.
이때 뇌는 낮에 배운 지식들을 서로 연결하고 통합합니다.
창의적인 문제해결력, 응용력, 복잡한 수리적 사고력은 바로 이 렘수면 시간에 만들어집니다.
만약 6시간도 안 자고 알람을 듣고 깬다면?
기억을 연결하고 응용력을 키워 줄 가장 중요한 렘수면 시간을 싹둑 잘라버린 것입니다.
단순 암기는 될지 몰라도 어려운 문제는 풀 수 없는 뇌가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어떻게 자야 할까요? 무조건 많이 자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실전팁 1 최소 6시간, 권장 7시간 30분
수면 사이클(비렘+렘)은 한 번 도는 데 약 90분이 걸립니다.
90분이 4사이클이면 6시간, 최소한의 마지노선입니다.
90분이 5사이클이면 7시간 30분, 가장 이상적인 수면 시간입니다.
일어날 시간을 정해두고, 역산해서 잠자리에 드세요.
6시에 기상한다고 가정했을 때 4사이클은 12시, 5사이클은 10시 반이 최적입니다.
실전팁 2 낮잠은 20분만
점심 먹고 쏟아지는 잠은 참지 마세요.
단 20분을 넘기면 깊은 잠에 빠져서 일어나기 더 힘듭니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바로 엎드려 주무세요.
카페인이 뇌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20분.
딱 20분 뒤에 카페인 효과와 낮잠의 개운함이 동시에 찾아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실전팁 3 자기 전 스마트폰은 기억삭제버튼
자기 직전 침대에서 보는 스마트폰 불빛에서 나오는 블루라이트는 수면 유도 호르몬인 멜라토닌을 파괴합니다. 또한 자기 직전에 본 자극적인 영상 정보가 해마를 차지해 버리면, 낮에 공부한 중요한 정보가 밀려날 수 있습니다. 자기 전 1시간은 뇌를 오프라인 상태로 만드세요. 그것이 기억을 지키는 길입니다.
불안한 마음에 오늘도 졸린 눈을 비비며 에너지 드링크를 따고 있나요?
그 캔을 내려놓으세요. 그리고 불을 끄고 이불속으로 들어가세요.
당신이 자는 동안, 당신의 뇌는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낮에 배운 것들을 정리하고, 청소하고, 저장하고 있습니다.
잠을 자는 것은 공부를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공부의 마침표를 찍고, 내일의 공부를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과정입니다.
오늘 밤은 죄책감 없이 푹 주무세요. 그게 합격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