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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면 May 26. 2024

노부부와 개 한 마리

늙은 여자가 밭은기침을 해대며

늙은 남자에게 안부를 물었다

그냥 살면 살아진다고, 늙은 남자가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청국장을 끓인다고 창이란 창은 모두 열었다

불어 들어오는 바람이 먼 곳의 노래를 물어왔다


방에 틀어박힌 개 한 마리가 제 혀를 씹으며

방 밖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늙은 여자가 이젠 지쳤다고 울음이 난다고 했다

늙은 남자는 그 모든 과거가 후회된다고 했다


보리와 잡곡을 섞은 밥 한 공기가 식어가고

된장찌개 물컹한 두부를 숟가락으로 반 갈라

늙은 남자가 늙은 여자의 밥그릇 위에 얹어 두었다


털이 까만 짐승이 제 혀를 씹다 못해 짓이기며

자꾸 어려지는 앞발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혀를 잘라낸 개는 산책을 나가고 싶었다


아주 먼 곳까지

돌아오지 않아도 될 만큼 걷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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