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글의 주제를 정하다 하는 한탄
주제가 있어야 그것을 중심으로 두고 여러 사건들을 일관되게 이어나갈 수 있다. 주제를 선정하기 위해 일상생활에서 내가 자주 하던 생각들이 무엇인지 훑어보았다.
오늘 퇴근하고 무얼 먹지? 앞으로 나는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늙어 죽는 걸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 행복하다는 게 무엇이지? 나는 언제 행복하지? 남들에게 인정받을 때 나는 가장 행복한 것 같은데.
'행복'이라는 단어가 나를 옭아맨다. 내 신념은 인간의 삶은 결국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는 데에서만이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행복인, 누군가의 인정을 받는 방법에 대한 것에 천착하기 시작한다.
인정을 받기 위해선 특출 난 성과를 보여주어야 한다. 성과를 내는 것에만 만족해선 안 되고 그것을 남들이 잘 볼 수 있게끔 홍보도 곁들여야 한다.
그렇다면 첫째로 성과를 만들어 보자.
성과를 만들 수 있을 만한 나의 장점이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보자. 종이접기, 피아노, 침묵하기, 집에 오래 혼자 있기, 글쓰기. 무언가 성과를 내기 위해선 하나같이 모자란 장점들밖에 없다. 그러나 이중 글쓰기 부분에 대해서는 십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내게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믿어 왔다.
이유는 무엇일까.
학창 시절 받았던 교내백일장 상장들이 재능이 있을지 모른다고 속삭이는 와중에 그 당시 읽었던 몇몇 소설책들이 내게 작가의 꿈을 꾸게 만든 것 같다. 우선 교내백일장을 받은 것이 글쓰기에 재능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인지 객관적으로 돌이켜보아야 할 것 같다.
나는 남중과 남고를 나왔다. 남성은 여성에 비해 문자를 다루는 능력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는 이전까지는 내 편견에 속하는 부분이었으나, 현재는 독서논술강사로 일하면서 편견이 아닌 사실화되어 가는 부분이다. 능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대부분의 남성은 글을 읽고 쓰는 것에 큰 관심이 없다. 그러니 내가 얻어내었던 교내백일장 상장들은 한없이 작은 표본 집단 내에서 보여주었던 보잘것없는 재능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시 주관도, 전국 주관도 아닌, 겨우 학생 수백 명이 모여 있는 것에 불과한. 그것도 대부분이 글을 짓는 데 크게 흥미도 재능도 없는 남학교에서 주관한 백일장에서 수상한 경력 가지고 내게 재능이 있다고 판단했다니. 그때의 나는 우물 안에서 크게 울 줄 아는 개구리에 불과했다.
알량한 재능을 키워내 볼 거라는 명목 하에 국문과에 진학했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였으나 국문과의 커리큘럼은 작문 실력 향상과 크게 관련이 있지 않았다. 문학의 이론에 대해서 배우기는 했으나 지나치게 철학적이라 실용적인 글쓰기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판단했다. 그래서 대학 생활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았다. 글을 간간이 쓰며 여러 공모전, 신춘문예 등에 응모했다.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문학 동아리에 가입해서 좀 더 글쓰기를 연습해 보았으나 지금까지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이제 곧 서른이 된다.
누군가에겐 젊은 나이일 테지만, 이제껏 글쓰기로 제대로 된 성과 하나 얻어내지 못한 내겐 지나치게 거대한 숫자로 보인다. 이젠 이 꿈을 버려야 할 때가 온 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꿈마저 버리고 나면 내겐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다.
친구도 연인도 재산도 내겐 없다. 그것들을 얻어내야 할 의욕마저 없다. 그것들을 향해선 어떤 욕망도 일지 않는다. 마치 '작가'라는 목표만 내게 남은 것처럼.
내 젊음을 좀먹고,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를 물 먹인 문학이라는 녀석에 대한 집착이 나를 이렇게 벼려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글을 쓴다.
하루에 최소 2000자는 쓰자고 다짐했고, 이 다짐만큼은 꾸준히 지켜오는 중이다. 책도 많이 읽으려고 노력 중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책을 읽는 것은 일종의 유희였지만, 지금은 공부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책이 잘 읽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계속 읽는다. 생각도 많이 하려 한다. 껍질만을 건드리는 얕은 생각 말고, 그 생각을 불리고 불려 땅 속에 있는 무언가에까지 닿을 수 있도록 시간이 날 때마다 사색도 한다. 다작과 다독과 다상이 작문 실력을 향상하는 몇 안 되는 방법이라는 것을 어디선가 주워 들었다. 그 정보에 크게 공감했기 때문에 그러고 있다.
아직까지는 나는 나를 새롭게 만들어낼 자신이 없다. 그래서 여전히 글을 쓰려고 한다.